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순직 소방관 동료 "다른 사람 희생 강요할 수 없어"
<특별법에 가려진 희생자들②>유족들 "순직자는 잊혀져"
강원도 제1항공대 소방관 8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전국민적 관심이 세월호 특별법에 함몰되면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다 음지에서 산화한 희생자들은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잊히고 있다.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제1항공대소속 소방관들도 그 중 하나다.
지난 7월 17일 정성철 소방경, 박인돈 소방위, 정비사 안병국 소방장, 구조대원 신영룡 소방교, 이은교 소방사 등 5인의 소방관은 제1항공대 소속 헬기 ‘AS350N3’에 탑승해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사고를 당해 전원 사망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석 달이 지난 시점에서 헬기 수색은 무의미한 상황이었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리기 위해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제1항공대는 지속적인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강원도 소방본부에는 2대의 헬기가 영서, 영동 지방을 담당한다. 영서 지방을 담당하고 있던 헬기가 빠져 임무의 공백이 발생하는데도 불구, 헬기를 투입해 세월호 실종자들 수색에 나선 것이었다.
의로운 소방관 5인 마지막 수색 임무에서 불의의 사고
소방방재청에서는 제1항공단에 7월 2일부터 6일까지를 마지막 수색 임무를 내렸지만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이 진척되지 않아 마지막 수색 일정을 7월 17일까지 연장했다. 순직한 5명의 소방관들은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수색임무를 벌이고 복귀하던 중 참사를 당했다.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제1항공대소속 정장훈 소방장은 29일 '데일리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순직하신 정성철 소방경을 비롯한 동료들은 출동을 하면서 남아있는 대원들과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나눴다”면서 “정 소방경은 진짜 ‘마지막 수색임무’라고 인사하고 ‘완벽한 임무수행을 하고 돌아오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말했다.
정 소방장은 “정성철 소방경님은 제 직속 선배이기도 하고 군대에 있을 시절 11년 고참이었기 때문에 고민상담도 많이 했다. 인자한 성품에 후배들을 잘 챙기는 맏형 같은 분이셨다”면서 “웃으면서 잘 갔다 오시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사고가 나버렸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순직한 5명의 소방관들은 사고 당시 헬기를 조종하고 있던 정성철 소방관이 헬기 추락으로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고 언론에 이슈화 됐다. 하지만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은 그 때 뿐이었다.
언론과 정치계를 비롯한 대중들은 특별법 제정 이슈에만 함몰돼 정작 주변에서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다가 희생된 이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멀리했다.
헬기가 추락한 정확한 원인 규명은 현재 진행 중이다. 하지만 당시 정 소방경은 헬기 추락 시 ‘오토로테이션’이라는 비상 착륙 절차를 실행하지 않았다. 추락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오토로테이션’ 절차를 수행할 경우 민간인의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 소방장은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 중이다. 하지만 당시 사고 헬기의 조종석 화면을 본 결과 정 소방경은 비상절차를 수행하지 않았다”면서 “‘오토로테이션’ 마지막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조종간으로 헬기 기수를 올려야 하는데 사고 헬기는 그대로 추락했다. 사고 현장이 넓은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희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헬기 추락 사고로 제1항공대 해체 “정든 대원들과 생이별”
제1항공대 대원들은 동료들의 사고에 마음을 다잡지도 못한 상황에서 남아있는 대원들 간 ‘생이별’까지 겪어야 하는 상황까지 맞이했다.
당시 사고로 제1항공대 헬기가 파손됐고, 13명으로 구성돼 있던 제1항공대 인원이 8명으로 줄어들면서 더 이상 임무수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제1항공대 소속 대원들은 9월 1일 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특히 남아있는 8명의 대원들은 동료들의 장례식을 치른 후, 사고 원인규명에 대한 진상조사를 받아 외상 후 스트레스 진단을 받았다. 8명의 소방대원은 이를 치료하기 위해 힐링캠프까지 다녀왔다.
정 소방장은 “예산이 부족해 헬기 도입에 2년여가 걸린다”면서 “동료들이 세상을 떠난 후, 현재 남아있는 8명의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이 가장 마음에 아프다”고 토로했다.
정 소방장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국민들이 다섯 명의 고인들이 남을 위해 희생에 앞장섰던 분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 소방장은 최근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작심한 듯 한 마디를 했다.
“헬기를 이용한 산악 구조 신고를 접수해 현장을 가보면 취객이 대부분입니다. 정작 위급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헬기가 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죠. 저는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갈등은 잘 모르지만, 자신의 이기심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은 모두 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정부가 2일 정성철 소방경 등 4명의 소방공무원에 대해 '공무상 사망'으로 인정하면서 이들의 재직기간과 관계없이 유족들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헬기 추락으로 목숨을 잃은 나머지 1명의 소방관은 유족간 이견으로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사망' 심의를 아직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재 당국과 유족들은 이를 바탕으로 순직심의 절차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후에는 국가유공자 인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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