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소사이어티 칼럼>성공적 변신 위한 따듯한 조언 '모성의 리더십' 절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문민정부 이후 치러진 역대 대선에서 가장 높은 51.6% 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이자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 동안 보수 정권을 철저히 외면했던 호남 지역에서도 1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는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지난 대선은 박정희 대통령 사후 과거 25년 동안 정권의 노골적인 무관심과 은근한 냉대 속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인고의 날을 살아온 은둔의 여인 박근혜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한국판 대처라 불리는 이 철의 여인 박근혜에게 큰 기대를 걸며 그녀의 첫걸음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경제부흥 국민 행복 문화 창달이라는 3대 국정 목표를 갖고 임기를 시작한 박근혜 정부는 취임 일 년이 지난 지금 여러 도전에 직면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재야 단체와 야당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빌미로 하여 광화문 네거리와 서울역 광장을 점령한 채 대선 불복 운운하며 연일 박근혜 정부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열고 있고,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대통령 퇴전 운동까지 벌이는 등 정국이 자못 소란스럽다.
철도 파업에다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까지 겹쳐 민관 사이에 갈등의 골도 깊다. 이 혼란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 말하며 여론에 영합하지 않고 좌고우면함이 없이 국정 과제 수행을 위해 정진하고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도 “대전은요?” 라는 한 마디로 대중을 감동케 했던 그 철의 여인은 지금도 변함없이 나랏일을 챙기는데 열심이다. 그런데 대중의 뜨거운 지지를 받던 대통령이 왜 지금 여러 단체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의 소통 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
대통령의 소통방식에 정말 문제가 있나?
대통령도 주변의 지적에 부응하여 소통을 위해 애쓴다. 야당 인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으려 한다. 그런데도 뒤끝은 매번 좋지 않다. 대화 상대방은 늘 잔뜩 화가 나서 청와대를 나선다. 소통이 일방적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인다. 당연히 만남의 의미는 퇴색하고 정치는 후퇴한다.
링컨은 적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라 하였다. 효과적인 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율곡 이이 선생은 선조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에서 “정귀이시(政貴以時)요 사요무실(事要務實)”라 하였다. 정치는 때가 중요하고 일을 할 때는 실질에 힘을 쓰라는 말이다. 이 말은 혁신과 개혁은 단호히 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으나, 실질적인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정치적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안철수의 청춘 콘서트에 인파가 몰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얘기를 다룬 영화 ‘변호인’이 신드롬이라 부릴만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걸 보면 대중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불통이라 불리는 자신의 가부장적인 소통 방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 각 부처 장관들이나 참모들은 그녀의 카리스마에 눌려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핀다는 말도 세간에는 들린다. 대통령이 주변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수록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 국정에도 당연히 큰 주름이 잡히지 않을 수 없다.
주변의 거센 비난을 사고 있는 대통령의 소통 방식을 바꾸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필자는 소통 장애의 이유를 알고 나면 얼마든지 소통의 변화와 소통의 진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열린 마음을 가진 부드러운 지도자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진적인 국가라면 뛰어난 영도자가 가부장적 리더십을 발휘해 국가를 앞장서서 이끄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박정희 시대에 가부장적 리더십의 효용성을 톡톡히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과거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국은 선진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고도의 교육을 받아 국민들은 매우 지적이다. 가족관계를 비롯한 사회 조직도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으로 변했다. 시민 사회는 다양해졌고 스스로 성숙을 거듭한다. 기업 역시 세계적으로 성장해 세계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본래 박근혜 대통령은 열린 마음을 가진 부드러운 스타일
지금 이 땅은 다양성이 넘치는 역동적인 개방적 사회로 변모했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헌신적인 열정과 진정성을 갖는 리더십이라 해도 일반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없는 일방적인 가부장적 리더십은 그 효용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고 생각이 옳다고 해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것은 서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권력의 속성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부장적 리더십의 한계를 극복할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것을 친구의 리더십 혹은 목동의 리더십이라 부르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의 예를 보자. 그는 아직도 일반 대중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비결은 단순하다. 대중들이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와 일반 대중 사이에는 서로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영역이 분명 존재하다. 그러니 개봉한지 보름도 되지 않아 800만 명이란 어마어마한 인파를 극장으로 끌어들이지 않는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의 생각과 마음에 공감하기에 최면에 이끌리듯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과거 양떼를 몰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후미에서 이끌어 다른 사람들이 선봉에 있다고 믿게 하라‘고 말했다. 상대의 자유 의지를 믿고 상호 신뢰하면 굳이 앞장서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새겨들을 이야기다.
