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중장기 경제어젠다 추진 전략회의'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권력자'라는 단어를 처음 꺼냈고 이는 향후 당내 계파 갈등의 촉발제가 됐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일컬어지는 국회법 개정 과정을 두고 '권력자' 발언의 여진이 깊은 가운데 그는 현재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와 각을 세우다 확전될 듯 싶으면 빠지는 김 대표의 모습이 왠지 익숙하게 느껴진다.
김 대표는 지난 2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중장기 경제 어젠다 추진 전략회의'에 참석해 "선진화법이 통과되던 2012년 당내 많은 의원들이 반대했는데 당시 권력자가 선진화법 찬성으로 돌아서자 반대하던 의원들이 전부 다 찬성으로 돌아버렸다"며 "내가 상향식 공천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이런 이상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 대표가 말한 '권력자'는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근혜 대통령'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대표는 그 날 친박계를 향해서도 칼을 겨누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사건건 부딪히는 친박계에 대해 "권력 주변의 수준 낮은 사람들은 완장을 차려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김 대표는 "그들은 완장을 차고 권력자 이미지를 손상시킨다. 역대 정권마다 있었던 일인데 그게 대통령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직격했다.
그러자 당장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선 '부적절하다'는 비판론이 일기 시작했다. 간간이 국지전을 펼치던 친박계가 완전히 얼굴을 붉히게 된 것은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2030 공천설명회'에서 김 대표의 발언 때문이었다. 이날 김 대표는 '권력자'라는 단어를 또 사용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과거에는 공천권이 당의 소수 권력자에 의해 밀실에서 좌지우지 돼 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능력과 열정보다는 권력자에게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젊은 인재들이 선뜻 나서지 못한다"고 했다. 이 역시 19대 총선 공천에 앞장선 박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결국 터진 친박계, 김무성 감싸고 나선 비박계
이틀 연속 터지는 김 대표의 '도발'에 친박계는 더 이상 참지 않았고 결국 전면전이 발발했다. '친박 중진' 유기준 의원은 28일 오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친박, 비박 구별 없이 개인의 소신에 따라서 또 자유 의사를 가지고 투표에 임했던 것이지 그렇게 해서 찬성이 많아지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팩트가 아니라고 본다"고 김 대표의 의견을 반박했다.
이어진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 지도부는 김 대표의 면전에 두고 포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서막은 '친박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이 올렸다. 그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가운데 왜 김 대표가 권력자 발언을 해서 분란을 일으키느냐"며 "이게 무슨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가. 새누리당의 권력자는 김무성 아닌가. 모든 인사권과 당내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지금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른 이 이상 권력자가 어딨나. 왜 이런 권력자 이야기 나왔는지 이해 할 수 없다"고 퍼부었다.
김태호 최고위원도 "새누리당이 희화화되고 있다. 누가 진짜 권력자인가 수수께끼를 하고 있다"며 "남 탓만 할 게 아니라 정말 우리를 다시 한 번 깊이 바라보고 자만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인제 최고위원 역시 "과거를 자꾸 현재 기준에 맞춰 자기 편리한 대로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당내 민주주의와 의회 민주주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가세했다. 김 대표는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서 최고위원은 이후 따로 기자들과 만나서도 "분란이 나는 것은 더욱 이 시점에서는 아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얘기가 있다"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후 모든 관심은 김 대표의 추가 반응에 쏠렸지만 더 이상의 '리액션'은 없었다.
친박계의 반격은 29일에도 계속됐다. 홍문종 의원은 이날 오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 대표의 '권력자' 발언은) 대표로서 약간 오버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최고위원은 다른 방송에서 "전혀 부질없고 쓸데없는 발언이다. 그냥 해프닝인지, 아니면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인지 본인(김 대표)이 이야기를 안 하니까 모르겠다"며 "청와대와는 혼연일체가 돼야 하는데, 권력자라는 게 지금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아무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한 번 더 겨눴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침묵했지만 이번에는 비박계 의원들이 김 대표를 호위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친김무성계로 꼽히는 김성태 의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 대표는 총선을 진두지휘해야 될 우리 새누리당의 수장이다. 선장을 뒷받침하고 지원하기 보다는 흔들어대면 배가 격랑에 결국에 난파될 수밖에 없다"며 "당 대표가 하는 것을 볼썽사납게 보고 원성을 자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간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엄호하고 나섰다.
'비박 중진' 정두언 의원도 같은 시각 다른 방송에서 "(김 대표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왜 시비를 거는 건지 그것도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방패막을 쳤다. 김 대표의 권력자 발언이 자신과 청와대의 신경전을 넘어 당내 계파 간의 심각한 정면 충돌까지 불러일으킨 것이다.
'싸움거리'를 던진 김 대표는 계속 침묵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28일 여수·순천·광양상공회의소 강연을 위해 여수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났지만 이에 대한 물음에 답 하지 않았다. 또 29일 오전 저출산대책특위 참석 이후에도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하이발 개헌론', '유승민 사태, '안심번호제'…그 땐 어땠나?
김 대표는 취임 이후 간간이 청와대와 마찰을 일으켰다. 첫 번째는 '상하이발 개헌론'이었다. 그는 2014년 10월 16일 중국 출장에서 '개헌론'을 꺼내 청와대와 첫 번째 혈투를 치렀다. 이에 당시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실수가 아닌 것 같다"며 경고했고 이 말을 전해들은 김 대표는 "청와대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되물으며 확전됐다.
그러나 이후 김 대표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많이 시작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투였다"라며 자신의 '개헌론' 발언을 철회했다. 박 대통령에게는 사과까지 했다. 그는 불을 질러놓고 상황이 번지자 입장을 번복하며 '빠지기' 전략을 채택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파동 당시에도 초반에는 유 전 원내대표의 손을 잡는 듯한 자세로 청와대와 맞섰지만 이후 "새누리당의 미래와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라는 말을 남기며 '원내대표 사퇴 권고 결의안 채택'을 위한 의원총회를 소집해 유 전 원내대표의 손을 놓았다. 김 대표는 '순망치한', '혈맹'이라고 까지 불리던 유 전 원내대표와 결국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으면서까지 청와대와의 갈등을 피하려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공천 방식을 둘러싸고 김 대표와 청와대가 또 갈등을 겪은 바 있다. 김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청와대와 미리 상의했다고 했지만 현기환 정무수석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반박하며 충돌했다. 이에 여권 내부에서도 갈등이 지속됐고 결국 김 대표는 현 수석과 전화통화를 통해 "더 이상 확전을 자제하자"는 의견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청와대와 무언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초반에는 상대적으로 거세게 나갔지만 끝에는 처음과 비교할 때 슬그머니 입장을 바꾸는 전략을 채택해왔다. 그는 자신의 변경된 입장을 한 번 밝히고 난 뒤에는 동일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이번 '권력자' 발언의 경우엔 아직 사과를 하거나 철회를 하진 않았지만 자신을 향한 거센 압박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시 '빠지기' 전략을 취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청관계의 있어서 계속해서 비슷한 입장을 갖고 대응하고 있는 김 대표의 모습이다. 단, 김 대표가 아직 말을 물리지 않았고 청와대 역시 직접 대응은 하지 않은 상태임을 고려할 때 향후 상황에 따라 계파 갈등이 재점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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