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놓고 교육부 vs 좌파교육감들 '폭풍전야'
교육부 장관 여러 차례 국정화 시사했지만…"아직 결정된 바 없다"
교육청 "언론 보도나 정황상 국정화 시도 있어 우려 표명한 것"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두고 정부와 교육청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정부는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일각에서 ‘국정화로 방향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새어나오고 있다. 이에 진보 진영의 교육감들은 대응 태세를 갖추고 ‘국정화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하면서 갈등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실제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상당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9일 한 일간지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기정사실화됐으며, 발표 시점을 조율 중”이라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려 청와대와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내부적으로 확정하고 추석 전 이를 발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즉각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곧이어 교육부도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며, 현재까지 중등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는 결정된 바 없음”이라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취임 이후부터 줄곧 ‘역사는 한 가지로 가르쳐야 한다’고 소신을 밝혀왔다. 이를 두고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 추진을 시사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 황 장관은 올해 1월 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역사 교과서 오류와 관련한 질문에 “학생들을 채점하는 교실에서 역사는 한 가지로 권위 있게 가르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며 “역사를 공부하면서 분쟁의 씨를 심고 갈라지는 것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것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뜻하는지 묻자 “조만간 정부 입장이 정해지면 말씀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후 지난 8월 19일에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검·인정을 하다 보니 7가지 교과서로 가르치는데 통일이 안 되어 있다”며 “한국 국민이라면 갖고 있어야 될 기본적인 역사지식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것이 혼란스럽고 다양하니까 이에 대한 많은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균형 잡힌 올바른 역사를 국가가 책임지고 가르쳐야 되는 것 아니냐는 근본적인 문제”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교육과정을 9월에는 매듭을 지으니까 9월까지는 결정을 보겠다”고 덧붙였다.
현행 검·인정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국정화 방침 결정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는 현재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겠다’는 등 어떠한 구체적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지만, 현 체제의 문제점을 직접 거론하며 ‘한 가지’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 미뤄 정부가 국정 교과서 발행으로 최종 방향을 잡은 것 아니냐는 견해가 새어나오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9일 ‘데일리안’에 “아시다시피 지금은 교육과정 개정 중에 있는 상황이라 국정화에 대한 입장이 어떻다고 최종적으로 결정된 게 없어 밝히기 어려운 단계”라며 “물론 황우여 장관께서 주무부처 장관이시기 때문에 방송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있어 관련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9월 말까지 교육과정 개정 고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검토를 한 뒤에 최종적인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가운데 8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등 4명의 교육감은 여당과 정부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교육감은 “다른 교과에 비해 국사가 갖는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국가가 일방적으로 확정한 하나의 교과서로 획일적 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 다양성과 창의성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고 우리 사회가 이룩해온 민주주의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히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들과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2255명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거론, “정부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중단하고 어떻게 하면 보다 올바르고 풍부한 역사 교육이 잘 이뤄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주기를 정중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당초 이들은 7일 서울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할 방침이었으나 “교육부 입장이 유동적”이라는 이유로 일정을 돌연 취소, 추후 입장을 밝히겠다는 뜻을 표한 바 있다.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공식적으로는 최종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음에도 교육청이 먼저 나서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발표 직전부터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그동안 여러 문제에서 갈등을 겪었던 두 기관이 국정 교과서 논란에서 또 다시 충돌을 빚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견해도 나온다.
이와 관련,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단 언론 보도나 여러 가지 정황에서 (정부가) 국정 교과서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국회 연설에서 국정 교과서 해야한다고 말씀을 하셨다”며 “어제까지는 교육부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언론 보도는 계속 나와 교육감들께서 우려를 표명한 것”이라고 성명 발표 이유를 설명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