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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서 뺨맞고 여의도서 분풀이 당한 밴(VAN)사


입력 2014.03.13 13:29 수정 2014.03.13 15:11        윤정선 기자

금융당국, IC 단말기 교체 비용 압박 수단으로 밴사 활용

카드사 정보유출 터지자 밴사에 대한 감독 의지 보여

13일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이하 '한신협')로부터 단독 입수한 '밴 시장 구조 개선 방안(공청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개인정보 유출의 진원지로 알려진 밴 대리점 스스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데일리안

최근 금융감독당국이 카드사 기획담당 임원을 불러모아 결제대행업체인 밴(VAN)사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엄중 경고한 가운데 이 소식을 들은 밴사는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이다.

막상 자신들은 지난해 금융당국으로부터 밴 대리점의 감독을 요청했지만 받아드리지 않았다며 억울해하고 있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지니 IT내부통제에 대한 허술한 관리·감독이 여론에 질타를 맞으면서 민간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정책을 책임지는 금융위원회에서는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채 철저한 검증을 소홀히 한 셈이다. 또한 민간금융회사의 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금융감독원에서는 자신들의 반성없이 카드사에 뭇매만 가할 뿐이다.

더욱 IC 단말기 교체와 같은 비용을 물리기 위해 책임만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밴사로서는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분풀이 당한' 모양새다.

13일 금융업계와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이하 한신협)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작성된 '밴 시장 구조 개선 방안'이라는 공청회 발표 자료를 보면 지난해 7월 밴 대리점들은 금융위원회에 '밴 대리점 인증제'를 요청했다.

밴 대리점 인증제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일정한 요건을 갖춘 대리점만 밴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대리점 간 과도한 리베이트를 막고 개인정보 유출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한신협이 내놓은 자구책이다. 사실상 밴 대리점 스스로 자신들에 대한 규제가 없다며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요청한 셈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아무런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최근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자 카드사에 밴사를 제대로 검사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제 발에 불똥이 떨어지자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카드결제시스템을 실제로 구축하는 건 카드사가 아닌 밴사와 밴 대리점이다. 더 엄밀히 따지면 밴 대리점이다.

카드사는 가맹점에서 카드결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밴사에 인프라 구축을 위탁한다. 밴사는 이를 밴 대리점에 재위탁한다. 결국, 전국 가맹점을 돌며 카드 단말기를 설치하고 종이전표 수거 업무를 하는 곳은 밴 대리점이다.

밴사나 밴 대리점이 카드결제 업무를 도맡다 보니 민감한 금융정보가 여기서 세어나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일부 밴 대리점에선 가맹점 정보를 팔아넘긴 사실도 포착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밴사나 밴 대리점을 규제할 근거가 없다며 방관해왔다. 밴 사업자는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자로 금융회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금융당국은 카드사를 통해 밴사를 간접적으로 규제했다.

금융당국이 밴사를 간접적으로 규제해왔다고 하지만 밴 대리점과 같은 하부조직까지 제대로 감독했을리는 만무하다. 밴 대리점도 자신들이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인정한다.

조영석 한신협 사무국장은 "밴사를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넣고 관리·감독해야 하는 게 정상"이라며 "직접 금융당국이 우리를 관리·감독해야 밴 대리점 사이에서도 시장질서가 제대로 선다. 지금까지 우리는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꾸준히 금융당국에 인증제 도입 등 우리를 감독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개인정보 유출이 터지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쏘아붙였다.

갑작스레 금융당국이 밴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건 IC 단말기 보급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IC 단말기 전환은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비용을 카드사에 물리기 위해 압박 카드로 밴사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카드사를 압박해 800억원 정도 기금을 모아 IC 단말기 전환에 투입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밴사를 압박하는 것은 IC 단말기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며 "정보유출을 계기로 보안성이 높은 IC 단말기가 화두로 떠오르자 금융당국은 카드사와 밴사를 압박해 비용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그는 "결과적으로 카드결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밴사나 밴 대리점도 상당 비용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밴사에 대한 감독 강화는 IC 단말기 보급과 무관하지 않다고 일부 인정하면서도 800억원 규모의 기금마련 문제는 오히려 영세한 가맹점과 밴 대리점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IC 단말기 보급을 위해선 인프라를 구축하는 밴사와 협력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밴사에 대한 관리·감독 수준이 어느 정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드사로부터 모은 기금은 밴 대리점이 영세한 가맹점의 단말기를 교체해주는 비용으로 쓰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편, 과거 밴 대리점이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요청했는데도 이를 무시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밴사와 밴 대리점 모두 금융기관이 아니다"며 "관리·감독 문제는 카드사의 몫이다. 하지만 앞으로 모집인 등록제 등을 시행해 직접적인 통제 범위를 늘릴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윤정선 기자 (wowjot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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