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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 미사 사진 올린 신은미에 탈북자들 "구경도 못해"


입력 2015.07.04 08:15 수정 2015.07.04 08:16        목용재 기자

"일반인 종교시설 방문 불가…종교 자유 있는양 호도"

한국 천주교도 "북 장충성당에 신부들 가지마라" 지침

신은미 씨가 지난 28일 자신의 SNS에 북한 장충성당에서 북한 주민들과 함께 미사를 드린 사진을 올렸다.신은미 씨 페이스북 캡처

일본 강연을 마치고 다시 북한의 평양을 방문 중인 신은미 씨가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사진을 올려 북한의 종교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

신 씨는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평양 장충성당에서 북한 주민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는 사진을 올리면서 “동행한 재미동포 교수님이 가톨릭 신자라서 오늘은 교회 대신 평양에 있는 장충성당에 갔다. 미사를 마친 후 점심식사는 옥류관에서 쟁반국수로”라는 글을 함께 올렸다.

해당 사진에는 신은미 씨를 비롯해 천주교 신자로 보이는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이 함께 성당 성전으로 보이는 곳에 모여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과 탈북자들은 북한의 사정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해당 사진을 보면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오인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한국 천주교도 한국 신부들이 장충성당에서 미사집전 하는 것을 자제하라는 방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있다. 장충성당에 모이는 북한 천주교 신자들이 실제 일반적인 신앙인인지 여부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정 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목사)는 30일 '데일리안'에 “북한의 성당, 교회 등은 선전용 시설물일뿐”이라면서 “사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성분이 좋은 사람들로 선전에 동원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이런 곳에 나오기 전에 미리 인터뷰 등을 대비한 교육을 받고 이후 총화를 통해 자신이 한말에 대해 반성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북한이 1989년 김일성종합대학교에 종교학교를 신설해서 기독교, 천주교 등 종교 시설물 등을 통해 선전한 바 있다”면서 “현재 북한은 인권문제에 있어서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종교,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하는 등 선전을 하면서 분위기를 쇄신해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께 입국한 탈북자도 본보에 “평양 장충성당 인근에 사는 지인도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구, 단 한 번도 성당에 들어가보지 못했다”면서 “신은미 씨가 올린 사진의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인이 아닌 김일성종합대학교의 종교학부 학생들이거나 북한의 대외선전용 종교단체 관계자 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탈북자는 “나도 2001년께 평양의 주석궁 인근 옥수수밭에 작업차 파견을 갔다가 칠궐 예배당이 보여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가까이 갔는데 관리인들이 우리를 내쫓았다”면서 “신 씨가 올린 그런 사진을 북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구나’라고 인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북한 당국은 1970년대 남북대화가 시작되면서 대외적 선전을 위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등 세 개의 종교단체를 재조직하고 1992년에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누구든지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 수 없다”라고 헌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북한 사회에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가 널리 퍼져있으며 사실상 일반인들은 종교를 가질 수 없다. 1992년에 헌법 개정을 통해 ‘신앙의 자유’를 삽입했지만 종교 전파행위, 혹은 성경 소지로 인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거나 처형이 이뤄지기도 한다.

실제 통일연구원이 펴낸 북한인권백서2014에 따르면 김일성은 지난 1962년 사회안전성(현 인민보안부)에서의 연설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종교인들을 함께 데리고 공산주의 사회로 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천주교에서 집사 이상의 간부들을 모두 재판해서 처단해버렸다. 일반 종교인들은 본인이 개심하면 일을 시키고 개심하지 않으면 수용소에 가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평양 중화군에 거주하던 한 여성은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2009년 초에 처형됐으며, 함경북도 온성군 삼봉구에 거주하던 가족 3명의 경우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에 따르면 북한 주민 황경률 씨도 지난 2010년 11월 중국에 넘어가 교회를 다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양강도 혜산시 보위부에 구금돼 현재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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