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찾아가서 '정몽준 낙선' 시위...현대중공업 노조 제정신?
<기자수첩>취리히 FIFA 본부에 투쟁단 보내
노조 요구사항과 FIFA 회장 선거가 뭔 상관
임금협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 중인 현대중공업 노조가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뛰어든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현대중공업 대주주)을 압박하기 위해 FIFA 본부로 투쟁단을 파견할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지난 11일 현대중공업 노조측은 오는 21일까지 임금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FIFA 본부에 투쟁단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는 정 명예회장과 회사 측에 강력한 압박을 가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특히 실질적인 경영권을 쥐고 있는 정 명예회장에게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미 3차례 부분 파업을 벌인 바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금협상 난항을 이유로 지난 10일부터 사업부별 순환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사측에 △임금 12만 7560원(기본급 대비 6.77%) 인상 △직무환경수당 100% 인상 △고정성과급 250% 보장 △기본급 3% 노후연금 적립 △통상임금 1심 판결결과 적용 △임금·직급체계 및 근무형태 개선을 위한 노사 공동위원회 구성 △성과연봉제 폐지 △사내하청노동자 처우개선 등을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지난 7월 기본급 동결 및 생산성 향상 격려금 100% 지급, 안전목표달성 격려금 100만원 지급 등의 안을 제시했지만 노조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정 명예회장을 따라다니며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사실상 정 명예회장의 FIFA 회장 '낙선 운동'을 펼치겠다는 셈이다.
노조는 지난달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 명예회장의 FIFA 회장 출마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으로서는 이미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의 보이지 않는 견제를 받고 있는 데다가 최근 아시아축구연맹(AFC)이 회원국을 향해 또 다른 후보인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을 FIFA 회장으로 추천하는 추천서를 보낸 것이 FIFA로부터 '문제 없다'는 결론을 받는 등 악재가 겹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노조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정 명예회장이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했을 때에도 그를 향해 '서울시장 선거보다 현대중공업 문제 먼저 해결하라'고 외치며 압력을 가했다. 결국 정 명예회장은 그 해 선거에서 낙선했고 이후 정치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노조가 예고한대로 정 명예회장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지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만약 현실화 될 경우 FIFA 회장 선거에 크나큰 부담이 되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플라티니가 이를 약점으로 삼아 공세를 펼친다면 정 명예회장이 마땅히 반박할 수 있는 거리도 없다.
노조가 정말 정 명예회장을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을 갖고 FIFA 본부 앞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면 큰 효과를 거둘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옳은 방법이라 할 수 없다. 노조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정 명예회장의 낙선이 아니라 임금 인상 등 자신들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사와의 관계를 대주주 개인 영역으로 끌고 가 압력을 행사해 요구사항을 얻겠다는 발상은 지나치며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협박'으로 볼 수 있다. 애초에 협상 창구를 정 명예회장과 마련한 것도 아니면서 이제 와서 그를 겨냥하는 것은 치졸하다. 더군다나 FIFA 회장이라는 자리는 개인의 영욕일 수도 있지만 국가의 명예와도 연결돼 있지 않은가.
이를 의식한 듯 14일 오전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는 "정 명예회장이 FIFA 회장으로 당선되면 아시아 권역에서 처음으로 세계축구의 수장이 되는 것이고,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큰 의미가 있다"며 "우리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떠나 초당적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더구나 야당도 이미 정 명예회장의 FIFA 회장 당선을 지지한 바 있다. 지난 2일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FIFA 회장은 세계 체육계를 움직이는 글로벌 리더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을 재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정 명예회장은 FIFA 부회장을 하고 세계축구의 기반을 닦아 온 사람이다. 선거가 6개월도 안남았는데, 우리당도 정 명예회장이 꼭 당선되도록 협력과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고 거들었다.
여당의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인물을 향해 여야가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정 명예회장의 FIFA 회장 출마는 단순히 이념 대립과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적인 중대사로까지 여겨지는 이유다. 이런 일을 갖고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훼방을 놓겠다는 것은 더 큰 것을 내다보지 못하는 편협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정 명예회장이 FIFA 회장에 낙선의 위기를 느낄 경우 자신들의 임금을 올려즐 것이라고 생각하는 노조의 발상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 아닌가 싶다. 노조는 자신들을 위한 일과 국가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구별하고 자신들의 결정에 대해 재고하길 바란다. 그들의 섣부른 행동이 오히려 '반애국적' 행위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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