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보수가 진보 정책 펴니 정체성 혼란"
<인터뷰>전성철 IGM세계경영연구원 회장 “새 비전 필요”
“경기보다 경제 잘 살피고 장관들 소신있게 일하게해야”
3만6000명 CEO의 스승이자 한국의 대표 경영 구루인 전성철 IGM세계경영연구원 회장. 통상전문 변호사로 미국의 무역보복 조치인 ‘슈퍼 301조’를 막아낸 바 있는 그는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 산업자원부 무역위원장, 세종대 부총장을 거쳐 지난 2003년에 IGM세계경영연구원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CEO와 리더십코칭에 천착하고 있는 전 회장을 지난 24일 오후 서울 장충동 집무실에서 만났다.
전 회장은 최근 취임 2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 쓴 소리를 뱉어냈다. 박근혜 리더십에 대해선 국민이 공감할 새로운 비전 제시를 요구했고, ‘보수’의 정체성을 다잡아 ‘보수다운’ 경제 살리기 정책과 선별 복지에 매진할 것을 주문했다. 또 과거와의 결별, 공무원 연금개혁 등을 남은 임기 중 꼭 이뤄내야 할 과제로 지적했다. 특히 장관들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수의 정체성 지키고 새로운 미래 비전 제시해 줘야"
- 집권 2년을 보낸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성과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평소에 “보수의 리더십이 위기 극복의 해법”이라고 강조해 오셨는데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평가해 주십시오. 박 대통령 리더십의 장점과 단점을 꼽는다면 ...
"박 대통령은 애국심이 투철합니다. 일도 열심히 합니다. 정치적 감각도 좋다고 봅니다. 통일 문제를 국가의 제1아젠다로 정하고 주변 강대국의 호응을 얻어내는 것을 보면 고도의 역량이 있다고 봐요. 그러나 박 대통령이 리더로서 제시하는 비전이 무엇인지 아직 모호합니다. 경제 회복 같은 이슈는 이미 올드(old)합니다. 국민들에게 참신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발전’, 노태우 대통령은 ‘위대한 보통 사람’, 김영삼 대통령은 ‘변화와 개혁’을 제시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노무현 대통령은 ‘탈 권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화두로 내걸었어요. 제 생각에는 박 대통령이 ‘건강한 사회’를 비전으로 제시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세월호 사태에서 보듯이 이제 우리 나라는 풍요한 사회 보다는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라는 이슈가 더 절실한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통일 아젠다는 물론 너무 중요한 것이지만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비젼은 아니지요. 국가적 화두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리더십의 문제라고 봅니다.
다음으로, 이념적 정체성에 혼선이 있다는 점입니다. 보수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정책은 보수가 아니예요. 무상복지를 얘기하는 것은 보수가 아닙니다. 왜 그런 정책을 펴게 되었는가에 관해 국민들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또 참신한 새 정치적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어요. 청와대가 사사건건 개입하는 듯한 인상에 장관 고유의 인사권도 여전히 구태 대로 청와대가 행사하고 있고... 공기업 낙하산도 여전합니다. 무엇인가 과거와 결별하는 참신한 어떤 스타일을 보여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장관들이 소신있게 일하는 풍토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장관들이 소신있게 신이 나서 일했어요. 수시로 독대하면서 '난 당신을 믿어. 잘 해봐' 해 주니 그럴 수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장관들은 독대도 못하고 대통령을 무서워해요. 그러니 행정부 전체가 힘이 빠져 있어요."
- 박근혜 정부가 벌써 3년차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중 꼭 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3가지 정도만 제시해 주십시오.
"첫째, 새 시대의 화두를 던져줘야 합니다. ‘나는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경제 회복’ 보다 좀 더 참신한 화두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회’를 내걸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파워풀한 대통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둘째, 과거와 결별하는 정치 스타일이 필요합니다. 장관들에게 인사권도 돌려주고, 박근혜 스타일로 “낙하산 없애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고 보여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무원연금개혁은 꼭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을 실패하면 역사적으로 두고 두고 타격이 될 것입니다."
