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 "앞만 보고 달린 나, 행복하지 않았죠"

부수정 기자

입력 2016.03.06 08:00  수정 2016.03.10 09:30

'널 기다리며'서 아버지 죽인 범인 쫓는 희주 역

"영화와 사랑에 빠져…연기 하고 싶은 배우일 뿐"

배우 심은경이 영화 '널 기다리며'를 통해 스릴러에 첫 도전했다.ⓒ매니지먼트 AND

충무로 최연소 '흥행 퀸' 심은경(21)이 추적 스릴러 '널 기다리며'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심은경은 '써니'(736만명·2011), '광해'(1232만명·2012), '수상한 그녀'(865만명·2014) 등에서 흥행 홈런을 쳤다. 여배우 기근 현상이 시달리는 충무로에서 심은경의 흥행력은 주목할 만하다.

잘 나가던 그는 KBS2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의 부진으로 주춤했다.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혹평 탓이었다.

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심은경은 그간 극심한 성장통을 겪은 듯했다. 처음 도전한 스릴러 '널 기다리며'(감독 모홍진·10일 개봉)에 대해 "연기엔 정답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며 "현장에서 진심을 다해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써니' 촬영 후 미국 뉴욕에 있는 프로페셔널 칠드런 스쿨에서 약 3년간 유학 생활을 한 심은경은 "당시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생각했다"며 "아역 시절을 지나 이제 스물 세 살이 됐는데 이십 대 초반과 중반, 그 과도기에 서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라는 인격체가 똑바로 서 있나 고민했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넓어진 듯해요. 정체성에 대해 고민도 했고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시간이었죠."

심은경은 유학 생활 당시 연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온전히 '나'라는 사람에 집중했다고. 조곤조곤 말하는 그에게서 고민과 고충이 느껴졌다. "유학 전까지는 연기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외국에서 홀로 지내면서 난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죠. 흔히 말하는 사춘기를 겪은 셈이죠."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그가 선택한 작품은 여성 캐릭터가 주연으로 나선 스릴러다. 극 중 형사 아빠를 죽인 살인범을 쫓는 소녀 희주 역을 맡았다. 희주는 순수함과 잔혹함, 양면성을 지닌 캐릭터다.

'널 기다리며'로 스크린에 돌아온 심은경은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매니지먼트 AND

언론시사회 당시 그는 "캐릭터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내 연기가 부족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희주만의 감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완성본을 보니 '저게 최선이었을까' 싶더라고요. 더 나은 연기를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아쉬워요. 메인 포스터엔 저만 나와서 괜히 쑥스럽고 부끄러웠답니다(웃음)."

이중성을 지닌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하려 했을까. "희주를 잔인하게 표현하고 싶진 않았어요. 사실 희주를 100% 이해한 건 아니에요. 눈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 복수를 꿈꾸는 인격, 철학적인 이야기, 죽음 앞에 초연한 모습을 다 표현하려고 하니 힘들었답니다. 희주를 더 세게 연기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는데 과하게 표현하면 캐릭터의 진심을 잃어버릴 것 같았어요."

고민하던 신은경에게 모 감독은 "희주는 순수한 아이"라는 말을 했단다. 그런데도 혼란스러운 장면은 이어졌다. 살인범 기범 역을 맡은 김성오는 심은경과 모텔 액션신을 찍다 기절하기도 했다. "연기에만 몰입한 제 잘못이에요"라고 말하는 배우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수상한 그녀' 할머니보다 어려웠어요. 하하. 할머니는 엄마를 통해 이해했는데 복수심에 가득 찬 사람은 경험한 적이 없어서...김성오 선배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지막 그네신도 혼란스러웠던 장면 중 하나였다. "죽음을 경험한 적 없는데 죽음 앞에서 초연한 희주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죠. 같은 장면만 3일 내내 찍었는데 힘들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표현을 했는데 맞는지도 모르겠고 참 아쉬운 장면이에요. 감독님의 의도도 읽지 못했고요."

심은경은 영화 '널 기다리며'에서 아빠를 죽인 살인범을 쫓는 희주 역을 맡았다.ⓒ뉴

영화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지닌 희주가 왜 이중성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심은경도 인정한 부분이다. "시나리오에는 희주가 미숙한 아이라는 게 나타나요. 그걸 연기로 표현했는데 확 드러나지 않아 아쉬워요. 이게 맞나 흔들렸고요."

인터뷰 내내 심은경은 위축된 모습이었다. 스물세 살, 한없이 밝고 즐거울 법도 한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궁금해졌다.

"'수상한 그녀' 때는 마냥 무모했고 신이 났어요.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그랬던 거 같아요. 연달아 작품을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하고, 허상을 추구한 것만 같고...행복하지 않은데 이렇게 달리면 무슨 소용이지 싶었죠. 이젠 예전과 다르게 더 신중해지고 진솔해지려고요(웃음)."

다소 우울해 보이는 그에게 "연기하는 게 행복하지 않냐?"고 물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심은경은 "글쎄요"라는 답을 내놨다.

"연기에 대한 본질을 잃어버린 채 살았어요. 처음 연기했던 시절엔 너무 행복했고 역할이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이 사라진 거죠. '무조건 잘해야 돼', '성공해야 돼', '이거 안 되면 다 끝나' 이런 생각만 했으니...인기가 당연한 줄로 알았어요."

심은경은 "이제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연기할 땐 여전히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시사회 끝나고 소속사 대표님과 술 마시다가 이런 얘길 했다고.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요." 배우의 진심이 꾹꾹 담긴 말이었다.

심은경은 올 초 개봉한 '로봇, 소리'에서 로봇 목소리 연기를 했다. 앙증맞은 로봇과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은경은 영화 '널 기다리며'에서 맡은 희주 역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뉴

얼굴이 밝아진 그는 "로봇 연기를 언제 또 해보겠느냐"며 "내겐 행운이었고 시나리오, 메시지, 선배들의 연기가 좋아서 무조건 출연하고 싶었다"고 했다.

심은경은 올해 '궁합', '조작된 도시', '서울역'(목소리 출연), '걷기왕' 등 여러 편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최민식이 주연한 '특별시민' 촬영도 상반기 중에 들어간다.

20대 여배우로선 독보적인 활동이다. 그는 "어릴 땐 아무 생각 없고 잘 몰라서 과감하게 덤볐다"며 "최근 주연의 부담감을 느낀다"고 했다.

"제 이름을 내걸어서 작품을 공개할 만큼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싶어요. 연기에 대한 본질을 찾고 싶어요. 무조건 연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감성을 쌓으려고 합니다.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저 자신을 돌아보려고요. 지금이 딱 그 시기예요."

유학도 다녀왔겠다 할리우드 진출을 꿈꿀 법도 한데 이 차분한 배우는 "큰 꿈을 꾸는 것도 좋지만 내게 맞는 걸 깨닫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파릇파릇한 연애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연애는 영화와 하고 있다"는 귀여운 답변을 들려줬다.

아역 배우에서 어느덧 스물세 살 성인 배우가 된 그는 "예전엔 나이 먹는 게 싫었다. '어른은 삭막해', '나이는 왜 먹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 시절에 못해 본 것들이 많아 아쉬워요. 답답하게만 살았던 것 같고요. 가장 행복한 순간을 간직할 수 있는 시기에 뭔가를 해야한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제가 낯을 좀 가리는데 더 다양한 경험을 해서 제 스스로를 고쳐 나갈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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