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들과 두 짐꾼이 제대로 못본 아고라의 비밀

박경귀 기자

입력 2015.04.19 18:51  수정 2015.04.19 18:57

<박경귀의 ad Greece 50>그리스 문명의 꽃 아테네의 아고라 ①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편집자 주 >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세 번째 그리스 배낭여행에서 다시 찾은 곳은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agora)다. 첫 번째 방문 시 아크로폴리스 위에서 북쪽 아래에 산재한 아고라 터를 내려다보긴 했었다. 일반 관광객의 경우 대개 그렇게 조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필자는 이곳의 답사를 다음 기회로 미루어 놓았었다. 비록 유적은 적지만 아고라 구석구석을 답사하는 일은 웅장한 신전 건축물 답사 못지않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고라를 거닐며 고대 그리스 문명의 진수와 가치를 천천히 회상하며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 문명의 꽃 아고라

고대 그리스 도시에서 그리스 문명의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하는 도시 공간은 아고라였다. 그리스인들의 삶의 현장이자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곳이기 때문이다. 아고라의 공간은 왕과 지배자의 공간이 아니었다. 당대 민중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이곳은 단순한 시장터가 아니다. 아테네의 정치공간이자, 문화공간이요, 사교의 장이자 경제활동의 터전이었다.

아고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곳이 있다. 아크로폴리스를 둘러 본 후 서쪽의 출입구 밖에서 오른쪽으로 아크로폴리스를 끼고 돌며 울창한 나무숲 사이에 난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아고라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을 만난다. 이 길은 입장권이 없어도 다닐 수 있는 시민들의 산책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철 담장으로 구획된 아고라로 다시 들어가려면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를 함께 볼 수 있는 통합 입장권을 제시해야 된다.

다른 한 곳은 지하철 티시오 역에서 내려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는 아드리아누 거리로 1500여 미터 올라오다 오른쪽 철길 위의 작은 다리를 건너면 아고라로 입장하는 매표소와 출입구가 있다. 역에서 내리면 이미 오른쪽으로 아크로폴리스가 그대로 보인다. 그 아래에 넓게 아고라가 넓게 퍼져 있으니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 아고라 주변답게 노점상들과 야외에 테이블을 내놓은 카페와 식당에 가득 찬 손님, 오가는 시민과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역에서 아고라 구역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거의 상설로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아크로폴리스 아래 산책길에서 돌계단을 통해 아고라로 내려오면 성 아포스톨루(Apostolou)성당이 나오고 그 앞쪽으로 쭉 뻗은 넓은 길이 나온다. 판아테나이 길이다. 아고라를 동서로 가르는 대로이다. 이 길은 아테네인들의 최대 축제인 판아테나이 축제의 행렬이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 오른쪽에는 아탈라스 주랑이 있고, 왼쪽에 넓게 펼쳐진 유적지가 아고라 터전이다. 대부분 주춧돌만 남아있다. 아탈라스 박물관은 현재 아고라 박물관으로 쓰인다. 아포스톨루 성당은 고대 그리스 유적이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유적이다. 8월의 작렬하는 태양을 피해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작은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벽화와 천정화의 일부만 복원되어 있지만, 회화의 내용을 분별하기 어렵다.

