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음주운전 신분 숨겼다가 '청문회 파행'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 "사고 당시 부끄러워 신분 안 밝혀"
밀양 송전탑·용산참사 해명…백남기 농민엔 "송구"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이 나와서 인사청문회가 필요한지 조차도 의문이 든다."
"인사청문회는 도덕성만 검증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19일 인사청문회에서는 이 후보자의 '음주운전 사고' 전력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 특혜 의혹, 시위현장 과잉진압 정황 등을 검증하는 질의가 잇따랐다. 특히 이 후보자가 '음주사고' 논란에 대해 "당시 너무 부끄러워서 신분을 밝히지 못했다"고 해명한 것을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며 파행 위기를 겪기도 했다. 2014년 강신명 경찰청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4시간 만에 끝난 반면 이 후보자의 청문회는 6시간을 넘겼다.
이날 국회 안행위가 실시한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5분 가량 일찍 도착한 이 후보자는 먼저 참석해있던 국민의당 의원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 받는 등 살가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안행위원들이 1993년 11월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 당시의 자료를 요구했지만 자료가 준비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이 후보자가 내놓은 설명은 인사청문회 전반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철성 '음주운전 전력' 논란에 파행 직전까지 간 청문회
그는 사고 당시 내부 징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사유에 대해 "조사받을 때 부끄러워서 신분을 밝히지 못해서 징계기록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징계를 피하기 위해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징계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너무 부끄러워서 경황이 없었다"며 "어떤 질책을 하더라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사과했다.
이 후보자는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이 "음주운전 사고 직후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직업에 대해 허위로 진술한 것이냐"고 묻자 "결론적으로 그렇다"고 답해 허위로 진술했음을 인정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가 청문회 '적격성'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며 정회를 요구했다.
안행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남춘 의원은 "경찰 총수가 되려는 사람이 '부끄러워서 신분을 속였다. 그래서 징계기록이 없다'고 청문회에서 말한 것 이 사실 하나만으로 추천할 수가 없다"며 "하도 충격적이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하다"고 했다. 국민의당 간사인 권은희 의원도 "징계사유가 발생했고 그 당시 징계를 받았어도 이 시점에서 다시 문제가 될 텐데 그 사실을 숨기고 징계받지 않은 채로 수십년 세월을 지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새누리당 소속 위원들은 정회에 반대하며 원만한 질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야당에 협조를 당부했다. 윤재옥 의원은 "이제까지 여러 청문회가 있었지만 흠결 사유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유 하나만으로 청문회를 중단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청문회 중단은 적절치 않고 조금 더 상세한 것은 청문회 과정에서 규명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장제원 의원 역시 "청문회에는 도덕성 검증만 있는 게 아니다"며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양 송전탑·용산참사·백남기 농민 사건에 조심스레 입장 밝혀
이 후보자는 밀양 송전탑 주민 자살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용산참사 등 경찰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에 대해서 조심스레 입장을 밝혔다. 진선미 더민주 의원이 밀양 송전탑 마을의 한 주민이 자살을 시도한 이유가 송전탑 때문이 아니라 부부간 갈등이라고 알려진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이 후보자는 "아드님과 그 사모님의 진술에는 송전탑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진술이 없었다"고 기존 경찰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다만 병원에 도착해서 형사가 물어보니 (가족들이) '송전탑도 문제가 있었다' 정도로 말한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에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한 이계삼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그렇지 않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밀양 송전탑 행정 대집행 당시 폭력 진압 논란에 대해 이 후보자가 "이분들이 사슬 투쟁을 했는데 그 안에 LPG가스와 휘발유가 있었다"며 "여기가 산악지역이라 저희는 위험 상황 발생을 방지하려 했다"고 해명한 데 대해서는 한옥순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회원도 "청장 후보자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다. 우리는 할 말이 더 많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백재현 더민주 의원이 "용산참사 진압 당시 이철성 내정자가 '전쟁이라면 마음껏 진압했을텐데'라는 발언을 했다"며 "납득이 안간다"고 꼬집자 이에 대해서는 "제가 기자 앞에서 그렇게 말을 했겠냐"고 해명했다. 이어 "그 당시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냐고 묻기에 시위대가 대비가 안 된 상태여서 (그렇게 말한 것)"라며 "대국민 상대로 경찰의 활동에 제한이 있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는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과 관련한 질의에는 "우선 경찰의 집회 시위와 관련해 농민이 쓰러져 계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몹시 송구스럽다"며 "강신명 경찰청장이 이 사건과 관련해 일단 고소고발된 민사소송 부분이 있어 그 부분에 대해선 사법적 판단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수사결과 경찰의 잘못된 부분이 밝혀진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책 관련 질의에 초점 맞춘 새누리당 의원들
야당 의원들은 음주운전 사고 관련 질의에 초점을 맞춘 반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가 순경에서부터 경찰청장 후보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평가하며 정책에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유민봉 새누리당 의원은 빅데이터 분석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을 범죄예방에 적용할 것을 제안했고 강석호 새누리당 의원은 도서벽지의 치안공백 보완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러한 정책 관련 질의에 대해 이 후보자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또 여당 의원들은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야당 의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홍철호 새누리당 의원은 "솔직하게 '내가 과거에 이런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밝힌 것은 말씀을 참 잘하셨다"며 "공직자가 당시 경황이 없었을만도 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도 이에 대해 "제가 음주운전을 하고 신분을 밝히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부끄럽게 생각하고 충분히 반성한다"며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신분을 밝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제 자신에 대한 처신을 바르게 하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장정숙 국민의당 의원은 질의 순서 전 요구한 음주운전 사고 당시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데 대해 "어떻게 이런 사태가 있을 수 있나. 자료를 달라고 한 지 몇 시간이 지났나"며 "국회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임명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아닌가"라고 따져 물은 뒤 장제원 의원을 향해 "장 의원도 자료를 요구하셨죠"라고 협조를 구했다. 그러자 장제원 의원은 "왜 저한테 그러세요"라고 대답해 경직돼 있던 장내에 웃음을 자아내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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