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당대표로 나선 경기 인천 잃고 자기가 꽂은 광주에만 주력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정치적 승부처였던 광주시장 선거가 윤장현 새정치연합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안 대표는 선거 다음날인 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후보의 당선과 관련해 “광주의 민심이 새로운 변화를 선택해줬다. 그 명령에 따라 대한민국의 변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짧은 소감만 전했다.
노웅래 사무총장은 윤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이날 새벽 의원회관 개표상황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전에 충분히 상의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면서도 “광주 시민들이 처음엔 인지도가 없으니 평가를 안 해주다가 새로운 정치, 정치혁신을 하겠다는 진정성을 믿어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광주만 보자면 분명 안 대표의 승리다. 당 지도부의 말마따나 ‘구태(舊態)’로 대표되는 강 후보를 상대로 ‘시민후보’, ‘새정치’를 상징하는 윤 후보가 이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 대표 개인이 아닌 정당의 입장에서는 실패나 다름없다. 간발의 격차로 경기 탈환에 실패했고, 수성 가능했던 인천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안 대표가 수도권을 외면하고 광주에만 매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안 대표는 나름의 반박 자료를 제시했다. 안 대표는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지역별 유세 회수를 정리해 올렸다. 서울 24회, 인천 10회, 경기 30회 등이다. 반면, 호남 유세 회수는 광주 17회, 전남 3회 등 20회에 불과하다.
자료만 놓고 보면 안 대표는 분명 수도권 유세에 집중했다. 수도권 유세 회수는 64회로, 총 유세 회수 131회의 절반 가까이 된다.
다만 유권자 수를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천의 유권자 수는 약 242만명으로 광주(약 114만명)의 2배가 넘고, 경기의 유권자는 약 968만명으로, 광주의 8.5배에 달한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광주 유세 횟수가 인천보다 많은 점, 경기 유세 횟수가 광주의 2배도 안 되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광주와 정치 성향, 유권자 수가 비슷한 전남에서의 유세 횟수는 3회에 불과하다. 전북 유세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전북은 안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강봉균 전 의원이 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낙마한 지역이다. 호남을 정치혁신의 시발점으로 삼아놓고 자신의 측근이 출마한 지역만 지원한 꼴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략공천 자체다. 기득권 타파, 새정치, 정치혁신이란 구호가 필요한 지역은 광주뿐 아니다. 호남 전체와 대구·울산·경북에서도 특정 정당만 지지하는 지역주의는 오랜 병폐로 지적된다. 하지만 안 대표는 영남을 외면했다. 하다못해 호남에서도 안 대표는 전남과 전북을 뒤로하고 광주에 ‘올인’했다.
이를 두고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안 대표가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략공천지로 영남을 택한다고 해도 승산이 거의 없고, 강성 의원들이 즐비한 전남과 전북을 택한다면 전략공천의 ‘전’자도 못 꺼내고 뜻을 접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는 광주가 가장 쉽고,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전북을 지역구로 둔 한 의원은 전략공천을 수락한 광주 의원들에 대해 “우리는 뼉다구(뼈다귀의 방언)가 있지, 시장 후보 한 명 세우는 데 국회의원 5명이 쪼르르... 그렇게는 못 한다“고 비판했다. 전남이나 전북에서 전략공천을 시도했다면 안 대표는 의원들 등쌀에 그야말로 ‘뼈도 못 추렸을’ 것이라는 소리다.
어찌 됐든 안 대표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한 대가로 당에 수도권 패배라는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한편, 안 대표는 201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미국에 머물면서 송호창 의원을 통해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 소식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 3월 귀국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행보를 ‘가시밭길’로 표현했다. 하지만 가시밭길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시밭길은 있었으나, 안 대표는 언제나 쉬운 길로 비켜갔다.
영도 재선거 출마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 “지역주의를 벗어나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서 새정치의 씨앗을 뿌리고자 결심했다”는 궤변을 남기고 야권의 텃밭인 노원병으로 향했고, 양당제의 폐단을 극복하겠다며 독자창당을 추진하다가 공동대표직과 절반의 당직 지분을 보장받고 민주당과 합당했다.
이 과정에서 윤여준 전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 김성식 전 공동위원장 등 많은 사람들이 안 대표의 곁을 떠났고, 대중의 인기도 사그라져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 순위는 2위에서 4위로 하락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역시 나름 정치혁신의 상징인 자신의 측근을 광주시장으로 앉혔지만, 당은 수도권을 빼앗겼다.
이제 안 대표에게 남은 정치적 시험대는 사실상 7.30 재보궐선거뿐이다. 내년 전당대회에서 재집권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음달 재보선에서도 그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차기 대권은 고사하고 정치생명 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안 대표도 자신의 이 같은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을까 싶다.
안 대표의 마지막 구상이 대권 도전이라면, 이제 그에 걸맞는 결단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동안 안 대표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보여왔던 모습들은 극복보다는 도망과 포기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안 대표가 아닌 안 대표의 정치적 동반자들이 짊어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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