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차두리 은퇴, 2002 세대 '황혼 실감'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입력 2015.11.09 10:41  수정 2015.11.09 10:47

2002 월드컵 4강 신화 썼던 이천수-차두리 나란히 은퇴

우여곡절로 구설에 자주 오르내렸어도 말년은 아름답게

이천수 ⓒ 연합뉴스

한국축구 영광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이천수(인천)와 차두리(서울)가 나란히 은퇴를 선언했다.

이천수와 차두리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쓴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막내급이었다. 비록 주전은 아니었지만 경기 후반 분위기를 바꾸는 공격진의 조커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이후 이천수는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첫 8강 진출에 기여했고,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토고전 프리킥골로 한국의 원정 월드컵 첫 승을 이끌었다. 차두리는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해 한국의 첫 원정 16강에 기여했고, 2015 아시안컵까지 뛰며 2002 세대 중 가장 마지막까지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축구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둘의 존재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재능과 기대치에 비해 평탄하지 못한 선수생활을 보낸 공통점도 있다.

이천수는 한국인 역대 최초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출신 1호였고,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도 입단했지만 두 번 모두 적응 실패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K리그에서는 수원과 전남에서 물의를 일으켜 임의 탈퇴로 한동안 축구계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차두리는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축구인생의 명예이자 그림자이기도 했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이어갔지만 부친만큼의 명성은 얻지 못했다. 여러 차례 소속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거나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전향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차두리는 2010년 스코틀랜드 셀틱 이적 이후에야 프로무대에서 처음으로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둘의 말년은 아름다웠다.

차두리 ⓒ 연합뉴스

차두리는 2013년 FC서울에 입단, 3년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낙마했지마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국가대표팀에서도 다시 발탁돼 호주 아시안컵에서 활약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서울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경기였던 FA컵에서는 K리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올렸다.

이천수 역시 2013년 우여곡절 끝에 임의탈퇴 해제 이후 고향팀인 인천에 정착했다. 복귀 후에도 술자리에서의 폭행 시비 등 몇 차례 사건사고는 있었지만 과거에 비하면 큰 구설수 없이 안정적으로 마무리했다는 평가다. 비교적 전력이 떨어지는 데다 임금체불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인천의 든든한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마지막 시즌까지 자기 몫을 다했다.

공교롭게도 FA컵 결승에서 차두리의 서울과 맞붙어 마지막 우승의 기회를 놓친 것은 못내 아쉽지만 고향팀에서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름답게 축구인생의 마무리를 장식하게 된 것은 이천수의 파란만장한 축구인생을 생각하면 의미 있는 결말이었다.

이천수와 차두리가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면서 현역으로는 2002 월드컵 세대는 김병지와 현영민(이상 전남), 김남일(교토 퍼플상가)만이 남았다.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최용수, 황선홍, 윤정환, 최진철 등은 지도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 안정환처럼 축구행정가와 방송인 등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인물들도 있다.

축구팬들에게는 그야말로 한 시대의 황혼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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