아무튼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다르다. 인간 노무현은 다소 경솔해 보이고 충동적이나 솔직하고 말을 잘 한다. 박근혜는 모범적이고 신중하고 절제를 안다. 사려가 깊고 말수도 적다. 한 사람은 공격적이고 한 사람은 방어적이다. 그러나 그 내공의 깊이와 무게감을 비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의 적수가 못 된다.
이처럼 두 사람은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한 사람은 기품 있는 귀족 같고 한 사람은 장바닥을 구르는 천민 같다. 두 사람은 대중의 친밀도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 손을 내뻗으면 노무현은 활짝 웃으며 성큼 가슴 안을 파고들어 올 것만 같은 천진난만해 보이는 사람이고, 박근혜는 신비의 벽에 가려 있어 노랫말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기만 하다.
당연히 대중과의 공감 영역에서는 박 대통령이 들어 설 자리가 비좁아 보인다. 이질감을 극복하려면 대통령이 먼저 세상의 변화상을 받아들이고 대중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대중 친화적인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그 외연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확장시켜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마음을 비운 채 경청하는 그것이 박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소통의 방법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사람의 충고와 지적을 받고도 자신의 스타일을 잘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어쩌면 주변 참모들 보다 본인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리더십과 소통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게 유난히 어려운 이유를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의 감정적인 관계에서 찾고 싶다
큰 산 아버지와의 복잡한 심리적 관계 재설정해야
근검 절약하는 생활 습관, 신중한 언행, 철두철미한 일 처리, 3개년에 걸친 경제 혁신 계획을 밝히면서 각료와 참모들에게 ‘하루도 쉬어서는 안 된다’고 다그치는 전투적인 모습, ‘국민의 행복 이외에는 모든 것이 번뇌’라 외치는 순교자적인 자세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닮지 않은 구석이 없다. 생활습관과 성격은 물론이고 가치관까지 고스란히 박정희 대통령을 물려받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아바타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필자는 부녀간에 이같이 놀라운 구석이 있다는 걸 느끼면서 여성의 부드러움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고 오로지 전의만 불태우는 투사(鬪士) 같은 박 대통령의 가부장적인 리더십의 성격을 살필 수 있었다. 별안간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딸로서의 죄책감과 아울러 미완으로 남겨 놓은 아버지의 꿈을 자신이 대신 꼭 이루어 아버지 영전에 바치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피가 끓는 뜨거운 소망이 그녀의 가부장적 리더십에 반영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망이 강한 만큼 마음이 조급하고 여유가 없어 소통의 방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이란 맹자의 생각이 조선으로 건너 와서는 율곡 이이를 통해 ‘정신보다 밥이 더 중요하다’는 주기론(主氣論)으로 이어졌다. 공리공담을 배척한 실용주의자 율곡 이이의 철학은 400년이란 세월이 흘러 율곡 이이를 흠모하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마침내 이 땅에서 그 결실을 거두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 날 한국의 모습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혁명에 대한 박정희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충분한 시대적 소명을 다했음을 이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 시대에 대한 판단은 역사에 맡겨 자신의 가슴에 담아 둔 아버지에 대한 한을 훨훨 떠나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딸로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뽑은 유권자의 마음도 헤아려주길
아버지의 시대와 자신의 시대가 다름을 알고, 아버지의 소명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역시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3대 국정 과제인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창달을 곰곰이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여유로운 여가를 즐길 수 있으면 국민이 행복해질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답은 아니다.
물질적 풍요와 다채로운 문화생활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걸 서구의 높은 자살률이 말하고 있다. 자살의 가장 큰 동기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다.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는 공정사회, 패자들에게 기회가 있는 열린 사회, 누구든지 살만한 가치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의미사회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3년 내 개인 소득 3만 불 시대를 여는 것 보다 더 긴요하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자살국가다. 삶의 여건이 지구상에서 가장 열악한 국가라 할 수 있다.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압축 고도성장의 그림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가 이 땅에 뿌린 압축성장의 그늘을 이젠 거두어들이고 그 상처를 치유해야 할 시대적 책무가 있다.
전투적인 성장 중심의 사고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고 격려할 수 있는 모성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마땅히 발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선출한 유권자의 의중을 헤아려 그 뜻에 화답할 의무도 있다. 앞으로 남은 박근혜 정부의 4년 임기가 진정한 민족 번영을 위한 새로운 도약의 시기가 되길 빈다.
글/신용구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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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신용구 원장은 글을 많이 쓰는 정신과 전문의다. 개업의 활동과 별도로 역사 인물들의 여러 행동 유형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 왕건, 궁예 등 역사 인물 16인의 정신분석을 한 '콤플렉스 역사 읽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분석한 '박정희 정신분석, 신화는 없다'와 함께 2년 전 장편소설 '나, 박정희'를 펴냈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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