판아테나이 길이다. 뒤로 아크로폴리스의 정문 프로필라이 부분이 보인다. ⓒ박경귀

아포스톨루 성당의 전경 ⓒ박경귀

아포스톨루 성당의 내부, 벽화 및 천정화의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박경귀

판아테나이 길 왼쪽에 산재한 아고라 유적이다. 동서로 길게 뻗은 중앙주랑의 주춧돌이 보인다. ⓒ박경귀

대중의 시장 아고라

아고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오른쪽 아탈라스 주랑을 먼저 들렀다. 아고라 박물관에는 이곳 아고라 지역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이 건물은 원래 기원전 150년 경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왕국 아탈로스 2세의 기증으로 건립되었다. 자신이 아테네에서 유학한 것에 대해 보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대 아테네인들의 휴식과 상거래, 교제의 장소였던 이 건물은 267년에 게르만 족의 일파인 헤룰리(Heruli) 족이 침공하여 파괴했다. 이후 1700년 가까이 폐허로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1953~1956년에 존 록펠러 2세(John D. Rockefeller, Jr., 1874~1960)의 후원으로 재건된다. 이 복원은 그리스 건축가 존 트라브로스(John Travlos, 1908~1985)에 의해 이루어졌다. 고대 아테네 유적 중 완벽하게 복원된 유일한 건축물이다. 2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회랑은 길이가 120미터, 너비가 20미터에 이를 만큼 크다. 2층의 회랑 절반 부분은 21개의 상점이 있었다. 현재 1층 회랑의 절반 정도에 해당되는 뒷부분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고, 이층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회랑에는 아고라에서 발굴된 아프로디테 조각상등 다양한 대리석 조각과 건축물을 장식했던 조각들이 전시되고 있다. 내부 박물관에는 기원전 17세기에서 12세기까지의 고대 도기 유적 등이 전시되고 있다. 상거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아탈로스 회랑이 있던 곳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개별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을 것이다. 이곳이 판아테나이 축제 행렬이 지나는 대로변이니 자연스럽게 각종 축제 때에는 정규 상점이외에도 일시적인 노점이 적지 않게 들어서곤 했을 듯싶다. 이런 위치에 들어선 아탈로스 주랑은 당시 최고급 아케이드형 상가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아크로폴리스 서쪽에 있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고라와 아탈로스 주랑의 모습, 왼쪽의 숲 가운데 있는 건물은 헤파이토스 신전이다. ⓒ 박경귀

아탈라스 주랑의 외경 ⓒ박경귀

아탈라스 주랑의 회랑 내부, 한쪽에 대리석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 벽체에 문이 달린 곳은 상점이 있던 곳이다. 현재 실내 아고라 박물관으로 쓰인다. ⓒ박경귀

이오니아식 기둥 양식, 기원전 2세기 작품, 아고라 박물관, ⓒ박경귀

이오니아식 기둥 양식, 기원전 2세기 작품, 아고라 박물관, ⓒ박경귀

오디세우스 상, 흉갑에 오디세우스가 방랑할 때 만나게 되는 요정 사이렌과 괴물 폴리페모스 등이 새겨져 있다. 2세기 작품, 아고라 박물관, ⓒ박경귀

아프로디테 상, 기원전 420년 작품 추정, 아고라 박물관 ⓒ박경귀

제우스 주랑에서 발굴된 아크로테리온(건물 용머리 장식), 승리의 여신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휘날리는 옷 주름의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기원전 400년 작품, 아고라 박물관 ⓒ박경귀

문화예술의 공간 아고라

아고라에는 상점이 입점해 있던 아탈로스 주랑 이외에도 맞은편에 긴 회랑을 갖춘 중앙주랑 체육관, 음악당, 그리고 서쪽에 각종 공공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주요 시설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시민들의 생활 중심지 역할을 하던 아고라는 그리스의 전성기인 기원전 5세기를 지나고,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에 이르는 헬레니즘 시대는 물론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는 기원전 1세기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탈로스 주랑이 건립된 것도 기원전 2세기의 일이다. 로마의 총독들 역시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인 아테나이의 아고라에 중요한 시설들을 계속 건립했다. 기원전 15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절친으로 실질적으로 로마제국의 제2인자였던 아그리파는 1천여 명이 착석할 수 있는 대규모 음악당을 건립했다.

