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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현대·기아차에 준 선물


입력 2016.06.04 08:00 수정 2016.06.04 12:31        박영국 기자

정부 2020년 신차비중 20%…현대차 2020 친환경차 전략 '찰떡궁합'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 관계부처 차관들이 3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정부의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위는 현대차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왼쪽)와 기아차 니로 하이브리드.ⓒ데일리안

2014년 11월. 현대차그룹은 2020년까지 친환경차를 22종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친환경차 중장기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1년여 뒤인 올해 1월과 3월 현대차와 기아차를 통해 친환경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과 니로를 각각 출시하며 중장기 전략의 이행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아이오닉과 니로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고연비를 앞세워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의 퇴장을 막는 디젤차였다.

2005년 정부가 디젤 승용차를 허용하고, 2009년부터는 ‘클린 디젤’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친환경차 혜택을 제공한 이후 급속도로 인기가 높아진 디젤차는 현대·기아차에게는 두고두고 골칫거리였다. 국내 시장에서 디젤차를 앞세운 독일 브랜드들이 전성기를 맞으며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현대·기아차도 부랴부랴 승용 라인업에 디젤엔진을 장착하기 시작했지만, 성능이나 연비, 정숙성 면에서 100년 전부터 디젤 엔진을 만든 독일 업체들을 단 몇 년 만에 따라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입차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 본사로부터 차량을 들여오거나 기술을 지원받는 한국지엠이나 르노삼성 같은 완성차 업체들보다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토요타를 제외하고는 다들 비슷하게 시작한 하이브리드카 쪽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수월할 터였다. 더구나 하이브리드카는 자동차 산업의 미래인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로 가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대중적으로 상용화된 친환경차이기에 디젤에 시간을 허비하느니 하이브리드에 집중하는 게 유리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과거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같은 가솔린차 기반의 하이브리드차를 친환경 라인업의 주력으로 밀 때도 이 분야 선두주자인 토요타에 대해 경쟁자가 아닌, 함께 시장을 키워나갈 ‘동반자’라는 인식을 보였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기아차의 안방인 한국 시장에서 디젤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며 하이브리드카가 치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으니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현대차그룹이 2014년 수립한 ‘친환경차 중장기 전략’에도 가장 걸림돌이 될 만한 게 디젤차였다. 친환경차를 20종을 만들건 30종을 만들건 시장에서 팔려야 할 텐데 소비자에게 아무 이질감 없는 디젤차가 친환경차 대접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는 상황에서는 곤란했다.

지난해 9월 폭스바겐·아우디의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태가 터졌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특정 업체의 부도덕한 행위로 논란의 범위가 한정됐고, 소비자가 모든 디젤차를 꺼려할 만큼의 이슈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2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6 부산국제모터쇼'프레스데이에서 기아자동차의 K7 하이브리드와 K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공개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현대·기아차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준 것은 다름 아닌 ‘미세먼지 파문’이었다. 근래 들어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져 논란이 일면서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이 문제시 됐고, 그동안 낮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가려져 있던 디젤엔진의 질소산화물 과다배출이 이슈화 된 것이다.

논란이 심화되자 경유세 인상이나 환경부담금 인상 등 디젤차 규제 방안이 언급되기 시작했고, 기존 디젤차 보유자들은 그동안 디젤차 구매를 장려해오다 태도를 바꾼 정부에 분노를 표했다. 새로 디젤차를 구매하려던 소비자들이 지갑 열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지난 3일 정부는 디젤차 보급을 억제하고 노후 디젤차는 조기 폐차를 유도하는 한편, 전기차 등 친환경차 보급을 장려하는 내용의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디젤차의 저공해차 지정을 위한 질소산화물 및 미세먼지 배출 기준을 휘발유·가스차 저공해차 수준으로 대폭 강화해 그동안 유로5와 유로6 디젤차에 적용됐던 환경개선부담금 면제, 혼잡통행료 50% 감면, 공영주차장 할인 등의 혜택을 사실상 폐지했다.

뜨거운 감자였던 경유값 인상은 이번 대책에서 제외됐지만 앞으로 검토키로 했다며 여지를 남겼다. 디젤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에게는 경유값 인상이 여전히 불안 요인으로 남은 것이다.

이정도 대책으로 당장 디젤차가 기피 대상이 되진 않겠지만, 기름값 때문에 디젤을 고려했던 소비자라면 하이브리드 쪽으로 선회할 여지가 높고, 이는 아이오닉과 니로 띄우기에 한창인 현대·기아차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정부는 또, 친환경차에 대해서는 보급을 적극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2020년까지 신차 판매의 30%(연간 48만대)를 친환경차로 대체하고 전기차 충전인프라도 주유소의 25% 수준인 3100기까지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10%에도 못 미치는 친환경차 비중을 당장 4년 뒤 30%까지 늘리려면 친환경차에 대한 각종 세금감면은 물론 대규모의 보조금 정책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만한 건 정부가 밝힌 친환경차 보급 확대 시점인 2020년이 현대·기아차가 2014년 내놓은 ‘친환경차 중장기 전략’ 이행이 완료되는 시점이라는 점이다.

특히, 현대·기아차 R&D(연구개발)를 이끌고 있는 권문식 부회장은 정부의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 발표 불과 이틀 전인 지난 1일 부산모터쇼 미디어 초청행사에서 2020년까지 갖추게 될 친환경차 숫자를 2014년 계획 대비 6종 늘린 28종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기존 보유한 12종 외에 앞으로 4년 내 쏟아져 나올 16종의 친환경차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려면 어느 정도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운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인프라도 구축해야 할 텐데, 정부가 같은 시기에 맞춰 다 알아서 해결해주겠다고 먼저 나선 모양새가 됐다.

여러 가지로 논란이 됐던 미세먼지가 결국 현대·기아차에게는 고마운 선물이 된 셈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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