경기 보다는 경제 먼저 살펴야…'성장 통한 복지‘ 필수
- 요즘 경제가 어렵습니다. 성장률 정체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만 현실적인 방안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조치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정치권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요.
"박근혜 정부의 제일 큰 문제는 이념적으로 헛갈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관(官)의 비중을 낮추고 민(民)의 창의성을 높이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일본의 고이즈미나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이 모두 보수의 이론을 가지고 경제를 살려냈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스몰 거번먼트(작은 정부)를 추구해야 합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규제 완화, 세율 인하 등 경제살리기에 효과가 입증된 조치들을 일관되게 펼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관의 힘을 믿는, 즉, 빅 거번먼트(큰 정부)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개발독재시대의 향수가 있는 듯 해요. 예를 들어 정부가 밝힌 경제개혁 24개 조치 가운데 정말 보수의 이념을 살리는 정책은 별로 없어요, 예를 들어, 공공부분 축소, 노동시장 유연성 같은 부분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지금의 우리나라 보수는 이념적으로 너무 자신이 없어요. 보수가 복지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수는 성장을 통해 복지를 하겠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정치인이 성장을 얘기하면 마치 복지를 포기한 ‘냉혈한’ 처럼 비쳐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이제는 박 대통령이 자신있게 보수의 이념적 스탠스를 갖추고 자신있게 보수의 철학을 설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박 대통령이 얼마 전 부동산 법안들이 제 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시행이 늦어진 것을 얘기하면서 ‘불어터진 국수’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경제 살리기에 있어 정치권, 특히 국회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었는데 동의하십니까?
“그런 면이 있지요. 단, "박 대통령은 ‘경제’와 ‘경기’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기도 경제의 한 부분이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나 소비 증대, 통화량 정책 등은 모두 ‘경기적’인 것이지요. 반면 규제완화나 노동시장 유연성, 투자촉진 세제개혁 등은 ‘경제적’인 정책들입니다. 장기적이고 건강한 경제체제를 만드는 일이지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그렇게 오래 간 것은 정부가 첫 10년 동안 ‘경기 부양’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이 전 수상들은 경기를 살린다고 돈만 뿌렸습니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경기보다는 경제구조 개혁에 집중했습니다. 그랬더니 도리어 경기도 좋아지고 결국 재임 5년 동안 경기도 살고 경제 푼다멘탈도 좋아졌습니다. 우정성 민영화가 좋은 예입니다. 전체 공무원의 28%가 우정성 근무자였습니다. 부실 금융기관들을 과감하게 정리했습니다. 그 후 경제가 좋아지고 경기도 나아졌습니다. 최경환 부총리도 취임하자 마자 ‘경기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5~10년 후에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경기 살리기 보다는 경제 살리기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최근 들어 증세와 복지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전 회장께서는 “무상복지는 매표(賣票)행위”라고 늘 말씀하시면서 선별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증세와 복지 논란에 관해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자유와 평등 가운데 어떤 것을 선호하느냐가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입니다. 평등을 중시하면 아무래도 자유와 경쟁을 희생해야 겠지요.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자유를 신장한다는 의미입니다. 보수라고 복지를 않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파이를 키워 나누자는 게 보수라면, 진보는 키워온 파이를 나눠 먹자는 것입니다. 보수의 복지는 성장과 일자리입니다. 흔히 성장은 복지를 안하자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부의 불균형이 심하고, 성장이 일부 재벌 주머니에만 들어간다는 인상 때문에 성장에 대한 저항감도 있습니다. 성장은 곧 복지라는 이론을 보수 쪽에서 만들어 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성장 vs 복지라는 개념을 깨야 합니다. 오히려 ‘성장을 통한 복지’ v. ‘분배를 통한 복지’라는 대칭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업 팔 비틀기 안돼 ... 신나게 투자할 환경부터 만들라"
