'매직핸드' 김승현, 베테랑 역할 자각할 때
전자랜드전 어이없는 실책으로 연승행진 끊겨
돌격대장 아닌 주어진 사령관 역할 충실할 때
오리온스에서 펄펄 날던 2000년대 초중반 김승현(35·서울삼성)의 기량은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화려했다.
창의적인 A패스와 센스 있는 경기운영으로 팬들을 열광시키며 성적과 재미라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외국인 선수들조차 "김승현의 패스 하나만큼은 NBA급"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종종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가 실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실제로 김승현은 잘 풀릴 때는 막을 수 없지만 어이없는 실책도 상당히 많은 유형의 선수였다.
물론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당시 오리온스는 지는 것보다 이기는 경기가 훨씬 많은 팀이었고, 풀타임 소화가 다반사였던 김승현은 실책을 해도 다음에 만회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부담 없이 넘어갔다. 시간은 흘렀고 김승현은 어느새 35세의 베테랑이 됐다. KBL 최고참급이 된 나이와 달라진 유니폼만큼이나 김승현을 둘러싼 환경과 기대치도 변했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거침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돌격대장'이었다면, 이제는 경기 전체를 아우르고 안정적으로 관리해야하는 '사령관' 역할이 주어졌다. 임무도 40분 내내 뛰면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에이스나 주전이 아니다. 다만, 5~10분을 뛰더라도 승부처에서 잘 지탱해주는 베테랑의 연륜이 요구된다.
하지만 김승현은 아직도 이러한 역할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모양새다. 경기를 잘 마무리하라고 내보낸 김승현이 도리어 어이없는 실책성 플레이로 팀 패배의 원흉이 되기도 한다. 지난 10일 전자랜드전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은 종료 1분 전까지 6점차로 앞서다가 막판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했다.
삼성은 종료 12.7초를 남기고 리카르도 포웰에게 동점 3점슛을 맞고 위기에 몰렸지만 마지막 공격권은 삼성에 있었다. 볼을 잘 지키면 득점에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연장전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종료 4초를 남겨놓고 김승현의 결정적인 패스미스가 포웰에 걸렸고, 결국 차바위의 역전 버저비터로 이어졌다. 눈앞에서 연승행진에 제동이 걸릴 삼성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김승현의 이런 실책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10월 22일 원주 동부전에서도 종료직전 김승현의 결정적인 턴오버가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다. 당시에도 39분 58초를 내내 리드하다가 마지막 2초를 남기지 못하고 역전 결승포를 내줬다. 한 시즌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치명적인 역전패가 벌써 두 번이나 나왔고, 그 중심에 모두 김승현의 실책이 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승현은 여전히 창의적인 패스로 팬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제 팀에서 그에게 필요로 하는 역할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직시해야할 때도 됐다. 전성기에는 언제나 자신만만했지만, 이제 그에게 주어지는 1분은 경기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1분인 경우가 많다.
야구의 선발투수는 6이닝을 뛰면서 2~3점만 막아도 호투했다고 하지만, 마무리는 1이닝에 1점만 내줘도 다 잡은 승리를 놓칠 수 있다. 김승현은 이제 1선발이 아니라 마무리다. 김승현이 이런 역할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삼성의 반등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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