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유서공개에…야 "무고하다며 왜?" 여 "또 음모론인가"
새정치민주연합 "정치적 사건 있을 때마다 자살"
새누리당 "국정원 현장검증 통해 빨리 사건 정리"
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활용 문제와 관련, 유서를 남기고 숨지면서 이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야 간 힘겨루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직원 임모 씨(45)는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야산 중턱에서 자신의 마티즈 승용차 내부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19일에는 경기 용인동부경찰서가 임씨의 유서를 공개했다.
임씨는 유서에서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민간인 사찰이나 선거 개입 등에 활용했다는 야당의 의혹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며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고 적었다.
임씨가 사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사건은 야당의 '국정원 때리기'가 힘을 받았다. 앞서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2012년 대선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2013년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돼 지탄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임씨가 죽음과 함께 결백을 주장함으로써 국정원과 여당의 부인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임씨가 삭제한 자료 '디지털 포렌식'으로 복원 가능"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임씨의 죽음이 석연치 않으며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해킹 프로그램 문제가 흐지부지 돼선 안된다는 입장을 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고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의아하다"며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 없이 유야무야된다면 국정원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신경민 의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정윤회 문건 사건 △성완종 사건 등을 언급하며 "최근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살이 있다는 건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무고한데 왜 죽었는지 반드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며 "만약 야당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 어처구니 없는 설명이 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반면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과 정보위원인 같은 당 박민식 의원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야당의 이 같은 주장을 '음모론'으로 일축했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현장검증을 통해 이번 사건을 정리하자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일부에서는 자살 부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며 "가족들에게 유서를 쓰고(도) 자살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음모론"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임씨에 대해 "문제가 된 프로그램을 본인이 직접 구입하고 사용했으며 직원들 간에는 굉장히 신망이 두터웠던 사람"이라며 "감찰이 들어오고 하니 심리적 압박(을 느꼈고), 정치적 문제가 되니 더 압박을 느낀 것 같다. 국정원 간부들이 판단할 때 이 직원의 책임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임씨는 (해킹) 대상을 선정해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을 심거나 하는 기술자"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과 박 의원은 이어 임씨가 "삭제했다"는 자료에 대해서는 '디지털 포렌식(컴퓨터 하드디스크, 휴대전화와 같은 전자 증거물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통해 100% 복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씨가 왜 삭제를 했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정원에 따르면) 이 직원이 4일간 잠도 안자고 (이 문제에 관해) 얘기하면서 공황 상태를 겪다가 (이런 사실을) 착각하지 않았겠느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국정원) 분석은 대테러, 대북공작용 내용이 밝혀지면 큰 물의를 일으킬까 싶어 삭제하지 않았겠느냐(고 본다)"며 "(국정원이) 정확한 내용은 포렌식을 통해 나중에 밝히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여 "빨리 현장검증"…야 "견학가는 것 아냐"
한편 이 의원은 국정원 현장검증을 서두르자고 야당에 주문했다. 그는 "국정원 현장검증을 하기로 여야 합의를 했는데 야당에서는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을 자꾸 끄는 인상을 주고 있다"며 "이 같은 안보 문제는 하루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야당이 협조해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 위원장은 '선(先)의혹검증 후(後)현장조사' 원칙을 주장하며 국정원이 의혹 해소를 위한 해킹 프로그램 테스트 시점부터 마지막 시점까지 모든 기록을 원본 로그파일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이제까지 몇 명을 해킹했는지, 이탈리아 해킹팀 외 다른 구매 내역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진상 규명 활동은 정보위 차원의 현장조사가 아니라 여야 특위 구성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 또한 "(현장조사를) 손만 잡고 빨리 가자는 게 여당 입장인데 우리가 (국정원에) 견학이나 수학여행을 가는 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국회 정보위 소속 문병호 의원도 "국회 차원의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통해 세세하게 파고들어야 이 사건의 실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오는 20일 원내수석부대표와 정보위 간사를 포함한 '2+2 회동'을 갖고 현장 방문 일정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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