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지하철 핑크카펫 확대, 임산부는 여전히...
서울시 관계자 "다양한 홍보방안 구상중...무엇보다 시민 참여가 중요"
서울시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디자인 ‘핑크카펫’을 전 호선에 확대 적용키로 한 가운데, 여전히 임산부를 비롯한 지하철 이용객들 사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15일 2·5호선과 3·8호선 등 일부 차량에만 운영하던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을 1~8호선 전체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관련해 시는 지하철 운영기관인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산부 배려석 인지도·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 523명 중 76%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실제 지하철을 이용하는 임산부와 일반 이용객들 사이에서는 ‘갸우뚱’한 반응이 다수다. 세금을 들여 디자인만 화려하게 바꿨지 실상 효과는 이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일방통행식 불통행정·전시행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열차 한 칸 당 두 좌석씩 지정한 임산부 배려석에 좌석 뒷면부터 의자, 바닥까지 분홍색 띠를 두른 ‘핑크카펫’이라는 새 디자인을 입혀 시범운영해왔다. ‘핑크카펫’은 귀빈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레드카펫’에서 가져온 말이다.
하지만 그간 ‘핑크카펫’은 그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일반 좌석과 다름없이 사용돼왔다.
실제 국내 한 임산부 커뮤니티를 보면 ‘핑크카펫’ 취지에는 공감하나 실효성이 없어 무용지물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디자인 개선보다 시민의식을 개선할 수 있는 홍보나 캠페인이 먼저라는 것이다.
“임산부 배려석 만족도 76%는 누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걸까. 정작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게 없는데(닉네임 ‘햇님***’)”, “분홍색 좌석을 확대하나마나 세금만 더 쓰는 거지 효과도 없는 걸 왜 확대하는지(쿠***)”, “무의미. 좌석을 개선할 게 아니라 시민의식부터 개선해야한다(둥댕***)”, “임산부 배려석 눈치보인다(러블***)”,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정말 무용지물(beu***)”
때문에 임산부 배려석의 ‘핑크카펫’ 디자인은 임산부와 일반 승객 모두에게 ‘불편한 존재’로 인식돼왔다.
실제로 서울시 마포구에 거주하는 정모 씨(남·28)는 “서있을 자리도 없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 분홍색 자리가 나면 남잔데 민망해서 앉기도 뭐하고 안 앉아도 다른 사람이 앉는다. 임산부석이면 무조건 비워놔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임산부가 근처에 오면 비켜줘야 하는 건지도 헷갈리고 가끔 그냥 앉았는데 분홍색 자리면 깜짝 놀라면서 굉장히 고민스럽다”고 전했다.
임산부 입장에서도 눈치가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 관악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여·31)는 “임산부 배려석이라고 눈에 잘 띄게 해준 취지는 고맙지만 실상 잘 이용하지는 못 하고 있다. 임신 초기 때나 겨울에 코트라도 입으면 배나온 게 잘 티도 안 나 양보받기 어렵고 그렇다고 임산부 배지 들고 분홍색 자리 앞에 가서 서면 마치 ‘내 자리니까 비켜달라’는 식으로 보일까봐 민망하기도 하다”고 전했다.
온라인상의 네티즌들 역시 ‘핑크카펫’ 확대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부러 분홍색 좌석 비워놓고 앉아있으면 결국 남자든 할머니든 아줌마든 학생이든 와서 거리낌 없이 앉는다. 이런 거 보면 굳이 튀게 만들어놔야 했나 싶다(네이버아이디 yen***)”, “자리만 분홍색일 뿐 보면 다들 버젓이 앉아서 스마트폰 보거나 조느라 앞에 쳐다도 안 본다. 이건 시민의식의 문제 같은데 이정도면 의미 없는 세금낭비인 듯(blu***)”, “출근하면서 핸드폰이나 책보거나 졸면 솔직히 앞에 임산부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 미어캣처럼 계속 살펴봐야는 것도 아니고...(gyu***)”
동시에 디자인보다 안내방송·캠페인 등의 홍보나 기존 노약자석을 이용해 임산부석을 만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이미 따로 마련해놓은 노약자석에 임산부가 포함돼있다. 출산율은 점점 줄어드는데 임산부석만 더 강조한다고 출산율이 높아지나(네이버아이디 wjd***)”, “경로석이 돼버린 노약자석을 잘 활용해야 한다. 노약자석 중 한 좌석을 분홍색으로 만든다든지(kte***)”, “비효율의 극치. 안내방송이나 캠페인을 많이 하는 게 더 효과적(bre***)”, “노약자석이 이미 임산부 장애인 등 교통약자석이다. 그렇게 표시도 돼있고. 서울시는 왜 과도한 전시행정을 하는지(jch***)”, “이런 거 볼 때마다 공무원들이 국민들에게 일방소통 하는 느낌(ape***)”
이에 서울시 도시철도관리팀 관계자는 15일 ‘데일리안’에 “기존에 보건복지부가 부착한 임산부석 앰블럼이 눈에 잘 띄지 않아 이를 개선하기 위해 분홍색 옷을 입힌 건데, 지금은 이용객들이 확실히 임산부석을 인식하고 있어 이 자체만으로도 첫 발을 뗐다고 생각한다”며 “원래 민원 자체가 칭찬보다는 더 잘하라는 쓴 소리가 더 많이 들어오는 것처럼 비판하는 내용이 더 부각돼 문제시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관계자는 “임산부석이 임산부를 위한 좌석이 될 수 있게 앞으로 (지하철) 양 공사와 함께 적극적인 홍보 캠페인을 벌여나갈 것”이라며 “기존 안내방송이 1번 나갔다면 2~3번으로 늘려 방송하거나 홍보 동영상을 제작해 수시로 띄우는 방안, 또 기존의 피켓 캠페인에서 퍼포먼스 등 보다 다양하고 적극적인 홍보를 구상중이다”라고 밝혔다.
끝으로 관계자는 “홍보만큼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호응”이라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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