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20점↓' 프로농구 '닥공' 실종된 이유
평균득점 72.8, 지난 시즌보다 더 하락 ‘저득점 심화’
지나치게 수비에 비중..선수들 창의성과 개성 무시당해
농구는 구기에서도 대표적인 다득점 종목이다.
야구가 많아야 10점 내외, 축구는 한두 골로도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흔하지만, 농구는 한 팀이 100점 이상 기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만큼 공격적인 스포츠라는 것이 농구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KBL에서는 이런 장면을 보기 어렵다. 다득점이 매력인 농구에서 벌써 몇 년째 저득점 현상으로 빈공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2012-13시즌 정규리그 10개 구단 전체 평균 득점은 73.4점으로 역대 최저였다. 올해의 경우 올스타 휴식기 전까지 팀당 평균 득점은 72.8점으로 지난 시즌보다 오히려 0.6점 하락했다. 수준급 신인들의 가세와 전력평준화로 경기내용이 자닌 시즌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수치상으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셈이다.
프로 원년인 1997시즌 당시 팀당 평균 득점은 무려 95.5점이었다. 시대 변화와 수준차이를 감안해도 격세지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한 KBL의 득점력은 2009-10시즌 처음으로 70점대까지 추락했고, 이후 역대 최저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선수들의 개인득점도 하락하고 있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에서는 사상 최초로 경기당 평균 20점을 넘긴 선수가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다. 득점왕 제스퍼 존슨(현 삼성)도 19.72점. 불과 6년 전 KBL 역대 최고득점을 기록한 피트 마이클(대구 오리온스·2006-07시즌)의 평균 35.12득점의 반 토막에 가까운 수치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프로농구의 저득점 현상은 KBL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다. 프로농구가 출범했던 1990년대 중후반과 비교할 때 선수들의 신체조건은 훨씬 좋아졌지만 슈팅과 일대일 기술 등 개인능력은 오히려 퇴보했다. 반면, 체계적인 수비 전술과 전력분석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공격은 기술, 수비는 열정'이라는 표현이 있다. 공격은 아무리 패턴을 따르더라도 선수들 개개인의 기술적 능력치에 크게 좌우된다. 하지만 수비는 기술이 떨어져도 체력과 열정으로 만회가 가능하다. 공격은 그만큼 기복이 있지만 수비에는 기복이 없다. 전력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각 팀들은 더더욱 수비 강화와 전력분석에 공을 들였다.
변칙적인 지역방어와 함정수비가 초창기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고, 치밀한 전력분석으로 상대팀 선수들의 경기 중 습관이자 세세한 동선까지 미리 파악하는 게 가능해졌다. KBL의 수비전술은 외국인 선수나 코치들도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는 대목이다.
하지만 수비농구의 심화는 많은 부작용도 초래했다. 개성의 실종과 경기력 저하는 프로농구의 인기 하락에 한몫을 담당했다. 수비농구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희소성'이다. 수비농구를 구사하는 팀이 있으면 공격적인 농구를 구사하는 팀도 있어야 차별화가 되고 라이벌 구도도 형성된다.
10개 구단이 모두 완성도 높은 수비농구를 하는 게 아니라, 공격이 미흡해서 어쩔 수 없이 수비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수비농구라기 보다는 '빈공' 농구라고 해야 맞다.
불과 5~6년 전만해도 KBL에서도 공격농구를 구사하는 팀들이 분명 존재했다. 김승현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주희정이 MVP에 선정됐던 시기의 안양 KT&G(현 KGC) 등은 화려한 속공을 앞세운 공격농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특히, 김태환 감독이 이끌던 2000-01시즌의 창원 LG는 지금도 KBL 역사상 최고의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LG는 103.3점으로 KBL 역사상 유일하게 평균 득점 100점대를, 조성원은 25.7점으로 역대 토종 선수 한 시즌 최다득점기록도 세웠다.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화끈한 외곽포를 앞세운 LG의 공격농구는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런 팀들은 물론 뛰어난 스타플레이어의 존재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격적인 농구를 펼치겠다는 의지의 차이였다.
