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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부친상으로 되돌아 보는 조문 정치 백태


입력 2015.11.14 09:58 수정 2015.11.18 16:30        문대현 기자

거물급 정치인 빈소, 살아있는 정치의 장으로 변모

"그래도 장례식장인데…" 지나친 정치 해석 비판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가 9일 오후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유수호 전 국회의원의 빈소를 조문한 뒤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의 장례가 치러지는 곳에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몰리며 '조문 정치'를 펼쳤다. 기본적으로 장례식장은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소지만 정치인의 빈소의 경우 정치적 행위를 하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 측의 집계에 따르면 2박 3일간 빈소에는 여야 현역 의원만 113명이 참석했고 조문객이 작성한 방명록은 15권이 나왔다. 방명록이 권당 20장으로 돼 있고 한 면에 10명 안팎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3천명 가량의 조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정치인이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적지 않은 숫자다. 상제(부모나 조부모가 세상을 떠나서 거상 중에 있는 사람)인 유 전 원내대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6일 별세한 같은당 문대성 의원의 모친상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다. 김무성 대표와 이인제·김을동 최고위원과 황진하 사무총장, 정병국· 정두언 등 20여명의 의원들이 조문을 한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그 이상의 이슈는 없었다.

정치인의 장례는 단순한 조문 외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정치인 조문객들이 상가에 와서 내놓는 말 한 마디가 모두 기사화 될 수 있고, 조문을 통해 껄끄러운 관계를 회복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번 유 전 의원의 빈소가 딱 그랬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사퇴 파동을 겪으며 청와대와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고, 당내 친박근혜 인사들과도 불편한 기류를 이어왔다. 이 때문에 정계의 관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간접적인 조문을 통해 유 전 원내대표와 관계 회복을 하는지에 몰렸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다는 평가다.

청와대 인사들 중에서는 이병기 비서실장과 김현숙 고용복지수석이 조화만 보냈을 뿐 직접 찾은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조화도 없었다. 하루 먼저 시작된 문 의원 모친상에는 박 대통령의 조화가 놓여져 있었다. 고인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은 2대에 걸친 악연이 '유승민-박근혜'로 이어져 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장례식장을 'TK 물갈이론' 홍보의 장으로 활용했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번 총선 때 전체 의원의 60%를 물갈이해서 과반이 넘었다. 이번에도 전략공천을 통해 필승 공천으로 가야 된다"고 사실상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했고,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도 "대구 지역 시민들은 똑똑하다. (내가) 초선일 때 대구 의원들이 7명 물갈이 됐다. 대구 시민들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후 박민식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하늘이 무너지는 그런 슬픔을 겪고 있는 빈소에 가서 아주 정치적으로 예민한 그런 발언을, 그것도 상주한테는 다시 한 번 그런 매질을 하는 발언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 말을 전해들었을 유 전 원내대표 역시 기분이 좋았을 리는 없다. 장례식장이 정쟁의 장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박상천 전 대표 상갓집서 손학규 "신당 창당 하겠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왼쪽)이 지난 8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박상천 상임고문의 빈소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오른쪽 둘째)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인의 상가에서는 대립각을 세우는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평소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다양한 정치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정치 결사체 형성이 논해졌던 경우도 있다.

지난 8월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의 빈소에는 정계은퇴 후 전남 강진에 칩거해 온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극도로 언론 노출을 꺼려오던 손 전 상임고문의 등장은 당시 야권 지형의 움직임과 맞물려 많은 관심을 받았다. '비노(비노무현)+비박(비박근혜)' 간 중도 신당 창당 이야기까지 나오는 시점이었다.

이 상황에 손 전 상임고문은 공교롭게도 유 전 원내대표와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 임채전 전 국회의장 등과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던 중 임 전 의장은 기습적으로 "손 대표(손 전 상임고문) 왔지, 유 대표 왔지, 여기 신당 창당 하나 하겠네"라는 말을 던졌고 주변에서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목된 두 사람은 멋쩍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후 손 전 상임고문이 자리를 뜰 때 기자들이 "공교롭게 유 원내대표와 김 전 의원과 세 분이 모여 중도신당 얘기도 나온다"고 물었고 그는 "좀 좋은 질문을 해야지…더운데 수고들 하시라"고 웃었다.

임 전 의장의 '신당창당' 발언은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뱉은 말에 가까웠고 이들 간 신당창당 논의가 실제로 이어지지도 않았지만 당시 이 모습은 꽤나 화제가 됐다. 장례식장이었기에 나올 수 있는 그림이었다.

이와 별개로 지난 2월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부인 고 박영옥 여사의 빈소에는 이례적으로 박 대통령이 직접 조문을 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야권의 인사들도 줄줄이 빈소를 찾아 정치 현장을 만들었다.

김 전 총리는 조문을 온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잘못하면 국민에게 비난받고 열매를 못 따먹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허업"이라며 조문정치를 실천했다. 이와 같이 빈소는 돌아가신 고인을 추모함과 동시에 살아있는 현장이 되기도 한다.

고인 기려야 할 빈소에서 '시끌벅적' 정치 행위, 옳지 않다는 지적도

정치인의 빈소에는 정치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당연하고 그 자리를 주목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고인을 기리는 것과는 별개로 조문 정치인의 말 한마디와 움직임 하나하나 모두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장례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존재한다.

조문객으로 온 정치인이 그 자리에서 현안에 대해 논하며 '폭탄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때와 장소에 맞지 않다는 의견이다.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다수의 취재진들이 엄숙한 장례 분위기를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12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조문하는 장소에서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상주 입장에서도 다수의 사람을 접대해야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장례식장에서 현안을 이야기한다던지 조문과 관계 없는 것을 하면 부적절하다"면서도 "계파나 정당을 초월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다음 만남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계기는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본보에 "조문 정치라는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조문으로 장례의 의미가 변질된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문대현 기자 (eggod6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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