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플릿'에 출연한 유지태는 "밑바닥 인생 캐릭터에 끌려 출연했다"고 밝혔다.ⓒ나무엑터스
치명적인 '쓰랑꾼'(쓰레기+사랑꾼)이 밑바닥 인생 캐릭터로 돌아왔다.
배우 유지태(40)가 주연한 영화 '스플릿'(감독 최국희·9일 개봉)은 도박 볼링 세계에 뛰어든 밑바닥 인생들의 짜릿하고 유쾌한 한판 승부를 담았다. 스포츠영화가 주는 특유의 재미와 따뜻한 성장기가 적절하게 버무린 게 미덕이다.
유지태는 극 중 전직 볼링 국가대표 선수였으나 도박 볼링판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한 철종을 연기했다. 그간 진중한 역할을 주로 맡은 그는 "볼링이라는 소재가 독특했고, 캐릭터의 매력에 끌렸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영화 홍보 일정으로 바쁜 유지태를 4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영화를 잘 봤다는 말에 유지태는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이 웃다가 울다가 했으면 한다"며 "스포츠영화가 주는 짜릿한 스릴과 쾌감, 그리고 철종과 영훈의 브로맨스(남자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가 있는 영화"라고 '스플릿'을 소개했다.
1998년 영화 '바이준'으로 데뷔한 유지태는 '주유소 습격사건'(1999), '동감'(2000), '봄날은 간다'(2001), '올드보이'(2003), '야수'(2006), '비밀애'(2010), '힐러'(2014), '굿와이프'(2016)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유지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진지함'이다.
배우 유지태는 영화 '스플릿'에서 밑바닥 인생 캐릭터 철종을 연기했다.ⓒ오퍼스픽쳐스
올여름 개봉한 '굿와이프'에서 야망에 사로잡힌 쓰랑꾼 이태준 검사 역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스플릿'에서 무거운 옷을 벗어 던졌다. 호일 파마를 하고, 후줄근한 옷도 입었다. 밑바닥 캐릭터였지만 그래도 유지태는 멋있었다.
"호일 파마 외에 다른 스타일도 생각해서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호일 파마 반응이 좋더라고요. 하하.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스타일에 변화를 줬는데 반응이 좋아서 스태프분들이 제 머리를 따라 했답니다. 의상은 의상팀에게 맡겼는데 그것도 은근 잘 어울렸어요."
유지태는 "주로 진지한 연기를 해서 처음에는 망가지는 연기가 부담스럽기도 했다"며 "막상 촬영에 들어간 후에는 즐기면서, 놀면서 편하게 찍었다"고 말했다.
아내 김효진의 반응을 묻자 "재밌다고 했다"며 "각자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얘기 안 하는 편이다. 부부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고 미소 지었다.
캐릭터를 위해 4개월간 볼링 연습에 매진하기도 했다. 그는 "평균 180점까지 올렸다"며 "더 연습했다면 프로볼러에 도전했을 것"이라고 했다. 원래 운동 신경이 좋으냐고 묻자 "배우는 캐릭터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면서 "통장에 (출연료가) 입금되면 운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유지태는 배우, 연출,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2003년 단편 영화 '자전거 소년'을 통해 연출로 데뷔해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2005), '나도 모르게'(2008), '초대'(2009) 등 총 네편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마이 라띠마'(2013)를 내놓을 땐 제작사 유무비를 설립해 직접 영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 '스플릿'에 출연한 유지태는 "스포츠영화가 주는 쾌감과 배우들의 호흡이 빛나는 작품"이라고 전했다.ⓒ나무엑터스
감독과 배우를 오가는 그는 "감독들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이번 영화에서 최 감독의 조력자이자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최 감독을 믿었습니다. 박력도 있고, 저돌적이고, 스태프 구성을 잘했더라고요. 저는 현장에서 배우, 스태프들과 현명하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감독의 우군이 돼야 하니까요."
감독을 어떻게 도와줬냐고 물었더니 "술을 많이 샀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긴장을 풀려고 그랬단다.
만약 유지태가 '스플릿'을 만들었으면 어떤 영화가 탄생했을까. "이런 영화를 못 찍었을 거예요.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겁니다."
유지태에게는 몇몇 인생작이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 '동감', '올드보이', '굿와이프' 등이 그렇다. 그는 또 홍상수, 박찬욱 등 명감독과도 호흡했다. 유지태는 "좋은 배우와 감독님을 만난 건 행운"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벤 애플렉, 맷 데이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감독은 참 외로운데 독립영화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혼자 고립되지 않기 위해 스태프를 구성하고 일을 하는 편입니다. 물은 흘러야 하는데 모니터만 멀뚱멀뚱 쳐다보면 그렇게 안 됩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작품을 구상하죠."
