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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괴마녀'? 정신빠진 교사, 얼마나 더 나올지...


입력 2014.07.17 10:07 수정 2014.07.17 10:27        이상휘 선임기자

<칼럼>풍자도 해학도 아닌 저주를 퍼붓는 자가 선생인 현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고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각각 적괴, 동물농장으로 비유하며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글을 게재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동아일보 보도화면 캡처

청풍명월이라는 말이 있다. 듣기만 해도 시원하다.

여유와 낭만이 떠오른다. 고고한 선비가 읊는 몇 가락의 소리같기도 하다. 허기와 배고픔과는 관계없는 놀음일 수도 있다. 해학과 비유가 있는 시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조선조 성종 때 몰락한 두 선비가 있었다. 유청풍과 박명월이라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정자를 지었다. 청풍정과 명월정이다. 몰락한 선비들인데, 정자를 지을 여력은 있었을까마는, 어쨌든 이 정자들은 서울장안에서 유명했다.

이 곳에서 풍자극을 했기 때문이다. 모인 사람들은 배꼽이 빠질 만큼 웃었다. 임금과 관아들의 부조리나 부패를 익살로 풀어낸 것이다.감 히 무서워 말도 못할 것들이나, 못마땅한 것이나, 억울한 것이나, 손해나는 것들을 웃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종의 서민들의 배설구였던 것이다. 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 화를 내거나 돌을 던지기 보다는 비유와 해학으로 복수를 했기 때문이다. 아주 멋지게 말이다. 실로 무서운 익살이며, 살벌한 비유였다.

청풍명월의 유래가 이랬다. 사회의 부조리 부정부패, 그것을 익살로 풍자하는 마당극인 것이다. 청풍정과 명월장이 상설 풍자극장의 원조인 셈이다.

이후 선조들의 세상풍자극은 해학과 익살이 주류였다. 이같은 풍자를 하는 사람을 ‘청풍명월인’이라 불렀다.

대원군 때 정가소라는 청풍명월인의 인기는 대단했다. 조선말기의 어수선한 세태를 날카롭고 정확하게 꼬집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굴 근육을 이용해 세상을 풍자했다고 한다. 어떻게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말보다 더 정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흥선대원군 일가의 부정축재, 그리고 양반가의 몰상식한 추태, 도덕에 억눌린 세상의 이야기,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모순 등을 즉석으로 풍자했다. 얼굴과 몸짓으로 말이다. 슬픔과 분노를 삭히며 철저하게 웃음으로 표현 한 것이다.

요즘은 어떨까, TV를 통해 세상을 풍자하는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다. 대부분 개그나 코미디, 토크쇼에서다. 뭐 그리 속시원하지는 않다. 하다만 듯한 느낌이랄까. ‘말 잘하기’를 겨루는 것 같다. 날카롭고 해학적인 풍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디어가 다양해졌지만, 세상에 대한 서민들의 배설창구로는 부족한 듯하다.

아마도 미디어의 지나친 상업화 탓이 아닌가 싶다. 건전하고 해학적인 풍자와 비판보다는 시청자의 눈과 귀를 잡을 수 있는 것, 자극적인 것에 집중한 탓이다.

최근 어느 전교조 교사의 SNS가 주목받았다. 내용이 심각했다.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었다.의 견이기 보다는 분풀이었다.

대통령을 ‘적괴’라고 표현했다. 적괴가 뭔가? 적의 우두머리를 칭하는 말이다.

“삐뚤어진 인성을 가진 마녀이며, 고집불통, 소통불가의 기계”라고도 했다. 대한민국을 “적괴 마녀와 그 개들이 지배하는 동물농장”이라고 적었다.

이 정도면 저주다. 심각한 정신분열(?)로 봐야 한다. 그는 국어교사라고 한다. 2012년에 좌편향 시를 교실에 걸어둔 적도 있다. 편향된 교육을 한다는 민원으로 조사도 받았다고 한다.

다 좋다. 그래도 그렇지,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누구든 사상이 있고 철학이 있다. 중요한 것은 국가에 대한 존엄이다. 그것을 벗어나는 사상과 이념은 잘못된 것이다. 편향이라 함은 그 점을 적시하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존엄을 팽개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땅에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 사람이 내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과연 내 자식을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 강단에 서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가 묻고 싶다. 정신감정부터 받게 하는 게 순서 아닐까 싶다.

세상에 대한 불만은 누군들 없겠는가. 방법에서의 문제다. 표현과 비유의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즘의 세상이 편리하다고 한다. 치고 빠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도 하다. 자극적이며 화제 중심적이다.

세상에 대한 표현도 그렇다. 적당한 비유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라야 한다. 그래야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게 정상적인가 싶다.

앞으로 더 얼마나 자극적이어야 할까. 저렇게 정신 빠진 전교조 교사같은 자가 얼마나 더 나올까. 실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순리와 정의, 그것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 폭력만이 아닐진데, 교사라는 사람이 솔선해서 잔인한 비유를 해대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걱정스럽다

선조들의 익살과 해학이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청풍명월이 아쉽다. 세상에 대한 시원하고 통렬한 웃음이 그리워진다. 이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서 말이다.

이상휘 기자 (shon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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