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가 피렌체에 두고 온 것은 무엇일까?
<유럽에 미치다⑫-이탈리아 피렌체1>'연인들의 성지'가 돼 버린 도시
“꿈에서 본 것을 말해주랴?
햇빛 반짝이는 고요한 언덕에
어두운 나무숲과 누런 바위 그리고 하얀 별장
골짜기에 놓인 도시.
하얀 대리석 성당들이 있는 도시 하나가
나를 향해 빛을 발한다.
그곳은 피렌체
지금 그곳 좁은 골목에 둘러싸인 오래된 뜰 안에서
내가 두고 온 행복이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
독일의 시인 헤르만 헤세는 그의 시 ‘북쪽에서’에서 피렌체를 ‘두고 온 행복’이라고 애기한다. 그리고 그 ‘두고 온 행복’이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찌 헤세만의 것일까? 피렌체는 그곳으로 향할 때도, 또 그곳을 떠나 올 때도 늘 그곳에 나의 행복 몇 개를 두고 오게 한다. 그 ‘두고 온 행복’이 없으면 다시는 그 도시에 갈 수 없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그곳에 다시 갔을 때 그 ‘두고 온 행복’을 다시 만난다는 그윽한 설렘 때문에.
아르노 강 위로 태양이 내려온다. 강 뒤로 끌려들어가는 태양이 비명을 지른다. 태양의 비명에 놀란 피렌체는 가뜩이나 꽃처럼 붉은 도시의 지붕들이 더 선명하게 소스라친다. 세상에 그 어떤 자연이라서 이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보여줄까? 사람이 만든 것과 하느님이 만든 것 중 더 아름다운 것을 굳이 찾아야 한다면 하느님이 만드신 것에 사람의 손이 더한 것이라고 얘기하면 위선일까? 하지만 하느님이 만든 자연에 더해진 사람이 만든 피렌체는 감동이 너무 벅차 숨을 쉬는 것이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피렌체는 왜 사람들이 이곳을 ‘연인들의 도시’라고 부르는지 알게 해 준다. 이탈리아 북부 비옥한 토스카나 지방의 주도인 피렌체는 그렇게 ‘연인들의 도시’라고 불린다. 세상의 수많은 연인들은 그 도시에서의 사랑을 꿈꾼다. 우연이든 계획된 것이든 그곳에서 꽃처럼 화사하고 봄처럼 아름다운 만남을 그리워한다. 굳이 헤세가 ‘두고 온 행복’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연인들은 그곳에서 행복을 만들고, 그리고 그 행복의 일부를 두고 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을 꿈꾼다. 아련한 스크린 속 쥰세이와 아오이처럼.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언젠가 함께 올라가 주겠니?”
“언제?‘
“글쎄...”
“한 10년 뒤 쯤?”
“약속해 주겠어?”
“좋아. 약속할게”
이 짧은 영화 대사는 이후 피렌체를, 특히 피렌체의 심장인 두오모(Duomo) 쿠폴라를 ‘세계 연인들의 성지’로 만들어버렸다.
두 남녀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동명소설을 나가에 이사무 감독이 2001년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피렌체와 세상의 아픈 사랑을 하는 연인들에게 바쳐진 영화 같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이라는 대사로 영화가 시작하면 조용하고 낮게 깔리는 피아노 소리. 영화의 주 테마곡인 요시마타 료의 ‘Whole Nine Yards’가 이내 관현악으로 바뀌면서 남쪽에서부터 헬기로 항공 촬영된 피렌체의 전경은 왜 사람들이 그 많은 세월동안 피렌체를 꿈꾸고, 또 그곳에서 사랑하고자 하는 지를 보여준다. 붉은 도시의 지붕들을 지나 카메라가 아르노 강을 비추면서 피렌체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면 정체모를 깊은 탄식의 신음을 내뱉게 한다.
몽환적인 아일랜드 분위기 물씬 나는 뉴에이지 음악가 엔야(Enya)의 ‘Celts’가 깔리면서 쥰세이는 자전거를 타고 피렌체 곳곳을 달린다. 하늘에서 본 피렌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는 피렌체의 골목 골목은 한껏 퇴색된 돌바닥과 건물 외벽이 따스하게 달려든다. 그러다가 갑자기 넓게 트이는 두오모 광장, 사랑스러운 아르노 강변, 그리고 폰테 베키오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폰테 그라지에를 건너 다시 좁은 골목들. 쥰세이를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는 피렌체의 가장 평범하지만 그래서 가장 친근한 공간들을 쓰~윽 훑어 내린다.
피렌체의 골목이 다른 유럽 도시의 골목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다른 것들의 모습 때문이다. 피렌체 여행자들이 대부분 중앙역(피렌체 SMN역)에서 천천히 걸어 두오모, 즉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쪽으로 걸으면서 좁은 골목 사이로 보이는 두오모에 매료되는데, 이는 비단 두오모의 경우뿐만이 아니다. 골목과 골목에서 보이는 모든 풍경들이 마치 그 모습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구성된 그림마냥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피렌체의 중심이 되는 두오모 광장이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길고 긴 줄서기, 단테가 세례 받은 곳으로 유명한 산 지오반니 세례당 동쪽문인 ‘천국의 문’에 부조된 그림을 보자고 몰려든 사람들, 지오토의 종탑 꼭대기를 쳐다보다가 목이 아픈 나머지 아예 바닥에 누워 종탑을 올려다보는 사람들로 언제나 그득한 곳이다.
두오모 광장은 중앙역으로 가는 길과 시뇨리아 광장을 거쳐 아르노 강으로 통하는 길이 교차하고 있는 탓에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번잡한 곳이다. 물론 영화 속 쥰세이는 이른 아침 아직 한가한 두오모 광장을 지나고 있지만.