어느덧 연기 경력 18년 차를 맞이한 그는 "후배들에게 잔소리하는 걸 싫어한다"며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연기가 좋아지는지 알고, 신인 배우를 발견하고 단련시키는 능력이 제게 있어요. 부담감 주지 않으면서 최고의 연기를 하게끔 하는 거죠. 유심히 보는 배우는 최우식, 이주승 배우입니다. 둘 다 연기를 꽤 잘해요. 특히 주승이는 '한국의 성룡'이 될 겁니다."
유지태 주연의 영화 '스플릿'(split)은 도박 볼링 세계에 뛰어든 밑바닥 인생들의 짜릿하고 유쾌한 한판 승부를 담았다.ⓒ오퍼스픽처스
유지태는 좋은 배우들로부터 연기 가치관을 고스란히 배웠다고 털어놨다. '굿와이프' 전도연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후배한테 좋은 가치관을 전수하는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굿와이프'를 통해 큰 호응을 얻은 그는 "영화가 '진짜'라고 생각하다가 드라마를 했는데 많은 걸 배웠다"며 "쪽대본을 통해 나오는 즉흥 연기와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 연기하는 희열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영화 제목인 '스플릿'은 첫 번째 투구에 쓰러지지 않은 핀들이 간격을 두고 남아 있는 것을 뜻한다. 스플릿이 나면 보통 큰 실수를 범했다고 한다. 배우는 2014년 주연한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의 실패를 빗대어 '스플릿'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영화는 투자 기간 4년, 제작비 100억에도 관객 5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개인적으로 성취감을 느낀 작품인데 결과가 참담했으니까 속이 상했어요. 당시가 제겐 '스플릿'이에요. '마이 라띠마'도 제15회 도빌 아시아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는데 국내에서는 관객들의 외면을 받아 안타까웠어요. 그러다 '굿와이프' 이태준으로 스트라이크를 쳤죠. '스플릿'으로는 더블 스트라이크 치려고요. '꾼'도 있으니까 더욱 기대돼요(웃음)."
배우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배우'라고 칭하며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인생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단다. 노력 중 하나가 시나리오 작업이다. 조선족 남자와 탈북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안까이' 시나리오 작업은 이미 마쳤다. '어두운 미래 또는 현실'을 다루는 디스토피아(dystopia)에도 관심이 있다고.
영화 '스플릿'에 출연한 유지태는 "남길 만한 영화와 인생작들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나무엑터스
유지태는 세 살 아들을 둔 아빠이기도 하다. 그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며 "일을 안 할 때는 아이와 놀아준다"고 했다. 아들이 아빠처럼 배우나 감독 되고 싶다고 하면 어떨까. "물론 찬성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창의적인 일인데 그런 일을 하는 게 좋잖아요.
아들이 선택한 감독과 배우라는 직업이 외롭지 않으냐고 하자 "모든 직업이 외롭다"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유지태는 최근 KBS2 '해피선데이-1박2일'에 출연해 의외의 예능감을 뽐내 화제가 됐다. 그는 "영화 홍보 필요성을 느껴 흔쾌히 출연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놀랐다"며 "영화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내 김효진과 함께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유지태는 다양한 NGO를 통해 기부·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로 유명하다. 인생 목표 중 하나가 사회복지사라고 밝힌 바 있는 그는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는 '선한 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니제르 아동들을 위한 학교 짓기 캠페인 '꿈꾸는 학교' 캠페인을 펼쳤다. "나중에 복지재단을 세울 꿈도 생각하고 있어요.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을 만든 일도 계획 중이고요."
영화 '스플릿'에 출연한 유지태는 "'천만 배우' 타이틀이 탐난다"고 전했다.ⓒ나무엑터스
인터뷰 말미 그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며 "남길 만한 영화, 인생작들을 만들고 싶다다"고 다짐했다. "몇몇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위상을 떨치고 있는 것처럼 한국영화계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필요해요. 공식화된 편견들이 깨졌으면 합니다."
행복한 가정과 일복을 누리는 유지태는 완벽한 삶을 사는 듯했다. 그는 순간 웃으며 "제가 완벽해요?"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작품 하나로 승률을 내야 하는 영화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중압감을 느낀다"며 "회사 직원들 생계는 대표 몫이다. 이런 걸 겪는 게 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스플릿'은 강동원 주연의 '가려진 시간'과 맞붙는다. 그는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이 탐난다"며 "프로배우는 타율이 높아야 하고, 길게 연기하려면 흥행 작품이 있어야 한다. 그간 열심히 노력했고, 참여한 작품 모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자신했다.
차기작은 '꾼'이다. 피해 금액 4조원, 피해자 3만명에 이르게 한 희대의 사기꾼을 잡기 위해 사기꾼과 검사가 함께 벌이는 범죄 사기극이다. 유지태는 희대의 사기꾼을 잡기 위한 계획에 황지성(현빈)을 끌어들이는 대검찰청 특수부 박희수 검사를 연기한다.
'스플릿', '굿와이프', '꾼'을 연달아 촬영한 탓에 1년째 잠을 못 자고 있단다. 인터뷰 이후 바로 링거를 맞고 '꾼' 촬영에 들어간다는 배우는 "가장의 책임감이죠"라며 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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