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이어 '거국내각'에도 '유보'만 외치는 제1야당
먼저 제안했다가 여당이 수용만 하면 뒷늦게 뒷걸음질 연속
"새누리 제안 무작정 거부하면 안돼...한치 앞도 못 내다보고 거국내각 소리 꺼냈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심각한 레임덕에 빠졌고 남은 임기동안 국정공백 현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여론의 시선은 국정운영의 한 축인 제1야당이 어떤 방식으로 꽉 막힌 정국에 돌파구를 열고 방향을 제시할지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먼저 제안한 방안에 여당이 수용만 하면 뒤늦게 '유보'를 외치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되풀이해 불안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가 3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함에 따라, 국회의 다음 목표는 △청와대와 내각의 전면적인 인적 쇄신 해법을 제시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을 이끄는 단계가 됐다. 현재 야권 대선주자들이 직접 나서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방안은 거국중립내각으로 전쟁 등 비상상황에서 특정 정당에 한정되지 않고, 여야가 합의한 총리와 국무위원들로 내각을 꾸리는 방식이다.
다만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 정국 위기에 대응하는 민주당이 책임 회피를 위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길 미루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중도층 민심 이탈을 우려해 하야·탄핵 촉구와는 완전히 거리를 두면서도 대권 주자들이 제안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선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지도부에선 오히려 부정적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 구성에 동참했다가 자칫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간 야권에선 여야 합의 하에 총리를 임명하는 등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대통령은 국정운영에서 손을 떼라는 주장을 여러 차례 제기해 왔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26일 "박 대통령은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하여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는 성명을 냈고,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도 27일 "여야가 합의해 새로 임명된 총리가 국정을 수습해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엔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도 한 목소리로 동참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30일 전격적으로 이를 수용하고, 박 대통령에 총리 후보를 추천하자 야당에선 ‘진상규명이 먼저’라며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국면전환용 꼼수로, 검토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잘라 버렸다. 더 나아가 영수회담 카드도 들고 나왔다. 문 전 대표와 김부겸 민주당 의원 등 대선 주자들도 일제히 성명을 내고 “새누리당이 총리 추천을 주도하면 안된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후보자로 거론된 당사자들에 대해선 한 마디의 평가도 덧붙이지 않았다.
이에 당내에서조차 지도부의 태도를 문제 삼는 지적들이 제기됐다. 이날 오전 열린 당 의원총회에선 “지도부가 유보만 한다”는 질타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가 더 이상 탄핵 여론에 귀를 막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고, 일각에선 새누리당의 거국내각 제안을 거부한 데 대한 불만도 나왔다. 특히 지도부가 새누리당의 제안을 무작정 거부했다며, 대통령의 권한 위임 방안 등을 고려한 대안도 함께 내놔야 한다는 주장도 거셌다.
특히 김종인 전 대표는 거국내각 구성 문제를 두고 야권 대선 주자들과 당 지도부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에 대해 “야당 대선 주자라는 사람들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거국내각 소리를 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감안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제 와서 (안 한다고) 말을 바꾸니 사드 배치 때와 똑같다”고 직격탄을 쐈다.
민주당은 앞서 사드(THH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정국에서도 찬성 또는 반대 당론을 정하지 않은 채 유보적 입장으로 일관한 바 있다. 안보 이슈에 대해 극단적 입장과 거리를 둠으로써 지지층 이탈을 피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었지만, 제1야당으로서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에 대해 명확한 입장조차 내놓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르기도 했다.
한편 새누리당이 차기 총리 후보자로 우선 추천한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아울러 야권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카드로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도 거론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고개를 내젓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새누리당에서 본인을 신임 총리후보로 거론한 데 대해 “거국내각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대통령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총리가 뭘 할 수 있느냐”며 “신임 총리는 헬렐레한 사람이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새누리당을 향해 “쓸데없는 걱정과 상상을 하지 말라.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할 리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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