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정치를 결산하다>가처분 신청후 감감 무소식
'통진당과 이석기 RO' 일심동체 규명이 심리 핵심
‘통합진보당의 운명은 이석기에 달려있다?’
75.5%, 66.1%, 63.9%. 11월 5일 데일리안, 9월 16일 문화일보, 9월 5일 JTBC가 각각 통합진보당 해산을 놓고 벌인 여론조사에서 나온 ‘찬성’ 비율이다. 전부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조사매체 모두 보수성향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독재시대를 겪었던 지난 역사 때문에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부의 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우리나라 정서상 ‘헌정사상 최초 당 해산위기’라는 정당을 두고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이미 한편으로 여론수렴이 됐음을 의미한다.
통진당 해산에 대한 국민 여론은 이처럼 압도적이지만, 지난달 5일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안과 정당활동 가처분 신청서를 낸 뒤 현 상황은 감감무소식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지난 24일 법무부와 통진당 간 첫 변론준비기일을 열고 맞붙은 결과, 법무부에 유리한 증거범위가 확대되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증거채택을 하기로 하면서 다소 진전이 있긴 했지만 여론에 비해 걸음이 더딘 것은 사실이다. 2차 변론준비기일은 내년 1월 15일이다.
이러한 ‘거북이 걸음’의 배경에는 ‘이석기 사건’이 있다. 당 해산심판 청구가 이석기 통진당 의원의 일명 ‘종북(從北)혐의’로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이 의원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당 해산 사건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앞서 이 의원은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를 받은 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돼 구속됐고, 검찰 수사 결과 당내 종북활동(RO(혁명조직))의 수장으로 지목됐지만 통진당은 이 의원을 무조건적으로 감쌌다.
통진당 해산 사건 주심인 이정미 헌재 재판관 등이 보는 사건의 향후 쟁점 4가지에서도 이 부분은 언급된다. 4가지는 △통진당 강령·목적·활동의 민주적 기본질서 위협 여부 및 인정 범위 △정당해산심판 청구의 절차적 하자 여부 △‘RO사건’ 등 정당 구성원 개별활동의 정당활동 귀속여부 △통진당 해산 결정시 의원직 상실 여부 등인데 최근 초점이 되는 것은 이중 첫 번째지만, 역시 핵심은 이 의원이 연루된 세 번째라는 게 중론이다.
한 전문가는 ‘데일리안’과 만나 “당 강령만으로는 해산이 간단하지 않다. 헌재와 법무부 모두 당 강령만으로는 해산에 대한 사례가 마땅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면서 “핵심은 이 의원과 RO가 당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당은 ‘RO의 외피’에 불과하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재는 ‘이석기 사건’ 1심은 보고 (통진당 해산심판을) 가야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라고도 전했다.
통진당 사건과 이 의원 사건을 긴밀하게 연계시켜야한다는 주장의 선봉에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있다. 그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통해 “통진당 강령은 대부분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내용들이며, 북한과의 연계 부분도 반박 가능한 내용들 위주로 구성돼있어 현재의 해산심판청구서로는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핵심은 ‘통진당’이 아니라 ‘이석기 RO’라는 점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진당 해산심판청구서가 ‘이석기 RO’의 목적과 활동이 위헌이라는 사실을 밝힌 뒤 ‘이석기 RO’와 통진당이 사실상 일심동체라는 걸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는 “정상적인 당이라면 문제가 된 이 의원을 들어냈을 것인데 당 전체가 이 의원을 비호하고 있다”며 “당에서 RO모임을 당 공식모임이라고 했는데 당 모임에서 폭탄 얘길 (공공연하게) 꺼내는 게 맞는가”라고 지적했다.
통진당 강령·당헌 등 살펴보는 일도 소홀히해선 안돼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이헌 공동대표도 본보와의 통화에서 “통진당이 ‘이석기 사건’을 개인의 문제라고 정리한 게 아니라 ‘통진당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결론적으로 ‘이석기 사건’은 통진당 그 자체이고,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을 알게 하는 바로미터”라고 정리했다.
특히 통진당 강령을 문제 삼을 경우,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 전까지 함께 당을 만들어 활동했던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와 유시민 전 의원 등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심 원내대표와 유 전 의원 측도 종북혐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결국 통진당 해산여부는 내년 2월 중순경 ‘이석기 사건’의 판결이 나온 뒤 급(急)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석기 사건’을 맡고 있는 재판부는 진행 중인 신문을 마치고 국정원이 제출한 녹음파일 청취 및 피의자 신문을 거친 후 1월 중순 결심공판을 갖고 한달 정도 판결문을 작성해 2월 중순 판결을 내린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증거로 내놓은 녹음파일이 증거로 채택될지, 이 증거가 내란음모로 인정될지가 판결의 핵심이다.
아울러 통진당 해산 사건이 해결되기 위해 ‘이석기 사건’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통진당 강령·당헌 등을 살펴보는데 있어서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말이 나온다. 헌법 제8조 4항은 정당 해산심판 청구사유를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라고 한정하고 있는데 이 공동대표는 “여기서 ‘목적’은 강령·당헌 등을 말한다”고 전했다.
이 공동대표에 따르면, ‘민주적 기본질서’는 과거 판시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통진당의 강령에는 ‘자유’ 또는 ‘시장경제’를 전제로 하는 어떤 언급도 없다. 또 통진당 당헌에 명시된 ‘우리 사회의 근본적 혁신을 위해 투쟁하는 정당’이라는 표현은 의회주의가 아닌 폭력적 수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통진당은 지난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결합해 창당됐다. 2012년 4월 총선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통합당(현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이뤄 성공적인 총선을 치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같은 달 국민참여당 출신 이청호 부산 금정구 공동지역위원장이 당 홈페이지에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을 제기한 뒤 당이 분열됐다.
당 비례대표 경선 진상조사위원회가 비례대표 경선이 ‘총체적 부실’이라고 발표한 후 이정희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한 일명 ‘당권파’와 심상정·유시민·조준호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당권파’ 간 폭력사태가 발생했으며, 이에 따라 비상대책위원회도 따로 꾸려졌다. 이때 비당권파 측 비례대표 당선자들은 사퇴수순을 밟는 등 정리가 됐지만, 이석기·김재연 당선자 등 당권파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버텼다. 이 의원은 ‘당권파의 배후’로도 지목됐다.
비당권파는 이후 두 당선자에 대한 제명절차에 착수했지만, 의원총회서 제명안이 부결됐다. 비당권파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통진당을 탈당,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꾸렸다. 사건 이후 통진당은 당권파 체제로 굴러가게 됐으며, 18대 대선후보, 신임 당대표에 잇달아 이 대표를 선출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는 대외용일뿐 이 의원이 당권파를 이끄는 핵심인물이란 설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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