당시 이미 아크로폴리스 남쪽 기슭에 그리스인들이 세운 유서 깊은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었고, 로마 태생의 그리스 귀화 정치가인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 BC 101/102~BC 177/178)가 죽은 아내 레킬라를 추모하기 위해 BC 160~161년에 건축해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한 헤로데스 아티쿠스 원형극장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그리파는 새로운 음악당을 건립했다. 아마 로마 문명에 풍요로운 유산을 남겨준 아테네의 심장부에 새로운 아트센터를 세워 로마의 부를 자랑하고, 아테나이 인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진흥하고자 의도하지 않았을까. 아그리파는 당시 문명의 배꼽 역할을 했던 아테네에 자신의 명성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리스 북서부의 안부라키아만 반도 앞에서 벌어진 악티움 해전(Battle of Actium, BC 31)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함대를 물리치고 그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의 관문인 프로필라이 앞에 전차를 탄 자신의 동상을 세우지 않았던가. 아테네의 신성한 아크로폴리스 정문 앞에 로마 장군의 동상이 세워진 것을 자존심 강한 아테나이인들이 달가워했을 리 없다. 혹시 아그리파는 자신의 행동이 오만하게 비추어질 것을 우려하여 아테나이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음악당을 건립 기증한 것을 아닐까.

아그리파의 음악당은 규모와 자세한 시설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건립 후 250여 년 동안 활용되다가 서기 267년의 화재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당 정면을 거대한 조각상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던 웅장한 건축물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현재는 음악당 터에 들어섰던 체육관의 주춧돌만 남아있지만, 음악당 정문에 있던 거인 조각상들의 일부는 보존되었다. 많이 훼손되긴 하였지만 7개 중 3개의 조각이 그 터전의 전면에 남아 당시의 아름답고 웅장했던 건축미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아고라의 추정 복원도이다. 아고라 내 안내표지판 ⓒ박경귀

아고라에 있던 주요 시설물들의 추정 평면도이다. 색으로 표시된 동그란 평면의 건물은 톨로스로 영빈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아고라 내 안내표지판 ⓒ박경귀

아그리파 음악당의 추정 복원도이다. 정면 기둥을 7명의 거인 대리석상으로 장식한 화려한 건물이었던 것 같다. 아고라 안내판 ⓒ박경귀

아그리파 음악당 정면을 장식했던 거인 조각상, 아탈로스 주랑 앞쪽에서 이어진 길로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박경귀

아그리파 음악당 정면을 장식했던 거인 조각상, 아고라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왼쪽 끝에 아탈로스 주랑의 일부가, 오른쪽으로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박경귀

아티쿠스 음악당 정면을 장식했던 거인 조각상, 인간의 상체에 물고기의 하체를 지닌 트리톤(Triton) 상으로 추정된다. ⓒ박경귀

아그리파 음악당은 아고라의 정중앙에 위치했고 당시 아고라에 있던 건축물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현저한 건물이 되었을 것이다. 아고라에 있던 아레스 신전이나 헤파이토스 신전, 제우스 주랑을 압도하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산책과 휴식, 그리고 상품 거래와 만남의 장소이던 아고라에 화려한 대형 문화시설이 건립됨으로써 아고라가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을 듯싶다. 이곳에서 전성기만큼 많은 공연이 이루어지긴 어려웠겠지만, 계승되고 있던 그리스의 유명한 비극과 희극이 공연되지 않았을까.

종교 생활의 공간 아고라

아고라는 아테네 시민들의 종교 활동의 공간이기도 했다. 파르테논 신전과 에렉테이온 등 주요한 신전이 아크로폴리스에 있었지만, 그곳은 사제들을 제외하고 시민들이 아무 때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니 시민들의 편한 생활공간이었던 아고라에 신전과 제단 등 종교적 기능을 하는 시설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현재 아고라에서 가장 온전하게 남은 옛 신전은 헤파이토스 신전이다. 기원전 5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니 무려 25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디어내었다. 남아있는 형상도 상당히 양호한 상태이다. 그리스 본토에 남은 고대 유물 중 가장 잘 보존된 사례다. 지금이라도 박공의 일부만 보수하고, 지붕을 복원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기단과 석주가 메토프, 프리즈 등 주요 구조물이 모두 양호하다.