- 기업들이 곳간에 돈을 쌓아두고 투자나 배당을 제대로 안한다는 지적들이 많습니다. 경기회복을 위해 기업과 기업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런 면이 있지요. 그러나 기업의 1차 책무는 일자리 창출과 이익 창출입니다. 기업이 너무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투자를 해선 안될 것입니다. 적자 내는 기업은 ‘방화범’입니다. 돈을 불에 태워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업인은 함부로 투자하면 안됩니다. 기업들은 돈을 벌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투자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환경과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에 투자를 주저하는 것입니다. 기업의 팔을 비틀면 당장 목적이야 달성하겠지만 부작용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풀고 기업의 불편함을 없애주는 게 중요합니다. 신나게 기업들이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 최근 새천년민주연합의 박영선 의원이 ‘부당이득 환수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했습니다. 삼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투명성은 경제발전의 중요한 요소이자 인프라 같은 것입니다.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 경제는 절대 영속할 수 없습니다. 투명성을 높이는 기업정책에는 원칙적으로 찬성이고 (법률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못했으나) 제도적 인프라의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시장 질서를 깨거나 악용하는 행위, 개발독재 시대에 용인되었던 것들은 이제 없도록 해야 겠지요. 다만 소급입법은 좀 곤란하다고 봅니다.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국가적으로 단호하게 조치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개헌 꼭 필요…김영란법은 범위 축소 바람직"
- 최근 들어 개헌 논란이 뜨겁습니다. 박 대통령은 부정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개헌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원집정제든, 중임제 대통령제든 한국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는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제도적 리스크는, 여소야대가 되면 그 정권이 식물정부가 되어 버린다는 점입니다. 또, 새로운 세계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헌법이 필요한 점도 있습니다. 4년 중임제도 가능하고 책임총리제도 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한 번 손을 보긴 보아야 합니다. 대통령 중심제가 꼭 더 강하다고 여기진 않습니다. 이원집중제도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박 대통령이 참 어렵습니다. 이 법이 없다면 일 많이 했을 분인데 아쉽습니다. 사실상 만장일치로 국정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이 법은 폐지되어야 할, 말이 안되는 악법입니다. 개헌을 통해서 이 법에 대한 손질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 수 있을 것입니다. "
- 최근 공직자의 책임을 규정한 이른바 ‘김영란 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수정 여부를 놓고 말들이 많은데, 이 법안을 한 번 들여다 보셨는지요.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법이 필요한 것은 시실이지만 범위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선진국의 부패방지법 등을 참고하길 바랍니다. 과거에 ‘금주법’이라는 있었잖아요. 술이 너무 많은 악을 낳는다고 해 금지시켰더니 그 폐해가 너무 컸었지요. 너무나 많은 선한 소시민들을 모두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고 그래서 국가 전체의 갈등이 엄청나게 커지고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는 상황까지 갔었지요."
- 보수와 진보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보수와 진보에 관한 이념적 정리가 굉장히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은 보수가 마치 잔인한 집단처럼 여겨져 코너로 몰리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는 한 가지 면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보수는 전체를 중시하고 진보는 개인을 중시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진보는 사형제를 반대하는 것이지요. 사형 당하는 개인을 보면 너무 불쌍하니까요. 반면에 보수는 사형제를 찬성합니다. 사형이 가지는 예방적 효과를 생각해 국민 전체를 위해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마트 규제를 예로 들어 볼까요. 마트 영업을 규제하자는 것은 전형적인 진보의 시각입니다. 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되는 불쌍한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트 규제는 대다수 소비자들에게는 불편을 가져 옵니다. 그래서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보수는 마트 규제를 반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이러한 보수의 논리를 자신있게 설명해 주는 보수가 별로 없습니다. 마트 규제를 반대하면 마치 인정머리 없는 냉혈한 같이 치부될까 두려워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와 의미를 설명하는 책을 한 권 쓸 까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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