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지도부 압도하는 비박계 지지세 모으기
이정현 주재 3선 의원 간담회에 1명만 참석 '굴욕'
비박계 '임시지도부' 추진하며 친박 지도부 퇴진 압박
이정현 주재 3선 의원 간담회에 1명만 참석 '굴욕'
비박계 '임시지도부' 추진하며 친박 지도부 퇴진 압박
새누리당이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쪼개졌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 지도부 사퇴 압박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비박계가 주도하는 비상시국준비위원회가 김무성,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등 당내 대선주자들이 포함된 대표자회의 명단을 발표했다. 사실상 이정현 지도부에 맞서는 별도의 지도부를 출범시킨 것이다. 한 지붕 아래서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각각 회의를 주재하는 분열상을 보이는 가운데 현재로선 비주류의 세 결집이 우세한 양상이다.
현재 새누리당은 지도부 회의가 두 개로 나눠서 진행되고 있다.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투톱'이 현 정국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서다. 이 대표는 친박계와 함께 1월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정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사퇴를 전제로 하는 위기 수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들과 함께 '최고위원회의'를 꾸려나가고 있으며, 정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고 원내 지도부와 '원내대책회의'를 별도로 주재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며 최고위원회의 불참 의사를 밝힌 상태다.
따라서 이날도 이 대표와 정 원내대표는 저마다 다른 회의를 열며 국정 수습 대응책을 모색했다. 사실상 지도부의 분열상이다. 이 대표는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당 소속 3선 의원들과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지만 단 1명만 참석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퇴진 요구를 거둬달라고 요청하고 조기 전당대회 결정 배경 등을 설명할 계획이었다. 유일한 참석자인 안상수 의원도 사실상 간담회가 무산되자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강석호·권성동·김성태·김영우·김학용·이종구·황영철 의원 등 비박계 핵심 의원 대부분이 불참을 선언했다.
윤상현·조원진 의원 등 친박계 3선들마저 불참했다. 전날(14일) 초선 의원 및 재선 의원 그룹과 있었던 연쇄 면담에서는 10명 이상의 의원들이 참석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당시 면담에 참석한 한 의원은 "이 대표의 조기전대론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좀 미흡하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국민들이 보는 눈높이하고는 좀 다르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재선 면담에 참석했던 한 의원 역시 "지혜를 모으자는 총론에는 공감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이 방안, 저 방안에 대해서 합의하거나 논의한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가 주재하는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조기 전대를 놓고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가 충돌했다. 박명재 사무총장은 정 원내대표에게 "조기 전대를 통해 당을 수습해야 한다"고 말하자 정 원내대표는 격분하면서 "(원내대책회의) 멤버가 아니면 오지 말라"고 공박하는 등 언쟁을 주고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사무총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사퇴 시점을 12월 20일께로 못 박았으니 최고위원회의에 나오라고 (정 원내대표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 원내대표는 "고려해보겠다. 다만 내가 가서 봉합이 되면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고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주류인 친박계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조기 전대'라는 로드맵을 내놓은 상황이지만 소속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이같은 사안이 관철되기 위해서는 전국위원회, 상임전국위 등을 거쳐 의결돼야 하지만 발표 당일부터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비박계 항의에 맞닥뜨렸다. 일부 정치권은 지도부가 버티고는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탈당, 2선 후퇴, 거국중립내각, 하야, 탄핵 등)가 윤곽을 드러내면 이후에는 급격히 무너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박근혜라는 거대한 구심점이 사라지면 핵심 주류들은 물론 다리만 걸치고 있던 30~40명의 중도형 친박계도 모조리 무너진다"며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친박계가 쉽사리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이라는 국민적 시선에 부담을 느껴 세 규합에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당헌당규상 지도부를 강제로 퇴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1월 조기 전대까지 버틴다면 세를 결집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본보에 "아직까지는 친박계가 원내 최대 세력인 만큼 전대에서 TK(대구·경북) 지역 등 전통적 지지층이 결집한다면 당권을 그대로 유지해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장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원외당협위원장 25명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지도부의 퇴진을 말하기보다는 단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비박계는 친박계 지도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독자적 지도부를 출범시켰다. 대선주자들이 대표자로 나선 '따로 살림'을 꾸려 이 대표의 사퇴를 관철하고 재창당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당내 비주류 의원을 비롯해 원외 인사 등 약 100여명이 모여 구성된 비상시국준비위는 이날 오전 회의를 열고 지도부 격인 대표자 회의 구성을 완료했다. 대표자 회의에는 대선주자인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을 비롯해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대선주자들이 전부 포함됐다. 이밖에 강석호·김재경·나경원·심재철·정병국·주호영 의원 등 중진의원들까지 12명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로드맵은 이 대표가 사퇴하면 꾸려질 비상대책위원회가 당헌·당규에 따라 전당대회나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당 해산을 의결하는 것이다. 이후 재창당하는 과정에서 친박계가 떨어져 나가고 비주류가 신당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구상이다. 이들은 16일 오후 2시 대표자·실무 연석회의를 갖고 △조기 전당대회 개최 관련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한 입장 △국정안정을 위한 수습 방안 △보수혁신 정당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구상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후 오는 18일 의원총회와 비상시국 총회를 차례대로 열고 관련 안을 추인받을 계획이다.
비주류의 다른 한편에서는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투쟁 중인 원외당협위원장들이 이날 대표와 3선 의원 면담 시간에 나타나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사분오열된 당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김상민 전 의원은 "대표님께서 계속 당원들이 뽑은 당 대표라고 하는데 지금 이 시기에 대표가 생각하기에 당원들의 신뢰와 국민들의 신뢰가 정말 괜찮겠냐"라고 몰아붙였다.
당내 비주류 의원들은 향후 정 원내대표와는 손을 잡고 대책을 논의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규합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대표가 소집한 선수별 면담에 참석하지 않았던 비주류 3선 의원들은 14일 정 원내대표가 주재한 3선 의원 오찬 회동에 12명이 참석했다. 권성동 의원은 이날 열린 정 원내대표 주재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뒤 "당 지도부를 지도부로 인정하지 않기로 선언한 마당에 당대표가 주최하는 간담회에 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해 안 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주류는 기존 비박계에 최근 탈박 세력까지 가세해 행동반경이 전보다 넓어진 형세다. 이들의 선택지는 버티거나 당을 떠나는 것이다. 내부에서도 '당 해체론'과 관련해 당명은 교체하되 일부 강성 친박만 축출하면 된다는 온건파가 있는가하면 강성 친박의 축출은 물론 박 대통령의 탈당과 하야까지 주장하는 강경파가 존재한다. 탈당 및 분당시 야권의 합리적 중도진보세력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인식도 깔려 있어 여권발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분당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비박계 의원 측 관계자는 "친박 지도부가 퇴진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앞장서서 탈당하는 결기를 보여줘야 하는데 답답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다만 대국민호소력 측면에서는 친박계나 비박계 모두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정당지지율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7~10일 전국의 성인 25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4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전주보다 2.2%p 떨어진 19.2%를 기록, 해당 업체의 조사로는 역대 최저치로 하락했다. 특히 전통적 텃밭인 TK에서도 지지율이 24.9%까지 떨어졌다. 이 업체 조사로는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25.5%)에 뒤처진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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