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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이젠 비켜줘야" "그래도 이재오"


입력 2016.04.09 07:25 수정 2016.04.09 07:28        서울 은평 = 데일리안 문대현 기자

<2016 총선 뜨거운 현장을 가다-서울 은평을>

이재오 6선 노리는 가운데 강병원·김제남 단일화 합의, 고연호도 변수

20대 총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지만, 표심은 여전히 부유(浮遊)하고 있다. 선거판을 주도할 이슈의 부재,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 상승으로 부동층만 30%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역대 어느 선거보다 ‘격전지’가 늘어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그 누구도 승패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데일리안의 정치부 기자들이 20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 지역을 직접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5일 앞둔 8일 서울 은평구 구파발역 인근 거리에 서울시 은평구을 지역에 출마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후보, 고연호 국민의당 후보, 김제남 정의당 후보, 이강무 민주당 후보, 유지훈 민중연합당 후보, 최병호, 이재오 무소속 후보의 선거 벽보가 걸려있다. 한편 강병원 더민주 후보는 김제남 정의당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이재오 너무 오래 했다. 새누리당 싫다", "무소속이라도 당연히 이재오, 큰 일꾼 필요하다"

서울 은평을은 최근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된 이재오 의원이 5선을 한 지역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 의원이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이 지역을 무공천했고 야당 후보들과 무소속 후보가 격돌하게 되며 복잡한 구도가 형성됐다.

이 의원은 15대 총선에서부터 이 지역 5선 기록을 이어왔다. 18대 총선에서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패했으나 이후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입성했다. 은평구는 전반적으로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며 야성이 강한 곳으로 분류된다. 은평구청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우영 구청장이고 은평갑은 이미경 더민주 의원이 5선을 했다.(비례 2회, 지역구 3회)

그럼에도 은평을에서 이 의원이 5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당 출신에 반독재 투쟁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정당보다는 '인물 투표'의 성향을 보여온 것도 이 의원이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난 선거를 돌아보면 이 의원은 시원스레 웃지 못했다. 18대 총선에선 문국현 당시 창조한국당 후보를 상대로 낙선했고 19대 땐 야권단일후보였던 천호선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를 상대로 1400여 표 차이에 불과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다. 이렇듯 은평은 점차 '야성'이 살아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야권에서는 강병원 더민주 후보와 고연호 국민의당 후보가 이 의원을 잡기 위해 나선 상황.

그러나 지난달 31일 '데일리안'이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야권의 바람과는 조금 달랐다. 이 의원이 오래했다는 피로감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 있는 인물이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 강했다. 이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에서 떨어져 무소속으로 나섰다는 것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서울시 은평구을 지역에 출마한 이재오 무소속 후보가 7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기호 8번 이재오 "내 8자는 국회의원 할 팔자"

이날 오후 6시 50분, 연신내역 사거리에서 이재오 후보의 유세연설이 시작됐다. 여러 개의 지하철역 출구를 사이에 둔 장소였던터라 많은 사람들이 오며가며 이 후보의 연설에 관심을 보였다. 붉은 색 상의를 입은 수십 명의 선거운동원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호응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졸지에 8번을 달고 선거에 나서게 됐다. 동네 어르신들이 저보고 이재오는 8자가 국회의원을 할 팔자라고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꽃 길만 걷겠나. 온갖 굴욕과 수모도 겪고 험한 길을 가지만 구민 여러분이 있기에 이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나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 어떤 후보도, 어떤 정당도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겠다. 내 이갸미나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중앙 정치에서 서로 싸우고 헐뜯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이 싫증을 내는데 지역 국회의원선거에서까지 서로 욕하고 비난하면 되겠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단 한 번도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적이 없다"며 "또 은평구는 나를 키워 준 동네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이나 되고난 후 지금도 구산동 270에 20번지 그 집에 그대로 살고 있다. 그 집은 내가 민주화 운동할 당시 많은 동지들이 피신왔던 그 집이다. 아직도 그 집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자신이 지역밀착형 후보임을 내세웠다.

유세장에서 만난 다수의 구민들은 이 후보를 지지했다. 그가 힘 있는 후보임에다 평소에도 지역민들과도 자주 인사를 나누며 친근하게 지내와 지역민들의 마음을 잘 안다는 것이었다. 연신내역 연서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여성 이모 씨는 "무소속으로 나왔어도 당연히 이재오다. 평소에 친근하게 시장에 와서 인사를 하고 간다"며 "공천을 받지 못해 연민의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77세 남성 차모 씨도 "이재오가 당선되리라고 본다. 이재오가 부당하게 공천을 받지 못 해 동정심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안보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야당이 김정일과 김정은을 비판한 것을 보지 못 했다. 안보는 박근혜가 잘한다"고 부연했다.