아펜니노 산맥에서 발원해서 피렌체와 피사를 거쳐 지중해와 만나는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해로 흘러들어가는 아르노 강. 이 강에 놓은 다리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다. 하지만 영화는 폰테 베키오를 직접 터치하지는 않는다. 쥰세이의 자전거는-영화 후반부 스쿠터로 바꿔 탄 쥰세이도 마찬가지지만-폰테 베키오 바로 옆 폰테 그라지에를 건넌다. 아마도 이유는 폰테 베키오를 잘 비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폰테 베키오는 '신곡'의 저자인 단테가 그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났던 곳으로 유명하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나이 10살 때. 아버지와 함께 피렌체의 실력자인 폴코의 집을 방문했던 단테는 당시 9살의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어린 나이지만 베아크리체를 처음 본 순간 가슴에 담아버린 단테. 그리고 나서 9년 후 단테는 폰테 베키오를 걷다가 우연히 베아트리체와 재회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의례적인 인사만을 나누고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아트리체는 24살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폰테 베키오에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처럼 아픈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연인들이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아르노 강물에 버리고 있다.
폰테 베키오에는 또 다른 안타까운 사랑도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 나오는 라우레타와 리누치오가 주인공이다. 잔니 스키키의 딸인 라우레타는 리누치오를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자 라우레타는 아버지에게 애원반 협박반으로 매달린다. 그때 부르는 아리아가 ‘O mio babbino, caro(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다.
이 노래에는 재밌는 게 있다. 소프라노 아리아인 아름다운 이 노래는 국내에서는 어버이날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신청되고 틀어진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담은 딸의 영혼이 담긴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탈리아어 가사를 번역해보면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리누치오와 결혼하지 못하게 하면 베키오 다리에 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져 죽어버리겠다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라고 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협박하는 셈이다.
영국의 문호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소설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도 피렌체에서 피어난 아픈 사랑의 이야기다. 1900년대 초 피렌체 여행 중 만난 영국의 아름다운 아가씨 루시와 젊고 쾌활하고 당찬 사회주의자 조지는 금새 사랑을 느끼지만 보수적인 영국 상류층의 분위기 탓에 긴 시간을 돌고 돌아서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조지는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하고, 10여년의 세월이 지나 루시는 조지와 처음 만났던 아르노 강이 내다보이는 피렌체의 호텔에 돌아온다는 얘기다.
다시 ‘냉정과 열정사이’. 1994년 유학 온 쥰세이는 자전거를 타고 피렌체의 속살인 좁고 깊은 골목을 부드럽게 애무한다. 간간히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들은 살포시 잠에서 깬 연인의 귓불을 살짝 물어주고, 쥰세이의 손길이 닿아 되살아나는 아름다운 미술품들은 깊은 신음을 뱉어내며 피렌체와 깊은 키스에 빠져든다.
1997년 쥰세이가 피렌체 생활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영화는 이렇게 피렌체를 담는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랑하는 아오이를 잊지 못하는 쥰세이 마냥 피렌체를 다녀온 사람들은 오랫동안 피렌체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는다.
쥰세이는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아오이에 대한 그리움처럼 그렇게 피렌체로 돌아온다. 2000년 아오이의 서른 번째 생일, 아오이와의 약속에 이끌려 쥰세이는 홀로 두오모 쿠폴라로 향하는 464개의 좁고 긴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쥰세이는 그곳에서 아오이를 만난다. 마침내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가 돼 버린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그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이 되는 주교좌 성당을 두오모라고 부른다. 피렌체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앞서 언급했듯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대성당’이다. ‘꽃의 성모 대성당’이라는 뜻이다. 피렌체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처럼 화훼산업이 발달해서 꽃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순백의 대리석과 붉은 지붕,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가 1년 365일 곱고 찬란한 꽃으로 피어있기 때문에 꽃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이다.
두 사람의 교행도 힘겨운 좁고 어두운 계단 464개를 걸어 쿠폴라의 맨 위로 오르려는 것은 꽃봉오리의 일부가 되기 위함이다. 그리고 두오모와 함께 화사하게 핀 수백, 수천 송이의 피렌체 꽃들을 내려다보고자 함이다. 붉은 지붕들이 온 도시를 덮고 있는 것을 보고, 피렌체가 왜 진정 아름다운 도시인지 깨닫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그 꽃봉오리에는 쥰세이와 아오이의 사랑만큼 곱고 애틋한 사랑이 수없이 많음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미켈란젤로 광장(Piazelle Michelangelo)에서 카메라 줌렌즈를 잔뜩 당기면 쿠폴라의 전망대가 거의 수평으로 보인다. 그곳에 오른 수많은 연인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누군가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식도 없이 464개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올라온 이유를 보여준다.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는 있을망정, 그들이 표현하는 제 나름대로의 사랑의 행위는 ‘보기에 아름다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모든 종류의 사랑을, 피렌체는 그 사랑을 소중하게 품어준다. 비단 쥰세이와 아오이가 아닐지라도 피렌체에서는 이미 시작한 사랑을 완성할 수도 있고, 차마 시작하지 못한 사랑을 시작하게 해 줄 수도 있다. 엉망으로 어그러진 사랑도 치유가 되고, 끝났다고 생각한 사랑조차 다시 살아나게 해주기도 한다. 이곳이 바로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가 ‘두고 온 행복’은 ‘언제고 찾아가야 할 사랑’이기도 하다. 그 사랑을 찾으러 다시 피렌체에 갔을 때 훨씬 더 커지고 아름다워진, 그 동안의 힘겨움과 아픔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사랑과 행복이 마중 나올지 모른다.
이석원 여행작가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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