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중국 실수로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 무산됐다"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출판 전 내용 공개되며 파장 확산
중국과의 불편함·미국과의 친밀함 피력하며 논란 여지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 재임 중 일어난 북한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 대해 입장을 털어놓으며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오는 2월 2일에 발간될 예정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퇴임한 지 만 2년이 안된 전직 대통령이 논란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 꼴이 됐다.
특히 회고록에는 남북관계에 중국이 중간 역할을 하다가 말을 잘못 옮겨 정상회담이 무산되었다는 다소 자극적인 내용과 미국 역대 대통령들과의 친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생각 등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은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천안함 폭침 직후 후진타오와의 정상회담서 “얼굴 붉히는 일 없기를 바란다”
그중 중국과의 외교 마찰까지 빚어질 수 있는 내용은 그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회고록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이 전 대통령과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당시 한중은 천안함 폭침 사건 유엔 안보리 상정을 놓고 미묘한 갈등 관계에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후진타오에게 “중국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지만 후진타오는 “천안함 사태는 중한 양자 사이의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답하며 이 전 대통령의 요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여전히 한 발 물러서는 중국의 태도를 참을 수 없어’ 강한 어조로 “이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고 회고록에 적고 잇다.
후진타오가 당황한 듯 사람들을 돌아보고 중국 측 통역에게 재차 설명을 들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후 후진타오는 “이 대통령 말씀을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 건이 잘 해결되리라 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5차례 남북정상회담 제안, 원자바오 실수로 무산"
또 이 전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재임 당시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중국의 실수로 무산됐다는 내용도 적시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8월 23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방한한 북한 조문단이 청와대를 예방했을 때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8월 28일에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서술했다.
이 제안에는 상당한 경제지원 조건이 포함돼 있어 거절했지만, 같은 해 10월 10일 베이징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원자바오 전 총리가 정상회담을 바란다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말을 전하는 등 5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이 제안들에는 쌀과 비료를 포함해 각종 자본금 지원 조건이 붙어 있었고,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북측이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는 유감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혀서 거절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5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마지막 날 원자바오 전 총리는 “대통령께서 결심을 내려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다시 제안했다는 것.
그런데 3일 뒤인 5월 25일 원자바오가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과 오찬을 가지고 난 후 ‘홍루몽’ 공연 관람하기로 했는데 김정일이 돌연 관람 일정을 취소하고 북한으로 돌아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원자바오가 내게서 들은 남북 간 정상회담과 천안함 폭침 사과 논의(사과 없이 회담 없다)를 전달한 것이 원인이 됐다는 정보가 있다”며 “이렇게 해서 임기 중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서울 비밀리 방문한 북측 인사, 이 전 대통령이 만남 거부한 후 북한서 처형"
이 전 대통령은 이 회고록에서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경색 일변도로 간 것에 대한 미공개 뒷얘기도 언급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이 감행된 후 그 해 12월 5일 북측 보위부 고위인사였던 류경 부부장이 대좌 1명, 상좌 1명과 통신원 2명을 대동한 채 비밀리에 서울에 들어왔다. 그러나 김정일 전 위원장의 친서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이 전 대통령은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들은 “장군님 메시지를 가지고 왔는데 이 대통령이 왜 우리를 만나지 않느냐”고 거칠게 항의하며 예정보다 하루 더 서울에 머문 후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11년 초 이 전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서울을 방문했던 북측 인사가 공개 처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처형과 관련해 “한국에 기밀을 누설했다”거나 “서울에 가서 이명박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가 실패했는데 즉각 평양으로 돌아오지 않고 하루 더 머물러 있었고 이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이 크게 화를 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전해졌다.
부시 미 전 대통령과의 친분 과시...부시, 이 대통령에 “내 친구”
중국과의 관계가 걸끄럽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미국과는 강한 친분을 과시하는 대목도 있다.
지난 2008년 7월 미국 지명위원회는 독도를 ‘한국령’과 ‘공해’에서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했다. 당시 이태식 주미 대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행사에서 경호원의 제지에도 불구, 부시 전 대통령을 큰 소리로 불러 표기를 원상복구해야 하는 이유를 부시에게 설명했고, 부시는 “내 친구 이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라”며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지시했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부시 전 대통령이 자신을 특별히 생각했다고 적기도 했다.
실제 그 일이 있은 후 일주일 만에 독도 표기는 원상복구된 바 있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 아쉬워...” 박 대통령에 대한 감정도 드러내
회고록에는 지난 2009년 9월 16일,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가진 이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만남에 대한 내용도 실렸다.
당시 두 사람은 북핵 문제와 4대강 살리기 예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 막바지에는 세종시 문제도 거론됐다.
이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표에게 “충청도민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공감합니다”라며 “충청도민들이 ‘아 이게(세종시 수정안) 더 낫다, 이렇게 해달라’는 다수의 의견이 있을 때 해야죠”라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2010년 6월 29일 국회 본회의가 열렸으나 박 전 대표가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반대 토론에 나서며 세종시 수정안은 부결됐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못내 허탈했다”며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우리 정치권과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어 “이 결정이 두고두고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생각을 하니 좀더 치밀하게 추진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진하게 밀려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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