최근에는 한 시즌 리그 전체 통틀어도 한 경기 100점대를 기록하는 경기를 손에 꼽을 정도다. 20점은 고사하고 평균 15점 이상 넘기는 토종 선수도 찾기 어렵다. 현재 KBL 토종 득점 1위는 KT 조성민으로 15.28점에 불과하다.
이러한 빈공 현상이 장기적으로 한국농구의 경쟁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최근 몇 년간 한국농구가 국제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수비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지난 아시아선수권에서 역대 최고수준의 수비조직력을 자랑했던 유재학호도 준결승에서 필리핀의 개인기를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공격보다는 수비가 체력적-정신적으로 훨씬 더 소모가 크다. 아무리 수비가 빼어나도 선수들의 개인능력과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기를 지배할 수 없다.
과거 한국농구에는 이충희나 허재처럼 국제무대에서도 상대팀에 충분히 위협을 주는 해결사가 존재했다. 이들이 뛰어난 것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스스로 경기를 풀어가려는 능동적인 의지와 창의성이 존재했다. 흔히 천재형 선수로 평가받지만, 정작 누구보다 많이 땀을 흘린 노력파였다는 것도 유명한 사실이다.
과연 요즘 선수들이 예전 선배들에 비해 재능이 부족하거나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타고난 재능이야 최정상급 수준의 선수들간 다소 격차가 있을지 몰라도 평균적인 선수들의 신체조건이나 운동 환경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발전했다. 선수들 개인의 자질보다는 오히려 한국농구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빈공현상의 원인을 찾는 게 옳다.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기본기나 기술 위주의 즐기는 농구보다는 학원스포츠에서 프로에 오기까지 성적 위주의 이기는 농구에만 길들여져 있다. 아직 성장 중인 어린 선수에게도 잘하는 부분만 요구하고, 못하는 부분은 보완하기보다는 아예 못하도록 가르치기 일쑤다. 정말 특출한 소수의 선수를 제외하면 조직력이나 팀플레이를 추구한다는 명분하에 희생을 강요받고, 조금만 튀는 플레이를 해도 이기적이라는 선입견이 따라붙기 십상이다.
이런 환경은 선수들이 성인이 되고 프로에 진출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성장기 내내 창의적이거나 능동적인 플레이에 익숙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선수들이 프로와 와서 갑자기 스타일을 바꾸기는 어렵다. 더구나 프로는 정규리그만 54게임의 대장정이다. 선수층은 부족하고 일정은 혹독하다보니 가뜩이나 선수들이 수준 높은 경기력을 꾸준히 보여주기 힘든 상황이다.
비시즌에도 기술적인 성장보다는 장기레이스를 버티기 위한 체력과 조직력 보강에 팀 훈련의 대부분 시간이 소모된다. 선수들 개개인의 수준이 높아지지 못하는 한, 그 부담은 고스란히 프로농구 전체 경기력의 질적인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KBL은 다음 시즌부터 경기시간을 기존의 40분에서 아예 48분으로 더 늘리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을 일으켰다. 어느 정도는 프로농구의 저득점 현상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기수 조절이나 플레이의 질적인 수준향상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인 경기시간의 확대는 KBL이 처한 위기의 본질을 망각한 근시안적인 결정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프로농구가 '마니아 스포츠'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프로농구 방송중계 시청률이 다른 경쟁종목과 비교해도 현저히 뒤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곧 프로농구라는 컨텐츠가 가진 대중성과 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의미다. 최근 프로농구의 고질적인 문제로 떠오른 저득점 현상은 지금 KBL이 '농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대중적인 매력을 얼마나 잘 살려내고 있느냐'는 대표적인 의문 사례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