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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를 배려하자고? 봉변이나 안당하면...


입력 2016.10.10 09:44 수정 2016.10.10 09:59        고수정 기자

국회서 출산 휴가 연장·부당해고 금지 등 법안 발의

제도보장 안되는 경우 다반사 “인식 개선이 우선”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오는 10일 임산부의 날을 앞두고 설치된 임산부 배려 캠페인 홍보 배너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1. 직장인 A(30)씨는 출산을 약 한 달 앞둔 지난 9월 상사에게 출산 휴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90일간 마땅히 보장돼야 할 휴가이지만, 상사는 A씨에게 “한 달만 쉬고 오라”고 말했다. 당황한 A씨는 상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만, 상사는 “불만이 있으면 나가라”며 윽박을 질렀다.

#2. 임산부 B(27)씨는 지난달 27일 임산부 배려 표식을 지닌 상태에서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았다. 노약자석은 ‘노인을 포함한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를 배려한 좌석’이다. 하지만 60대 노인이 다가와 “왜 젊은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느냐”며 B씨에게 화를 냈다. B씨는 자신이 임산부라는 사실을 밝혔다. 노인은 “임신이 맞는지 확인하자”며 임산부의 임부복을 걷어올리고, 심지어 “임신한 게 아니면서 그런 척 하는 사람들이 많다. 확인을 해야 한다”며 B씨의 배를 가격하기도 했다. 결국 이 노인은 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정부가 2005년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통해 저출산을 극복하고, 임산부를 배려·보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이날을 ‘임산부의 날’로 제정하며 다양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90일 간의 출산휴가와 1년간의 육아 휴직 등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

하지만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법으로 보장한 유급 휴가가 실제 현장에서는 무시되거나 복직의 어려움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실제 지난 2월 정부의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에서 20~40대 맞벌이 여성 84%가 출산 휴가를 낼 때 상사나 동료 눈치를 본다고 답했다. 육아휴직(여성 84% 응답)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대중교통의 ‘임산부 배려석’도 도입된 지 약 3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임산부들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실시한 ‘2016년 임산부 배려 인식도 설문조사’에서도 임산부 40.9%가 ‘배려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배려를 위해 개선돼야 할 제도에 대해서는 임산부 절반 이상(51.9%)이 육아 휴직제, 탄력근무제 등의 일가정 양립 제도 활성화를 꼽았다. 특히 임산부 배려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인식 교육’(41.2%)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답이 가장 많았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출산 휴가를 확대하고 임산부에 대한 부당 해고를 금지하는 법안 등이 20대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7월 25일 출산 휴가 기간을 현행 90일에서 120일로 확대하고 출산 및 육아휴직 기간과 휴가 종료 후 90일 이내에는 사용자의 임산부에 대한 해고 및 해고 예고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4건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회적 약자’인 임산부를 위한 전용주차구역을 신설해야 한다는 법안도 발의됐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순자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6월 1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임산부를 위한 전용주차구역의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임산부가 신청하는 경우 임산부전용주차구역 주차표지를 발급해 임산부의 이동편의를 증진하고 사회활동 참여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게 골자다. 해당 법안은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폐기된 바 있다. 이 외에도 앞선 국회에서 임산부의 권익 보호와 편의 증진 등을 위한 법안들이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오는 10일 임산부의 날을 앞두고 설치된 임산부 배려 캠페인 홍보 현수막이 설치된 부스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20대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들이 본회의 문턱을 넘는다하더라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도적 장치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임산부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러한 의견에 동감하고 있다.

손숙미 인구보건협회 회장은 8일 본보에 “출산은 국책사업이라고 할 정도로 정부는 물론 사람들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막상 임산부에 대한 배려 문화가 제대로 정착이 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임산부들이 나이가 어린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임산부 표식을 하고 있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임산부를 사회적으로 배려하는 문화 자체가 공조돼야 하는데 인식 개선이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임산부의 권익 보호를 위해 출산·육아 휴직과 관련한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손 회장은 “고용노동청이 임산부 한 사람 당 대체 인력의 60만 원을 지원하는데 이 비용만 가지고는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없으며, 특히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자리는 더더욱 어렵다”며 “정부가 대체근무자에 대한 인건비를 지금보다 더 충분히 지원한다면 임산부가 눈치 보지 않고 건강한 출산과 육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도 통화에서 “법으로 강제한다고 실효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임산부가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의료적 지원이나,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노동권·건강권이 보장되는 등의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출산 휴가 기간 등을 단순히 연장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보호되면서 일상에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며 “저출산 문제가 극복된 나라들은 ‘성평등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저출산 문제는 꼭 해결해야 되지만, 사회적 인식을 바꾸지 않고 무조건 ‘애를 많이 낳아라’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남성의 출산 휴가도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법상 남성 배우자의 출산 휴가는 5일, 유급 휴가는 3일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회사에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3년 1790명, 2014년 3421명, 2015년 4872명 등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남성이 전체 육아휴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5.6%로 여전히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8월 14일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를 위해 국가 재정 지원을 명확히 하고 휴가일수 확대 등을 담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고용보험법’,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출산 휴가일 총 5일(3일 유급)에서 6개월간 총 30일(전일 유급) 한도 확대 △배우자 출산 휴가로 인한 해고 및 불리한 처우 금지 △배우자 출산 휴가 급여에 대한 국가 지원(고용보험기금) 규정 마련 △취업규칙상 배우자출산휴가 필요기재사항 추가 등을 골자로 한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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