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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한공주' 20만 돌파, 의미 있는 이유


입력 2014.05.13 10:30 수정 2014.05.13 10:35        부수정 기자

성폭행 피해자 이야기 담은 독립 영화의 저력

절망 속에서 희망 찾는 데 중점 '관객 호평'

지난 달 17일 개봉한 독립영화 '한공주'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무비꼴라주

여고생 '한공주'가 어른들에게 둘러싸인 채 앉아 있다. 고개를 푹 숙인 공주는 이내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한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지난 달 17일 개봉한 독립영화 '한공주'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달 25일 한국 독립영화 사상 최단 기간에 1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20만 관객을 넘어섰다. 1∼2만 관객만 돌파해도 '대박'으로 보는 독립영화계에서는 이례적이다.

이 영화는 평일에도 2000 명 이상의 관객을 꾸준히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0위권을 유지하고 있어 당분간 흥행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공주'는 개봉 전부터 국내외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수작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과 CGV무비꼴라쥬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제13회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금별상, 제43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타이거상, 제16회 도빌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상·국제비평가상·관객상 등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마라케시 영화제 심사위원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한공주'에 대해 "미장센, 이미지, 사운드, 편집, 연기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내 나이에도 배울 점이 아직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극찬했다. 프랑스 유명 배우 마리옹 코티아르는 한공주를 연기한 천우희에 대해 "연기가 훌륭하고 놀랍다"며 "팬이 될 것 같다"고 호평했다.

이수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한공주'는 집단 성폭행을 경험한 여고생 한공주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가려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린다.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은 이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지난 달 17일 개봉한 독립영화 '한공주'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무비꼴라주

이 영화의 배급을 맡은 CGV 무비꼴라주 홍보팀 관계자는 "기존에 성폭행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성폭행 자체나 피의자에게 복수 하는 것에 초점을 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한공주'는 피해자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자극적이지 않게 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객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삶을 이어가고 싶은 한 소녀의 희망을 보고 공감한 것 같다"고 영화의 흥행 이유를 전했다.

이 감독 또한 지난 3월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어떤 사건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다"라고 강조한 뒤 "성폭행이라는 소재보다 힘든 상황에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소녀의 모습에 중점을 뒀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이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공주의 시선을 따라 흘러간다. 공주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친구마저 자살하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 굳게 닫힌 공주의 마음을 열게 한 건 친구들과 음악이었다.

하지만 공주는 여전히 세상이 무섭다. 친구 은희(정인선)가 노래를 잘 하는 공주를 위해 인터넷 팬클럽 카페를 만들자 공주는 갑자기 화를 낸다. 성폭행 가해자 학생들의 부모들을 피해 숨고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피해자는 고통에 짓눌린 채 살아가고 가해자는 당당하게 살아가는 부조리한 사회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 말미 가해자의 부모들은 자식들 앞길을 책임지라며 공주에게 탄원서를 들이내민다. 한바탕 소란으로 공주가 이전 학교에서 겪은 성폭행 사건이 밝혀지고 공주는 이내 캐리어를 끌고 거리에 나선다.

누구도 상상 못할 고통 속에도 공주는 영화 내내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크게 화를 내는 법도 없다. "근데요. 제가 사과를 받아야하는데, 왜 도망가야해요?"라고 말할 뿐이다. 슬픔과 분노를 표현할 수 없는 공주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영화 속 어른들은 "잘못한 게 없다"는 공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가정과 사회라는 울타리 조차 공주를 철저히 소외시킨다. 아픔을 딛고 희망을 찾는 힘은 오롯이 여고생 공주에게서 나온다. "도대체 공주의 잘못이 뭐냐?"는 한 관람객의 한 줄 평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화두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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