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놓고 한중일 물고 물리는 관계에 중국-미국 대치
북중 관계 소원해지자 북러 관계 호전…또 주도권 상실?
과거사 문제와 영토 갈등으로 얽혀 있는 한국과 중국, 일본 3국 간 정상회담이 내년 초 쯤 개최될 예정이다. 이와 맞물러 북한의 최룡해가 17일 ‘김정은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연내 북러 정상회담을 예고했다.
지금 동북아 외교전은 과거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를 깨고 ‘국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크게 출렁이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남북한과 주변국가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각국들의 관계가 물밑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세력 경쟁’으로 얽히면서 어느 때보다 예민하다.
지난 11~1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친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마침 APEC에서 어색하게나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린 직후여서 박 대통령의 제안은 변화의 물결을 탄 동북아 정세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바로 다음날인 14일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러시아에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중국과 관계가 소원한 북한 김정은의 첫 정상회담 상대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룡해의 방러는 최근 동북아에서 북한을 제외한 국가들의 외교전이 달아오르는 가운데 고립 탈피를 위한 것이자 동시에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과 관련해 김정은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의 협력을 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중일 정상회담이 제안된 것과 동시에 북한이 최룡해의 방러를 결정한 것이 실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그동안 과거사 문제로 한국과 중국 대 일본으로 대립되는 3국의 관계가 전개되자 돌연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꺼내들고 일본과 협상을 벌여왔다. 북일 수교까지 언급되던 와중에 돌연 뒤바뀐 정세에 맞부딪친 것이다.
사실 지금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북한은 중국과 사상 최악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와는 밀월관계를 즐기고 있다.
이런 양상은 한국과 미국, 일본 간에도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들어 아베 총리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물론 아베 총리가 자국 내 선거 전략으로 정상국가화를 내세워 과거사 왜곡을 시도한 데서 비롯된 문제이다.
과거사 문제로 한일관계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시진핑 주석은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 나섰다. 중국 하얼빈시에 ‘안중근기념관’까지 건립하면서 한국과 연대해 일본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결국 중국은 한국을 등에 업고 일본을 공략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미국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묵인하면서 한중관계를 견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 행위를 묵인한 채로 한일관계 회복을 종용하는 것이나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 행위를 비난하면서 한국을 끌어당기는 모습 모두 실리에 따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북아의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한국과 밀착을 시도하면서도 러시아의 대북정책을 묵인하는 방식으로 북한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난 APEC에서 한미중 3국이 연쇄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불용’ 입장을 재확인한 반면 러시아는 독자적으로 북한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사태,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 등으로 러시아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대립하면서 외교적 공간이 줄어든 만큼 북한과 가까워지는 것이 필연적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교역 물량이 전체의 90%에 달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러시아보다 중국의 지원이 더욱 절실한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시 주석은 이번 APEC 회의에서 재차 ‘미중 양국 간 신형 대국관계 구축’을 강조했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바로 중국이 한일관계와 북러관계를 적절히 활용해야 할 이유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들어 북한과 협상을 벌인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미국 역시 방관하면서 적절히 자국의 이익을 도모해왔다.
한편, 중국은 이번 APEC 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를 제안함으로써 본격적인 아시아태평양 권역의 주도권을 주창한 셈이다. 이는 그동안 미국이 주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 공세에 맞서는 것으로 그 자체로 두 강대국의 충돌이 예견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중국 내 국제학자들 사이에서 ‘한중 동맹론’ 주창자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은 ‘KDI 북한경제리뷰’ 10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 내 한중 동맹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동맹체제는 약화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한중 선린우호협력조약이 필요하고, 이 조약에는 한반도의 핵무기 폐기, 상호 안보 확보, 한반도 통일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의 입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직 중국은 미국을 노골적으로 배척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오히려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중국이 주도하는 FTAAP를 우리가 나서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사실 FTA로 대표되는 글로벌화란 국가 간에 ‘총’ 대신 ‘합의’에 의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행위로 ‘전쟁’ 대신 ‘교역’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중일 간 군사충돌이 있었던 것을 볼 때 군력이 국력을 좌우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지금까지 글로벌화의 중심에 미국이 있었다면 이제 아시아에서 중국이 경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해외에 단 하나의 군사기지도 없는 반면 미국은 보유 항공모함 7대 중 4대를 아시아 쪽에 배치시키고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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