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로 친박-비박 어울렸다 했더니...개헌토론회
적극적으로 개헌 주장한 이주영·나경원-침묵한 김무성
친박계와 비박계가 13일 너나할 것 없이 '개헌'을 외치고 나섰다. 19대 국회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가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개헌론이 달라진 정치환경 속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원내 2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에서는 계파를 불문하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새로운 권력구조를 향한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세계평화포럼 등 6개 사회단체가 연합해 만든 국가전략포럼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김무성·이주영·나경원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명진 경실련 공동대표 겸 갈릴리교회 원로목사는 주제발표를 통해 "1987년 정치체제의 핵심인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이것과 짝을 이루는 국회 양당체제는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은 우선 개헌에 매달려야 한다"고 즉각적인 개헌 논의를 주장했다.
인 목사는 “5년 대통령 단임제를 30년간 시행하여 6명의 대통령을 겪었지만 이 사람들 중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한 대통령이 없다. 아주 불행한 일이다"며 "5년 단임제가 권력의 속성인 레임덕, 국민의 눈치를 더 이상 볼 필요 없다는 막장심리로 인한 독주와 오만, 서둘러 치적쌓기에 급급한 정책, 퇴임 후를 대비한 대못박기 등 결국 대통령을 불행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4.13 총선을 통해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스스로 만들었다. 그 핵심은 양당 체제에 대한 심판, 즉 3당 체제의 출현"이라며 "국민들은 이미 30년간 유지해온 87년 정치체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투표로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다당제와 협치로의 개헌(분권으로의 개헌)이다. 이제 국회나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이 이미 결정한 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법제화'하는 일"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참석한 의원들은 이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친박계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과 비박계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인 목사의 말을 경청하며 중간중간 필기를 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20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앞으로 대선까지는 한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 시기에 개헌을 추진해서 신속하게 국민투표까지 한다면 개헌의 역사를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기대를 갖고 있다"면서도 "어느 정파에, 또는 어떤 특정 정치인의 권력적인 취향성을 갖고 하는 개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20분쯤 늦게 참석해 이 의원의 옆자리에 착석한 나경원 의원은 “우리 대한민국 헌법은 지금까지 거의 30년째 개정되고 있지 않다”며 “개헌문제는 정권 말기라서 또는 정권 초기라서 늘 미뤄졌다. 이제는 개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국회가 새로 시작했으니까 개헌 문제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불리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말이 없었다. 그는 지난 2014년 중국 방문에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가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뒤 "불찰이었다"며 사과했지만 여전히 개헌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전략포럼 회장인 김진현 전 과기처 장관은 김 전 대표가 최근 정진석 원내대표, 최경환 의원 등과의 '3자 회동'에서 혁신비대위원장 후보로 추천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취재진들 사이에서는 김 전 대표가 이날 개헌 토론회에 참석할 것인가가 화두였다. 그는 포럼이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내빈석이 모두 차 있는 상황에서 나 의원과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서로 본인의 자리를 김 전 대표에게 양보했지만 그는 손사레를 치며 뒷편에 마련된 관계자석에 앉았다.
사회자의 인사말 부탁에도 김 전 대표는 "열심히 듣겠다"고만 답했다. 또 질의응답 시간에 이 ·나 의원이 적극적으로 답변에 나선 반면 김 전 대표는 말을 아꼈다. 그러자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아무 말도 안하려고 뒷편에 앉은 것 아닌가"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토론회가 끝나고 기자들이 김 전 대표를 향해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꼽히는데..."라며 질문을 하려들자 그는 뛰어가면서까지 자리를 피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개헌의 방안으로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이 거론됐다. 현 정치 상황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개헌론이 싹틀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다. 과거 한나라당 시절 박근혜 대표처럼 유력한 대선 주자가 있는 경우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자는 개헌론이 힘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 여권에선 뚜렷한 대선 주자가 없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다만 당장 논의를 본격하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한편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내년이면 소위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된다"며 "개헌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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