헤파이토스 신전이 오랜 세월 동안 파괴되지 않고 거의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행운이 작용했다. 일단 비잔틴 시대에 들어서 기독교인들에 의해 교회로 사용되는 바람에 파괴를 면했다. 또 신전의 메토프와 프리즈에 아테나이의 옛 영웅 테세우스의 행적이 부조되어 있어 테세우스 신전으로 알려지는 바람에 이교의 신전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던 기독교인들의 눈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헤파이토스 신전은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의 공적을 묘사한 부조를 많이 새기긴 했지만, 그 주변 지역에서 청동 및 철공 작업을 하는 수공업자들이 많아서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토스 신전이 모셔졌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전의 규모는 꽤 크다.

동서로 배치된 신전의 전면과 후면은 6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고, 측면은 13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웅장하게 받치고 있다. 건물의 박공에는 트로이 함락의 모습과 켄타우로스의 전투 장면이, 프리즈, 메토프에는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의 행적이 부조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서쪽 내부 프리즈에 부조되어 있는 켄타우로스와 라피타이 족의 전쟁 모습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제우스와 정실 헤라의 소생이었던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는 절름발이였다. 그는 신과 같은 영웅적 행적을 보인 아킬레우스의 방패도 만들었다. 하지만 힘든 일을 하는 탁월한 기술자였던 그였지만, 신들 가운데에서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리스 사회가 상업과 기술 종사자들을 썩 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숭배하는 헤파이토스 신이 시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또 헤파이토스 신전은 그 자체로 그리스 세계에서 탁월한 건축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예술성이 빼어난 파르테논 신전이나, 화려한 조각으로 유명한 에렉테이온 신전 가까이에 있다 보니 관심을 적게 받는 불이익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아마 다른 도시에 홀로 위치했다면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명물로 대접받았을 터인데, 아크로폴리스의 뛰어난 신전들 곁에 있다 보니 빛을 잃어버렸다. 헤파이토스는 이래저래 명예운은 없는 신인가 보다. 그래도 가장 온전하게 가장 오랜 세월 남아 견디어내면서 현대인에게까지 헤파이토스를 기억하게 하고 있으니 그나마 작은 보상일지도 모르겠다.

서쪽에서 바라본 헤파이토스 신전, 오른쪽 끝 주황색 지붕이 아탈로스 주랑이다. ⓒ박경귀

동쪽에 위치한 헤파이토스 신전의 전면이다. 박공의 일부만 훼손되었을 뿐 열주와 메토프, 프리즈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었다. ⓒ박경귀

헤파이토스 동쪽 전면에서 바라본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박경귀

신전의 서쪽 내부 프리즈에 새겨진 켄타우로스와 라피타이족과의 전쟁 장면이다. 왼쪽 끝에 인간의 상체와 말의 하체를 지닌 켄타우로스의 모습이 보인다. ⓒ박경귀

아고라에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 신전과 올림포스 12신의 신전, 제우스 신전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제우스 신전 앞 제단의 기단 조각 정도만 남아있을 뿐, 다른 신전의 유허는 확인할 수 없다. 또 아고라 서쪽에 있었다는 아폴론 신전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아고라의 유적이 대부분 유실된 것은 로마의 멸망이후 계속된 게르만 족과 슬라브 족의 침입과 파괴 때문이었다. 게다가 파괴된 아고라 터전이 오랜 세월동안 방치되면서 그 터전 위에 민간 가옥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자 옛 유적들이 더욱 흩어지고 묻혀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늘날 아고라의 구역이 확인되고, 일부 건축물의 주춧돌이라도 발굴된 것은 1930년대부터 시작된 그리스 정부의 복원 노력 덕분이다. 민간 가옥들을 철거하고 퇴적된 토사와 근대 건물들을 제거하는 한편, 아탈로스 회랑의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과거 영광의 도시, 아테네 민중의 삶의 현장이던 아고라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었다.

제우스 제단의 일부를 구성했던 건축 부재의 일부 ⓒ박경귀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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