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권력’ 한마디에 초토화 된 서울경찰청 국감
<안행위> 김정훈, '백남기 사태' 정부 비판 동의 뉘앙스 대답
여당 속기록 요구…청장 "질문 앞 부분 못들었다" 해명
“백남기 농민이 잘못된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됐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동의하십니까.”
4일 국회안전행정위원회의 서울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여야의 공방전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최근 사망한 백남기 농민과 관련해서다. 야당은 백 씨가 잘못된 권력에 의해 희생됐다고 주장했고, 김정훈 청장은 이에 동의하는 듯한 대답을 하면서 국감장은 한 때 고성으로 채워졌다.
이날 야당은 ‘백남기 사태’과 관련한 경찰 대응을 문제 삼았다. 안행위 야당 간사인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회 당일 백 씨에게 살수한 ‘충남 9호’ 살수차가 직사살수에 앞서 한 차례 4초간 경고살수했다는 경찰 측 발표에 반박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박 의원은 “충남9호 폐쇄회로(CC)TV를 보면 경고살수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며 “CCTV를 보면 물만 찔끔하고 마는데 저게 4초 간 바닥에 경고 살수한 것이냐. 시민들이 ‘시위대가 이제 물대포를 쏘는 구나’라고 인식해야 하는 데 저 상태로는 경고살수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진선미 의원은 백 씨의 수술을 집도한 백선하 교수가 사망 원인을 ‘병사’로 규정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진 의원은 “사건 당일 혜화경찰서장은 응급실 인턴밖에 없던 상황에서 서울대병원장에게 긴급히 협조 요청을 했고, 백 교수가 서울대병원으로 와서 백 씨의 수술을 집도하도록 했다”며 “병원에서는 뇌출혈이 심해 요양병원에 모셔야한다고 진단했다는 데 1시간 후 백 교수가 와서 수술을 집도했다. 짜고치는 고스톱,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 청장은 두 의원의 질문에 각각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당시 환자가 후송됐을 때 상황을 제가 정확하게 파악을 못 했기 때문에 파악해보고 보고하겠다”라고 답했다. 야당 위원들의 집중포화에도 조용히 자신의 질의순서를 기다리던 여당 위원들은 김영호 더민주 의원 질의 과정에서 ‘폭발’했다. 김 의원이 “백 씨가 잘못된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됐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청장은 동의하느냐”고 묻자 김 청장이 “네”라고 답하면서다.
여당 위원들은 김 의원의 질의가 끝난 후 의사진행발언을 신청, 김 청장을 향해 대답의 의미를 되물었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김 의원이 서울청장한테 잘못된 국가권력에 의해 (백 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거에 동의한다고 답변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김 청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청장은 “‘잘못된 국가권력’이라는 앞 부분은 못 들었다”고 해명했다. 박순자 새누리당 의원도 “지금 여기는 국감장이다. 위원들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는 정확히 듣고 답변을 정확히 해야할 것 아니냐”며 “김 의원이 그렇게 말했는데, 청장이 맞다고 하면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힐난했다.
여당 위원들은 김 의원과 김 청장 간 대화에 대한 속기록을 요구했다. 속기록에서 김 청장이 ‘잘못된 국가권력’에 동의한 뉘앙스가 담겨있자, 김 청장은 재빨리 “희생이 없어야 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국가 권력에 의해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청장의 답변이 끝나자 여야의 공방이 이어졌다. 황 의원이 “답변을 그대로 놔둔다면 굉장히 커다란 파장이 일어나는 답변”이라며 속기록 수정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진 의원은 “청장 답변의 취지가 불분명할 때는 여당 의원이 다시 질문해서 바로 잡으면 되는 데 질문 자체까지 바로 잡을 기회를 준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황 의원은 “이 정도는 양해해야지”라며 불쾌함을 표시했고, 이재정 더민주 의원이 나서 진 의원의 말에 힘을 보태자 여당 소속 유재중 안행위원장이 중재했다.
여야의 신경전은 서울경찰청의 자료 제출 여부로 옮겨 붙었다. 여당 간사 윤재옥 의원이 사인에 대해 김 청장에게 질의하자, 야당 위원들은 서울경찰청이 여당의 자료 제출 요구에는 순순히 응하면서, 야당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표창원 더민주 의원은 “윤 의원이 조금 전에 사용한 자료가 저희가 반복해서 자료 제출 요구를 했는데 대외비 보안사항이라 제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라며 “경찰이 여당은 대부분 (자료를) 다 주고, 야당이 요구하는 자료는 거의 다 안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안행위의 서울경찰청 국감은 앞서 서울시 국감으로 인해 당초 예정보다 2시간 여 지연 개의됐다. 안행위는 잠시 정회 후 추가질의 및 보충 질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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