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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홀릴' 안현수, 빅토르 최 영혼 부른다


입력 2014.02.09 17:09 수정 2014.02.09 17:16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빅토르 최 이름 차용으로 러시아서 존재감 드러내

가장 희망하는 금메달로 러시아팀 쇼트트랙 계주 꼽아 '현지화'

안현수는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다른 종목은 몰라도 5000m 계주에서 만큼은 꼭 메달을 따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 연합뉴스

초코파이는 러시아 국민 간식이다.

러시아가 초코파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꿀벌 식성’에 있다. 달콤한 초콜릿과 마시멜로, 파이를 유독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이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초코파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간식이다.

초코파이와 함께 러시아 입맛을 공략한 한국산 간식으로는 도시락 라면이 있다. 지난 1991년 모스크바에 진출해 러시아 용기면 시장 점유율 60%에 이르고, 푸틴 대통령도 즐겨 먹는 국민 식사 대용품으로 성장했다.

러시아 국민 간식이 된 초코파이와 도시락 라면 열풍을 보면서 ‘쇼트트랙 황태자’ 안현수(28)가 떠오른다. 초코파이와 도시락 라면, 그리고 안현수. 동떨어진 이질적 관계지만 분명한 ‘공통분모’가 있다. 러시아 입맛과 정서를 파고든 ‘현지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2014년 러시아에서 초코파이 상품은 ‘현지화’에 박차를 가했다. 마시멜로 질감 향상으로 더욱 진한 초코파이를 만들었다. 도시락 라면 기업 또한 러시아 국민 소스인 마요네즈 양념을 추가했다. 안현수도 러시아인에게 강렬한 전설로 남은 ‘빅토르 최’의 닉네임을 차용, 빅토르 안으로 러시아를 홀릴 준비를 마쳤다.

안현수가 차용한 ‘빅토르 최’는 누구인가. 러시아인에게 빅토르 최는 아련한 추억이자 불멸의 영웅이다. 고려인 3세 빅토르 최(1962~1990)는 구소련(러시아) 시절 국민 록 가수다. 교통사고로 요절한 그는 자유를 갈망한 러시아 젊은이들의 문화대통령이었다.

빅토르 최가 1990년 8월 15일 의문의 교통사고로 숨지자 러시아 전역 수천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울분을 토했다. 10대 여학생 5명은 일주일 간격으로 “빅토르 최와 하늘서 교감을 나누겠다”며 몸을 내던졌다. 모스크바 예술광장 아르바트에는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빅토르 최 추모의 벽도 있다. 러시아 음반협회는 1993년 빅토르 최를 명예의 전당에, 푸틴 대통령은 2002년 석조 비를 세웠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는 ‘빅토르 안’으로 개명한 배경에 대해 “승리를 뜻하는 영어 빅토리와 발음이 유사하고, 러시아서 전설이 된 고 빅토르 최를 기리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 젊은이들은 안현수의 결정에 깊은 호감을 드러냈다.

모스크바 출신 한국 거주 올레그 키를토프 씨(36)도 SNS 인터뷰를 통해 “안현수의 사연을 잘 알고 있다”며 “그가 빅토르 최를 기려 빅토르 안으로 바꾼 결정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대단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의 건투를 빈다”고 전했다.

또 안현수는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다른 종목은 몰라도 5000m 계주에서 만큼은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모든 멤버가 합심해서 따낸 금메달이기 때문에 더욱 더 값질 것이란 것이 그의 설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는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라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러시아 정서를 파고든 안현수가 제3의 현지화 한류 아이콘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실제로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유럽 쇼트트랙 대회서 안현수 인기가 감지됐다. 500m, 1000m, 3000m, 5000m 계주서 4관왕에 오르자 푸틴 대통령은 “파죽지세 천리마를 얻었다”며 포효했다. 안현수를 애지중지하는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도 “소치 올림픽이 끝나면 안현수는 국가적 영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취재진에게 귀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 불곰’ 푸틴 정권은 소치올림픽에 무려 53조 원의 국가 예산을 쏟아 부었다. 역대 올림픽 최대 규모다. 푸틴은 직접 각 종목에 배분하면서 “조국의 위신이 걸린 대회”라고 수십 차례 강조해왔다. 러시아는 1998년 재정 악화 이후 여전히 정세가 불안정하다. 푸틴은 올림픽 성공개최를 통해 국민 사기를 북돋아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심산이다

그 중심에 러시아 불멸의 가수 빅토르 최 영혼을 품은 ‘빅토르 안'이 있다. 자의 반 타의 반 러시아로 건너간 안현수가 모진 풍파를 딛고 일어선 또 다른 의미의 애국자인 이유다.

한편, 안현수는 여자친구 우나리 씨의 든든한 격려 속에 10일 오후 6시 45분부터 열리는 남자 쇼트트랙 1500m 예선에 러시아 대표로 출전한다. 이어 13일 1000m 예선과 5000m 계주 예선, 15일 500m 예선에 나설 예정이다.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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