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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외치는 야권과 비박, '언더독' 임계점 넘을까 '조심'


입력 2016.11.26 10:18 수정 2016.11.26 11:14        문대현 기자

12년 전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풍' 재연 경계

민심의 방향과 강도가 달라 임계점 쉬 넘지 않을 전망

박근혜 대통령 탄핵 얘기가 전 국민들 사이에 회자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는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탄핵안이 발의될 때만해도 민심은 노 대통령에 불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180도 달라져 노 대통령을 감싸고 나섰다. 일종의 '언더독 효과 (Underdog effect)'가 나타난 것이었다. 최근 박 대통령의 탄핵을 몰아붙이고 있는 야권과 여권 내 비주류 역시 12년 전 경험을 염두에 두고 그 전철을 피해가려고 애쓰고 있다.

과거 노 전 대통령 탄핵 시도 때와 지금 상황을 비교하면 공통점과 차이점이 공존한다. 국회가 '여소야대'인 점과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탄핵에 불을 붙인 사안의 성격이 다르며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의 태도도 다르다.

지난 2004년 3월 27일 오후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무효범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마지막 탄핵무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언더독 효과' 확인됐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4년 2월 24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이 열렸다. 노 대통령에게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몇 석을 차지하겠느냐'는 질문이 갔다. 그 때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정말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답했다.

당시 국회는 지금처럼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과 노 대통령의 친정격인 새천년민주당이 야권을 형성했고, 새천년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온 열린우리당에 노 대통령이 소속되면서 여당 구실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야권은 '공무원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면서 탄핵을 추진했다. 새천년민주당 탄핵을 적극적으로 주도했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힘을 보탰다. 국민 여론도 노 대통령에 비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정동영·유시민 등이 속해 있던 열린우리당은 탄핵을 결사 반대했다. 2004년 3월 12일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 간 물리적 충돌은 극에 달했다. 유시민 의원은 야당 의원들 틈바구니 속에서 "이러면 안 됩니다. 안 돼요"라고 울부짖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총동원돼 탄핵안 본회의 상정을 저지하려 했으나 두 야당의 공조 하에 강행된 기습 처리를 막지는 못했다.

결국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 등 157명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은 2004년3월 재적의원 271명 중 193명이 찬성해 의결정족수인 3분의 2를 넘겨 가결됐다. 그로 인해 노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이 정지돼 직무에 임할 수 없게 됐고 당시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국민들은 '날치기'로 탄핵안을 통과시킨 거대 야당에 분노했고 노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이 잘못한 건 맞지만 탄핵감까지는 아니라는 인식이 공감을 얻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왜 국회의원 마음대로 끌어내리냐"며 야당에 대한 분노가 거세졌다. 한나라당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경북에서조차 탄핵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른바 '탄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분노한 국민은 전국 곳곳 거리로 쏟아져 나와 노 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갖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렸던 노 대통령은 거짓말처럼 부활했고 같은 해 4월 15일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대승을 거뒀다. 열린우리당은 129석을 차지해 100석의 한나라당을 제치고 사상 최초로 진보 성향 정당이 국회 과반수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헌재는 같은 해 5월 탄핵심판 결과로 '기각' 결정을 내렸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즉각 직무에 복귀했다.

이후 정치권에선 민심이 약자를 응원하게 되는 '언더독 효과'의 대표적 사례로 노 대통령 탄핵사건을 들고 있다. 거야의 일방적 공세로 노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고 애처로운 광경이 연출되자 약자에 대한 동정 여론이 '탄핵 역풍'을 형성했던 것이다.

지난 2004년 5월 14일 오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국회에서 탄핵심판결과에 따른 한나라당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데일리안

2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황영철 의원이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탄핵과 관련한 모든 절차를 위임 하는 것과 관련해 이의 제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 현대자동차 납품 회사인 케이디코퍼레이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 롯데그룹, 포스코, KT 등에 직권을 남용해 출연, 납품, 기업 인수, 광고 수주 등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탄핵안에는 직무상 비밀누설, 제3자 뇌물죄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을 향한 국민들의 비판 여론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26일 전국에서는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일제히 열린다. 전국농민회총연맹는 트랙터·화물차를 이끌고 상경해 청와대 진입을 시도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지금 탄핵 찬성 여론이 거세면 거셌지 결코 약하다고 볼 수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도 정상적으로 주재하지 못하고 있어 공무원 조직은 사실상 와해되고 있다는 평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당을 중심으로 탄핵 전이라도 대통령이 총리에게 통치권을 위임하고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야당 뿐 아니라 여당도 마찬가지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 의원들은 야당 못지 않게 박 대통령을 몰아세우고 있다. 대표적 소장파인 남경필 경기도 지사와 김용태 의원은 탈당했고 원외 당협위원장들까지 줄줄이 당을 나갔다. 오래도록 이어져왔던 친박계와 비박계의 '불편한 동거'가 조만간 종지부를 찍을 정도로 여당은 난파선이 돼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어떻게든 자당 소속 대통령을 지키려했던 열린우리당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1년 조금 더 남았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 당시 임기를 1년 조금 넘긴 시점이었다. 이 점도 여론의 향배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는 '아직 제대로 국정을 수행해보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반면 박 대통령의 경우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 정권을 향한 국민적 비난 여론이 극에 달해 있어 탄핵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별 물리적 충돌 없이 표결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12년 전 여당 의원들이 탄핵안 상정을 육탄 방어하며 울부짖던 모습은 재연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관건은 언더독이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를 예단하기를 아직 이르다. 노 대통령을 살렸던 '언더독 효과'는 탄핵 정국 어느 시점에서든 점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12년 전 상황과 지금을 동일시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잠시 지지를 철회하고 무당층에 머물고 있는 박 대통령 지지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순실 사태 이후 줄곧 비주류 입장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5일 의원총회에서 '12월 9일까지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하겠다'는 야3당 방침에 돌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비주류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자 정 원내대표는 "탄핵에 따른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지 제가 탄핵을 반대한다거나, 탄핵을 회피한다거나, 탄핵을 지연시킨다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한 발 물러났다. 그가 갑자기 탄핵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만약 헌재에서 탄핵안이 기각돼 역풍이 몰아칠 때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라는 해석도 있다.

야권은 현재 탄핵에 대한 공세 수위를 최고조로 높이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 탄핵 사유에 개성공단 폐쇄와 세월호 참사 대처 미흡 등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 공소장에 있지 않은 사안을 무작정 탄핵안에 포함시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기류도 야권 일각에선 감지되고 있다.

야권이 처음부터 탄핵 카드를 쉽게 꺼낸 것은 아니다. 카드를 너무 일찍 끄집어냈다가 행여 역풍을 맡게 될 경우 내년 대선에까지 악영향이 미칠 것이란 생각에서 신중한 행보를 해왔다. 여건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역풍 가능성은 12년 전에 비해 훨씬 적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탄핵안 발의와 통과는 정치권 역할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성패 변수는 국민 여론이라는 점이 탄핵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관측이다.

문대현 기자 (eggod6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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