60대 남성 박모 씨는 "나는 은평구에서 40년을 살았고 지금은 뉴타운에 살고 있다"며 "여당에 대한 실망적인 감정과 이재오가 오래 해서 지겹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래도 큰 일꾼이 필요하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여당을 밀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대 여성 최모 씨는 "솔직히 나는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다"면서도 "부모님이 선호하는 정당으로 투표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선호 정당을 묻자 "아무대로 보수 정당을 선호한다. 이재오가 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 후보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북한산이 은평구를 지키는 것처럼 은평구민이 날 지킨다. 여러분은 내게 북한산과 같다"고 외쳤으며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은 원래 개천이었다. 그런데 지금 은평구는 내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얼마나 많이 좋아졌나"라고 자신을 어필했다. 그러나 이 의원 캠프 관계자는 "지금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지만 그래도 긴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 좀 봐야할 것 같다. 당적이 없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이라고 고백했다.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서울시 은평구을 지역에 출마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김제남 정의당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한 가운데 7일 서울 은평구 불광역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임종석 누른 강병원 "지역밀착형 후보, 민심을 믿는다"

임종석 전 의원을 누르고 더민주 공천을 받은 강 후보는 토박이론을 앞세워 표심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초중고를 모두 이 지역에서 나왔다. 서울대학교에서 총학생회장을 경험했으며 참여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 한 경험이 있다. 강 의원의 모친은 지금도 이 지역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강 의원측은 다소 부족한 인지도를 걱정하면서도 선거 운동이 지속되다보면 극복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강 의원측 한 관계자는 "임 전 의원과 경선을 할 때도 모두가 임 전 의원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초중고교를 여기에서 나온 강 후보가 이겼다"며 "지역 연고가 있는 후보에게 민심이 우호적일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민심의 흐름을 강력하게 믿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과거 은평은 경상도나 전라도 등 타지에서 온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이 여기에 터를 잡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리다보니 지금은 원래부터 이 지역에서 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당선돼야 한다. 유권자가 그렇게 판단하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의원이 20년 간 여기서 해왔지만 아직 지역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존재하고 있다"며 "그 부분은 야권단일화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후보 간 의견이 모아져 결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강 후보의 유세 현장에서 관계자가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시민이 관계자를 향해 분발을 촉구하며 질책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시민은 "정부의 쉬운해고, 노동개악을 왜 막지 못 하나. 직장생활이 무너지면 가족들이 무너진다. 회사에선 명퇴를 종용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해야지. 서울대 나오고 청와대에서 일 했고 이런 거 다 필요 없다"며 "여당의 정책을 꼬집으며 야당만의 차별화를 보여달라"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잘 반영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 시민은 이후 기자와 만나 "나는 더민주나 국민의당 둘 중 한 곳을 찍을 예정"이라며 "그런데 야당이 여당과 전혀 차별화가 없는데 누가 야당을 지지하겠나. 답답하다. 월급쟁이들이 불안해하지 않는 공약을 내주기를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서울시 은평구을 지역에 출마한 고연호 국민의당 후보가 7일 서울 은평구 구파발역 인근에서 시민들의 손을 잡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강병원으로 합친 김제남, 지역위원장 출신 고연호…표심의 향배는?

당초 이 지역에는 김제남 정의당 후보도 출마를 선언해 민심을 잡는데 애쓰고 있었다. 김 후보는 현직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환경운동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19대 국회에서 성실하고 인상적인 의정활동을 펼쳤지만 조직력과 인지도에서는 다소 열세에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에 김 후보는 이 후보를 잡기 위해 일찌감치 강 후보와 고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진통을 겪다 최근 강 후보와 단일화 경선에 합의했다.

경선은 휴대전화 안심번호 자동응답시스템(ARS) 전수조사 방식으로 실시하되 정당 지지세 보정을 위해 김 후보에게 득표수의 20% 가중치를 부여해 진행됐으며 그 결과 강 후보가 승리했다. 강 후보는 "야권 승리라는 대의를 위해 통 큰 결단을 내린 김 후보에게 고맙다"며 "더민주와 정의당이 힘을 합쳐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말했다.

은평을 유권자 30대 남성 최모 씨는 "나는 원래 정의당을 좋아한다. 이제는 인물을 보고 찍는 투표 대신 정당을 보고 찍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지지했던 김 후보가 나서지 않게 된 것은 아쉽지만 강 후보로 합쳐졌으니 강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의 단일화에 그쳐 '반쪽 단일화'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앞서가던 이 후보를 위협하는 구도가 형성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단일화는 선거 막판 판세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연호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더민주 전신) 소속으로 은평을 지역위원장 자리를 10년 넘게 지킨 인물이다. 그러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자 함께 당을 나와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는 오랫동안 지역민심을 다져온 것을 기반으로 '진실된 선거'를 치를 뜻을 내비치고 있다.

고 후보는 31일 불광역 사거리에서 포크레인에 올라 이색 선거운동을 펼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과거 고 후보가 타워크레인 등 건설장비 임대업 활동을 한 경험으로 직접 생각해 낸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독특한 퍼포먼스로 유권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 고 후보지만 이 후보가 앞서는 상황에다가 고 후보를 제외한 야권단일화가 이뤄져 쉽지만은 않은 게임이 예상된다.

한편 은평을에는 여기에 다른 군소정당 후보 2명(민주당 이강무·민중연합당 유지훈)과 무소속 후보(최병호) 1명도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정치신인들과 5선 의원의 대결로 '다윗과 골리앗'으로도 비유되는 은평을의 20대 총선 결과는 야권 단일화가 실제로 성사될 지 여부가 표심을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문대현 기자 (eggod6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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