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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웹툰 작가 "핵무기보다 무서운 만화 그려요"


입력 2016.09.18 05:39 수정 2016.09.18 13:45        박진여 기자

북 만화영화 산실 '4.26아동영화촬영소' 창작가 출신

"'로동심문', 남과 북, 70년차 이어주는 촉매제 됐으면"

평양 출신 최성국(36) 씨는 지난 5월부터 네이버 웹툰 ‘도전만화’ 코너를 거쳐 ‘베스트도전’ 코너를 통해 ‘탈북남의 열혈 남한 정착기-로동심문’을 연재하며 국내 첫 탈북민 웹툰 작가가 됐다. ⓒ데일리안

북 만화영화 산실 '4.26아동영화촬영소' 창작가, 한국서 웹툰 작가 되다
"'로동심문', 남과 북, 70년차 '미래'와 '과거' 이어주는 촉매제 됐으면"

70년 분단의 차이를 하루하루 에피소드로 담담하고 또 유쾌하게 그려내는 작가가 있다. 평양 출신 최성국(36) 씨는 지난 5월부터 네이버 웹툰 ‘도전만화’ 코너를 거쳐 ‘베스트도전’ 코너를 통해 ‘탈북남의 열혈 남한 정착기-로동심문’을 연재하며 국내 첫 탈북민 웹툰 작가가 됐다.

지난 2010년 탈북한 최 씨는 탈북민 최초 웹툰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만큼 그림실력이 수준급이다.

최 씨는 북한 만화영화의 산실 ‘조선 426아동영화촬영소’에서 일했던 수재로, ‘령리한 너구리’ 등 100편이 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당시 매달 고기와 흰쌀, 설탕 등을 배급 받는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같은 일을 하던 외국인의 보수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그길로 빠져나왔다.

이후 최 씨는 폐기된 컴퓨터를 재조립해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중국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들어 있던 한국 영상물을 CD로 복사해 팔아 돈을 벌었고, 이렇게 번 북한돈 200만원을 김정일에게 바쳐 북한 청년 최고의 상인 ‘김일성 청년영예상’도 받았다.

하지만 곧 한국영화 유포죄란 ‘중대혐의’로 체포돼 평양에서 추방되며 주요 감시대상이 됐다. 이때 친한 친구인줄 알았던 사람이 감시원이었음을 깨닫고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에 탈북을 결심했다.

탈북 7년차인 그가 그려내는 ‘로동심문’은 탈북민들이 남한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 용철은 국정원 조사 첫날 담당 직원에게 충성을 맹세하다가 당혹스러운 반응에 어리둥절하고, 친구로 지내자는 여성 직장 동료에게 목숨 바쳐 사랑하겠노라 청혼했지만 연락이 끊겨 우울하기만 하다.

‘로동심문’은 남한에서 ‘사람답게’ 살아가고픈 대한민국의 열혈남아 용철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용철은 작가 본인이자 한국에 입국한 3만 탈북민이기도 하다. 작품에서는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살아가던 방식대로 남한을 살아가며 알게 되는 남북 간 차이, 깨달음 등이 소소한 일상에 담겨 소개된다.

네이버 웹툰 '베스트도전' 코너 '로동심문' 캡처

네이버 웹툰 '베스트도전' 코너 '로동심문' 캡처

반응은 뜨겁다. 연재 4개월 만에 별점 9.91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매회 독자들의 댓글 참여도 활발하다. 댓글에는 ‘재밌다’는 호평과 함께 탈북민들에 대한 관심도 이어진다.

“탈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 알게 된다”(네이버 아이디 ‘are***), “‘쇼미더 충성심’이라니 빵 터진다. 한편으로는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사람들의 삶이 보여 마음 한켠이 무겁다”(bok***), “국정원에서 한 사람씩 독방 조사한다고 들었는데 갓 탈북한 분들이 압박감을 느낄 것 같다”(jus***), “웃고 싶은데 용철이 입장에서 생각하면 너무 진지해서 슬프기도 하다”(ang***)

하지만 댓글로 사상 검증을 당하기도 한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OOO’ 라고 소리 내 말해보라”는 댓글에 바로 다음 회 차를 통해 산에 올라 김 씨 부자를 향해 ‘OOO’ 라고 외치는 장면을 그려 넣었다.

최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로 이를 꼽았다. 그는 “이런 게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사상 검증을) 요구한 독자님이 이 내용을 보셨는지 다음 날 ‘이런 댓글을 달아 죄송하다’고 답글을 달아 주더라. 그 인품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최 씨가 ‘로동심문’을 연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9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최 씨는 독자들의 댓글을 보며 작품을 하는 이유가 확실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민 출신으로서 북한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을 갖고 작품에 임하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미지의 세계로 여겨지는 남북이 결국 같은 정서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며 분단 70년의 격차를 해소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작품을 통해 ‘사실 알고 보니 남과 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남과 북의 에피소드를 통해 서로를 연결해주고, 공감되게 해줄 수 있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과 돼버린 분단 70여년의 남북 격차를 해소하는 촉매제가 되고 싶습니다.”

그가 각종 방송 활동, 세미나 등에 활발히 참여하는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최 씨는 TV조선 ‘모란봉클럽’을 비롯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 방송 ‘몰랐수다 북한수다’ 등에서 북한의 실상을 전하고 있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쁘고,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여줄 때 남과 북이 서로를 알아갈 수 있고, 또 탈북민들의 남한 정착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웹툰 작가가 되기까지 어려움도 있었다. 문제는 웃음 코드였다.

그는 “북한에서 만화를 그린 만큼 한국에서도 만화영화를 해봐야겠다는 꿈을 품고 왔는데, 처음 3년 간 한국의 만화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충성심이나 애국심, 간첩 잡는 이야기도 없고, 쓸데없이 비행기만 날아가도 애들이 웃고 하는데 참 이상하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어려움은 남한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그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반응하는지 보고 소통을 위해 대세 TV 프로그램 등을 섭렵하다보니 사람들이 왜 웃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무엇보다 문화통일을 힘을 믿고 있다. 북한에서 한국 영상물이 담긴 ‘씨디알’(CD, DVD)을 판매하면서 이를 실감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은 총칼보다 한국드라마를 더 위험하게 생각한다”면서 “그 어떤 강요와 압박보다 새롭고 흥미롭게 보이고 들리는 것들로부터 인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문화만큼 광범위하게, 깊숙이 파고드는 것은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로동심문’이 핵무기보다 더 영향이 셀 수 있는데 (북에서)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아직 우둔한 것 같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의 앞으로 목표도 이와 맞닿아있다.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하듯 분단 70년의 남북 간 격차를 해소하고,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이끄는 촉매제 역할이 되고 싶은 게 그의 목표다.

“‘로동심문’을 그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남과 북을 연결해주고 서로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림, 가장 강력한 힘인 문화 콘텐츠를 통해 남과 북을 오가며 남북이 결국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며 통일이 되기까지, 통일이 되고나서도 남과 북을 이어주는 촉매제로 역할 하는 게 꿈이에요.”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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