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는 올해 만 40세가 되는 백전노장이지만, 기량만큼은 전성기 그대로다. ⓒ LG 트윈스
스포츠 스타들만큼 세월의 흐름을 절박하게 느끼는 직업도 드물다.
보통 직장인들이라면 50~60대나 돼서야 느낄법한 명퇴의 압박을 빠르면 30대 초반부터 일찍 경험하게 되는 게 바로 운동선수들의 숙명이다. 심지어 나이든 선수는 조금만 못해도 한물 간 게 아니냐는 꼬리표가 따라붙기 십상이다.
'야신'으로 불리는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은 평소 인터뷰와 저서 등을 통해 노장의 가치를 폄하하는 세상의 편견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은 "베테랑의 역할은 고비 때 빛을 발한다. 베테랑이 1년 내내 모든 경기에서 활약해주길 기대하면 안 된다"며 "1년에 승부처는 30경기 정도인데 그 고비를 넘기는 힘이 바로 베테랑의 경험에서 나온다. 단 한 경기라고 해도 팀을 위해 중요한 순간에서 해준다면 1년 몸값을 해내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성근 감독 본인도 지도자로서 나이가 주는 선입견을 많은 겪은 인물이기도 했다.
한국야구의 레전드이자 장수 스타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종범이나 양준혁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변함없이 뛰어난 기량을 뽐냈다. 이들은 개인 기량은 물론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리더십으로 선수단에서도 후배들을 아우르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장수는 운동선수에게 전성기라는 기준을 새롭게 해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프로야구를 빛낸 최고의 베테랑 선수는 단연 이병규(LG)다. 1974년생으로 올해 만 40세가 되는 이병규는 지난해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를 비롯해 타격왕(타율 0.348)에 오르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는 이병규와 비슷한 나이대의 이종범이나 양준혁이 보여줬던 성적을 훨씬 능가한다. 혼자만 잘한 게 아니라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 담당, LG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앞장섰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다시 FA 자격을 얻은 이병규의 맹활약에 LG 구단은 3년간 계약금 1억5000만원, 연봉 8억원 등 총액 25억5000만원의 계약으로 화답했다. 불혹의 베테랑 선수가 제시받은 계약조건으로서는 파격적이다. 이병규는 올 시즌 28안타만 추가하면 대망의 통산 2000안타 고지에도 등극할 수 있다. 이병규의 가치는 40대에도 철저한 자기관리만 된다면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는 멋진 선례를 남겼다.
2014시즌 프로야구에도 적지 않은 불혹의 베테랑들을 현역으로 만날 수 있다. 이병규는 물론이고 같은 LG 소속인 류택현은 1971년생으로 만 43세로 현역 최고령이다. 지난해 LG 불펜의 한 축을 담당했던 류택현은 투수 최초 통산 900경기 출전을 단 1경기 앞두고 있다.
만 41세인 넥센 송지만도 변함없이 다음 시즌에도 그라운드를 누빈다. 지난해 연봉 8000만원을 받았던 송지만은 팀 공헌도를 인정받아 2000만원 인상된 1억원을 받아 다시 억대연봉자 대결에 합류했다. 삼성의 3연패를 이끈 포수 진갑용도 1974년생으로 이병규와 같은 만 40세다. '세이브 포수'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진갑용은 예전처럼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도 중요한 순간마다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든든한 보루다.
변함없이 오랫동안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부진을 털고 재기를 꿈꾸는 베테랑들도 있다.
김병현(넥센), 서재응, 최희섭(이상 KIA), 김선우(LG) 등 박찬호와 함께 한국야구의 메이저리그 1세대를 이끌었던 주역들은 어느덧 30대 중후반의 나이가 돼 올 시즌 부활을 꿈꾼다. 저마다 지난해 최악의 시즌을 보내며 연봉 삭감과 방출 등 시련의 시간을 보냈던 선수들이기에 올 시즌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프로야구 마지막 100승 투수인 박명환(102승)과 2001년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 신윤호가 돌아온 것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박명환은 NC에 새 둥지를 틀어 4년 만의 그라운드 복귀를 앞두고 있고, 신윤호 역시 SK에서 6년 만에 야구공을 잡았다. 이들의 롤 모델은 지난해 NC에서 재기에 성공한 손민한이다.
비록 프로 무대는 아니지만 최근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한 김수경과 최향남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창단 이후 꾸준히 프로진출 선수들을 배출해왔던 원더스에서 비록 전성기기는 지났지만 거물급 경력의 선수들을 영입했다는 것만으로 화제를 모으기 충분했다. 이들이 원더스에서 김성근 감독의 조련에 힘입어 프로로 재기할 수 있을지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야구에 대한 열정에는 나이가 없다. 기회가 남아있는 이상, 베테랑들이라고 해서 끝까지 도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음 시즌에는 누가 베테랑들의 저력을 보여줄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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