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재현이 영화 '나홀로 휴가'를 통해 장편 영화 감독에 데뷔했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40대 후반, 음료 회사 본부장 강재(박혁권)는 소문난 모범 가장이자 존경받는 직장 상사다. 취미는 홀로 사진찍기. 출사 여행을 다니며 취미 생활을 즐긴다.
겉보기엔 평범한 그에겐 비밀이 있다. 가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여자에 미쳐있는 것. 유부남인 그는 유부녀 시연(윤주)을 10년 동안 쫓으며 그녀의 주위를 맴돈다.
강재는 10년 전 요가학원에서 만난 요가 강사 시연에게 첫눈에 반했다. 유부남이라 고백도 못 하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동호회 사진전을 계기로 시연과 가까워진다.
이후 두 사람은 요가학원 회식에서 키스를 나누고, 하룻밤을 보내며 뜨겁게 사랑한다. 그러던 중 시연의 일방적인 결별 통보로 두 사람의 인연은 끝나는 듯했다. 적어도 시연이 생각하기엔.
긴 시간이 지나도 강재는 시연을 잊지 못한 채 그녀를 훔쳐본다. 시연이 어디에 갈 때마다 쫓아다니며 그녀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 무려 10년 동안, 그가 해온 일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시연을 훔쳐보던 어느 날, 시연이 며칠째 직장과 집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묘연한 행방에 불안해진 강재는 시연의 집을 찾아가고야 마는데...
조재현이 연출한 '나홀로 휴가'는 10년을 하루 같이 옛사랑을 쫓아온 한 남자의 지긋지긋한 사랑과 지고지순한 집착에 관한 스토킹 멜로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나홀로 휴가'는 10년을 하루 같이 옛사랑을 쫓아온 한 남자의 지긋지긋한 사랑과 지고지순한 집착에 관한 스토킹 멜로. 배우 조재현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첫 장편영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오늘-파노라마 부문'과 지난 4월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다. 평범한 유부남이 다른 여자에게 빠지는 이야기로, 남자가 상대 여자를 잊지 못해 10년 동안 훔쳐본다는 상상력을 넣었다. 인간의 욕망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점이 미덕이다.
영화는 강재가 시연의 집 장롱 안, 과거,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강재가 바람 핀 상대를 잊지 못하고 10년 동안 훔쳐보는 모습을 보노라면 '미쳤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지만 강재의 행동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느껴진다.
유부남 강재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특히 여성 관객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남편에게 "다시 만나도 나랑 결혼할 거야?"라고 물으며 눈물을 흘리는 아내, 그런 아내를 심드렁하게 보는 강재의 모습이 불편하다.
조재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집착하는 건 자기만의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극 중 강재가 10년 동안 한 여자를 훔쳐본 것도 자기만의 행복한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강재는 행복하지만 아내와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배우 박혁권은 조재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나홀로 휴가'에서 주인공 강재 역을 맡았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또 불륜이라는 소재를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건드린다. 강재의 친구 영찬(이준혁)은 '부부가 10년간 의무적으로 살고, 5년 단위 재계약 형식으로 결혼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재 부부의 사이도 좋지 않다.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대화만 이어질 뿐이다. 시연 부부도 마찬가지. 남편은 아내에게 욕을 하는 등 서로 존중하지 않는 모양새다. 결혼생활의 씁쓸하고, 잔인한 민낯을 부각한다는 점에서 신혼부부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겐 '비추'다.
강재의 불륜 이전에 강재와 아내와의 관계가 왜 소원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도 아쉽다. 장롱 안과 과거, 현재를 이어가는 전개도 관객들에겐 혼란스럽게 다가올 수 있겠다.
'펀치'(2014~2015)에서 조재현과 호흡한 박혁권이 주연으로 나섰다. 박혁권은 JTBC '밀회', SBS '육룡이 나르샤', 영화 '스물',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로 얼굴을 알렸다.
영화 '나홀로 휴가'로 장편 데뷔작을 선보인 조재현 감독은 "작가주의나 상업주의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었다"고 밝혔다.ⓒ(주)수현재엔터테인먼트
박혁권은 한 여자에 미친 남자의 심리를 소름 돋게 표현했다. 장롱 안에서 울부짖는 모습, 수위 높은 베드신 등 소화하기 어려운 장면들은 박혁권의 '미친 연기력'을 만나 실감 나게 펼쳐진다. '사람이 한 사람에게 저렇게나 미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캐릭터에 빠져든 모습이다. 후반부 윤주 집에서 나오는 장면과 차에서 고꾸라지는 장면에서 보여준 눈빛 연기는 압권.
박혁권은 "깜짝 놀랄 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미혼이라 남편의 기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찍었는데 촬영 후 이야기에 공감했고, 집착과 바람도 사랑인 걸 깨달았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연출 의도에 대해 조재현은 "내가 하고 싶고, 공감하는 이야기를 글보다는 영화로 풀어내고 싶었다"며 "예전에 한 감독님이 일본 소설 속 40대 남자 주인공 얘기를 떠올리며 영화를 시작했다. 남자 주인공이 퇴근 후 집에 가기 전 오피스텔에서 꼭 발을 씻었다는 얘기를 듣고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인 이야기,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영화에 넣었다"면서 "기존 상업영화, 작가주의 영화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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