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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담화, 최순실 관계만 인정…권력이양 등 빠져


입력 2016.11.04 15:02 수정 2016.11.04 15:40        고수정 기자

검찰조사-특검수사는 수용, 국정운영 로드맵 언급 없어

전문가들 "소통의 전제는 공감…내일 촛불집회 기름 붓는 격"


검찰조사-특검수사는 수용, 국정운영 로드맵 언급 없어
전문가들 "소통의 전제는 공감…내일 촛불집회 기름 붓는 격"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국정농단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최순실 씨와의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이번 사태의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사실상 언급을 피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달 25일 최 씨의 연설문 개입 의혹에 대한 입장 표명 이후 열흘 만에 또 다시 고개 숙인 것으로 9분가량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임 중 검찰 및 특검 수사를 받는 대통령이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이 모든 사태는 저의 잘못이고 제 불찰로 일어난 일이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다”며 “어느 누구라도 이번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저 역시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있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이며, 특검에 대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 밝혔다.

최 씨와의 관계도 인정했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해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다”며 “홀로 살면서 챙겨야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 씨로부터 도움 받게 됐고 왕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강조했다.

최 씨와 관련해 일각에서 제기된 사이비 종교 설(說), 청와대 굿판 설은 부인했다.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 아니다”라고 했다. 말을 떼면서부터 목소리가 얇게 떨렸던 박 대통령은 개인사를 언급한 이 부분에서 울먹임과 목멤이 심해지는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이 90초가량의 1차 대국민 담화보다 긴 시간을 들여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애썼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핵심’이 빠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미르·K스포츠 재단 개입 의혹에 대한 설명, 여야가 요구한 거국중립내각, 총리 권력이양 등 향후 국정 운영의 로드맵 등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박 대통령은 “자칫 저의 설명이 공정한 수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해 오늘 모든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뿐이며, 앞으로 기회가 될 때 밝힐 것”이라고 했지만, 극에 치달은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는 건 역부족이라는 비판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사과하고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핵심이 다 빠져있다”며 “민심이 어느 정도로 이반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지난번 담화와 별반 다른 게 없다. 오히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더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최 씨와 관련한 개인사만 인정하고,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국민과 야권에서 요구하는 ‘2선 후퇴’ 등 국정 운영 방향과 관련한 대통령의 의지 표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통의 전제는 공감”이라며 “국민이 공감을 못하는데 시민사회와 여야를 만나서 뭐하느냐, 이번이 국민이 준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걸 사실상 놓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본보에 “‘국정 공백은 안 되니 양해해 달라’는 박 대통령의 담화는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치며, 내일 촛불집회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며 “거국내각 또는 책임총리제, 새누리당과의 관계 등 국정 운영에 대한 향후 계획을 좀 더 명시적으로 밝혔어야 했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여야 합의 없이 국무총리를 지명한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하고 총리 인준을 요청했어야 했다”며 “각종 의혹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처럼 야권에서도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통령의 상황인식이 절망적”이라며 “‘최순실 게이트’를 그저 개인사로 변명했다”고 힐난했다. 박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참모진도 사태 수습을 위해 국회에 협조를 구했지만, 향후 국정 공백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오전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인 5%를 기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를 맞은 1997년 집권 5년차 4분기 대통령 직무 긍정률에서 6% 성적표를 받은 바 있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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