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그들끼리 감격...지역 주민들 "그게 뭔데?"
여의도 정가 격렬한 반응 보이지만 지역 정가선 무관심
"먹고살기 힘든데 정치인들 없어졌으면" 불신 심화만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저지를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와 지역정가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의도는 필리버스터 정국에 파묻혀 있는 반면 지역에선 대부분 무관심할 뿐 아니라 예비후보들은 선거 운동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23일 저녁부터 시작된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28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 김광진·국민의당 문병호·더민주 은수미·정의당 박원석·더민주 유승희·더민주 최민희·정의당 김제남·더민주 신경민·더민주 강기정·더민주 김경협·정의당 서기호·더민주 김현·더민주 김용익·더민주 배재정 의원·더민주 전순옥·더민주 추미애·더민주 정청래·더민주 진선미·더민주 최규성·더민주 오제세·더민주 박혜자·국민의당 권은희 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1969년 8월 29일 당시 여당인 공화당의 '3선개헌 국민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무제한 토론을 펼친 이후 무려 47년 만에 이뤄진 필리버스터에 여의도 정치권은 물론 대다수 국민들은 다양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동안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의원들의 이름과 '필리버스터', '테러방지법', '파이팅' 등 관련 키워드가 계속해서 줄을 잇고 있다. 필리버스터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네티즌들의 댓글도 야당에 힘을 주는 내용이 많다. 더불어 야당 의원들은 자신의 SNS에 필리버스터를 지지하는 글을 남기며 필리버스터 붐을 조성하는 형국이다.
총선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여론의 흐름이 이렇자 여당은 야당을 향한 총공세로 맞서고 있다. 당 지도부는 공식회의석상에서 발언의 대부분을 필리버스터 비난 내용으로 채우고 있으며 며칠새 대변인들이 내놓는 논평 역시 마찬가지 기조다. 일부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의 발언이 안건에 어긋났다고 큰 소리로 주장하며 야당과 말 다툼을 벌였고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선 국회마비 규탄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회는 테러방지법 뿐 아니라 선거구 획정을 비롯한 국회 의사일정까지 가로막혀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 회동이나 2+2 지도부 회담 역시 별 진전을 보이지 못 하고 있다. 국회가 필리버스터 정국으로 뒤덮인 모습이다.
국회 밖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국회 정문 앞에서 23일 시작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반대 '시민 필리버스터'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 단체 등 수 많은 단체들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시민 서명'에도 많은 시민단체들과 국민이 호응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보수국민연합, 자유민학부모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필리버스터를 이용해 테러방지법 처리를 반대하는 더민주를 비판하며 테러방지법 처리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며 각을 세우기도 했다.
지역별 예비후보들은 더 심해지는 정치 불신에 냉가슴
여의도 정가는 필리버스터라는 이슈가 각종 다른 이슈를 잠식하고 있지만 선거를 앞둔 지역의 상황은 다르다. 여전히 국민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할 뿐 정치 이슈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필리버스터로 인해 국민의 정치 불신이 심화되며 예비후보들은 냉가슴을 앓고 있다.
부산 사하을의 석동현 예비후보는 26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지역을 돌아보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원망이 이제는 분노로 바꼈다"며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 속에 예비후보들이 기존 정치에 대한 원망을 다 듣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일반 국민들은 필리버스터에 관심도 없고 무엇인지 모르기도 한다. 나조차 TV를 계속 보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는지 모르고 있다"며 "국민들은 필리버스터를 하든 안 하든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심지어 국회를 파괴했으면 좋겠다고까지 한다"고 털어놨다.
경기 안산 단원을의 허숭 예비후보도 선거구미획정이라는 불에 필리버스터가 기름을 끼얹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필리버스터라는 제도는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공직선거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 행하는 필리버스터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서울 마포을 김성동 예비후보 역시 "국회가 비판을 넘어 완전히 외면 당하고 있음을 느낀다. 국민들은 국회를 그들만의 리그로 취급하고 있으며 필리버스터에 대해선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여 "온라인에서 반응은 뜨겁지만 현장의 반응은 다르다"고 밝혔다.
분구가 예상되는 경남 양산의 김성훈 예비후보도 "빨리 선거구 획정부터 하는 등 국회가 본연의 임무를 다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고 있다"도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일부 지역 예비후보들은 주민들이 필리버스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선거운동을 하는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울 성북갑 권신일 예비후보는 본보에 "우리 지역 젊은층과 노인층 대부분 필리버스터를 알고 있다. TV 뉴스, 신문, 종편 등 언론에서 계속 나오니까 모를 수가 없을 뿐더러 우리 지역 현역(유승희 더민주 의원) 의원이 참여 하지 않았나"면서도 "그러나 그럴수록 정치 혐오는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달서병의 남호균 예비후보도 본보에 "주민들이 테러방지법에 대해 아주 상세히는 모르더라도 인지는 하고 있으며 필리버스터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며 "그러나 나 같은 정치 신인은 인지도가 낮아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주민들은 정치 혐오가 심해 후보들을 기피하고 있어 힘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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