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사고 경쟁하듯 달려간 원내 4당 '눈살'
<현장>현장 혼잡에 시민 추모객들 "이게 쇼장이지..."
한 당직자 기자들 취재경쟁에 "오는게 '민폐'였다"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정치인들 온다고 이래놓으면 어떡해. 쇼장같잖아"
"여기 기자들 너무 많아. 아직도 취재중이야..."
20대 국회 이틀째인 31일 오후 각 당은 앞다투어 안타까운 사고로 19세 청년이 목숨을 잃은 구의역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을 방문한 이들은 저마다 흰 장갑 낀 손에 흰 국화를 서울메트로에서 마련한 추모장소와 청년이 수리하다 변을 당한 강변역 방향 9-4번 스크린도어 앞에 헌화했다.
제일 먼저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노회찬·추혜선·윤소하 의원 함께 현장을 방문했다. 심 대표와 의원들은 9-4번 스크린도어 앞에서 무릎 꿇고 묵념한 후 추모객들이 남긴 포스트잇을 읽었다. 심 대표는 "결코 헛되지 않게... 당신앞에 다짐합니다 2016년 6월 정의당 대표 심상정"이라고 적었고 노회찬 원내대표는 "건우야 편히 쉬렴. 면목이 없다"고 적었다.
이어 서울메트로 관계자들에게 사고에 대한 보고를 받은 심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정의당은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계속 경고했고 특히 안전 관련해 법안을 추진했는데 안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소야대 국면이기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책임을 국회에서 법제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에 이어 현장을 찾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우원식·진선미 등 10여명의 더민주 의원들은 추모공간에 헌화후 곧장 역장실로 향했다. 이들 역시 서울메트로 안전관리본부장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쓴 소리를 쏟아냈다.
김 대표는 "지나치게 경비절감이란 측면만 고려하다보니 인명에 대한 문제를 고려치 않았다"고 지적했고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우리 을지로위원회가 19대때 법안을 내고 환노위에서 계속 논의했지만 상대방의 방해와 거부로 진전이 안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사고현장으로 이동한 더민주 의원들은 9-4번 스크린도어에서 다시 한 번 헌화하고 포스트잇에 추모글귀를 적어 붙였다. 김종인 대표는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라고 적었다.
이들은 현장에서 7분 정도 머물렀다. 그동안 열차는 두 번 플랫폼으로 들어왔고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의원들과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취재진 때문에 플랫폼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뒤늦게 이를 눈치 챈 당직자들이 길을 만들어 시민들을 유도했다.
더민주 다음은 국민의당 차례였다. 국민의당 의원들과 더민주 의원들은 구의역 4번 출구에서 조우하기도 했다. 두 당의 의원들은 서로 만나서 인사하기도, 다정하게 서서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의원들을 태우려는 '검은색 큰 차'들은 구의역 4번 출구 편도 2차로를 막아섰고, 극도의 교통혼잡을 야기했다. 꽉 막힌 도로탓에 운전자들은 차의 크락션을 신경질적으로 울려댔다. 한 운전자는 차 유리창을 열고 욕설을 내뱉었다.
경쟁하듯 현장 간 원내4당…현장 혼잡 야기
한 당직자 기자들 취재경쟁에 "오는게 '민폐'였다"
국민의당에서는 박지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권은희·이용호·장정숙·최경환·김광수·윤영일·김삼화·이동섭 의원이 현장을 찾았다. 국민의당은 더민주와 똑같은 순서로 구의역 현장들을 돌았다. 박 원내대표가 9-4번 스크린도어에서 묵념할 때 뒤쪽에선 고인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두 여학생이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여학생은 국민의당 일행이 빠지고 나서야 스크린도어 앞으로 다갔다. 한 여학생은 스크린도어에 다가가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자 국민의당 다음으로 방문이 예정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기다리던 카메라들이 그들에게 들이대졌다.
여학생들은 부담스러웠는지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우는데 찍으면 어떻해요 찍지마세요"라며 황급히 얼굴을 가리고 사라졌다. 역을 빠져나가면서 그들은 전화통화로 "구의역 왔어. 오빠 불쌍해... 여기 기자들 너무 많아. 아직도 취재중이야"라고 말했다.
가장 늦게 구의역을 방문한 정진석 원내대표는 현장부터 찾았다. 함께 온 의원들과 9-4번 스크린도어로 잰 걸음으로 이동한 그는 헌화하고 묵념했다. 이어 역장실로 이동, 앞서 방문한 3당 의원들이 받은 내용과 엇비슷한 보고를 받았다.
정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국민 생명안전에 관한 문제는 여야 없이 머리를 맞대고 필요한 법안있다면 성안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짧게 말했다. '예전에 제도권에서 이런 방지대책을 마련했다면 되는 것 아니었나',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침묵을 지켰다. 정 원내대표가 구의역을 빠져나갈때 몰린 인파 때문에 누군가 들고 있던 조화용 흰 국화들이 땅에 떨여져 목이 꺾였다.
이날 구의역을 방문한 원내4당은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야3당은 이날도 '19대때 법안만 통과됐어도...'라며 여당을 향한 비난을 이어갔고, 여당은 이에 대해 단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정 원내대표를 끝으로 정치 관계자들과 취재진들은 하나둘씩 구의역에서 사라졌다. 이날 의원을 수행한 한 당직자는 현장의 혼잡함을 보고 기자에게 "여기 오는게 민폐였다"고 말하며 쓴 입맛을 다셨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 A씨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정치인들 온다고 이래놓으면 어떡하냐. 쇼장같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시민 B씨는 "지금 화제가 되니까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왔으면 거기서 나아가서 뭔가 결과가 나와야한다"며 퇴근길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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