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KA 모스크바의 이고르 아킨페프가 유럽 챔피언스리그 43경기 연속 ‘골맛’을 보는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나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도 이루지 못한 진기록이다. 다만 문제는 그가 공격수가 아닌 골키퍼라는 사실이다.
아킨페프는 8일(이하 한국시각) 열린 토트넘과의 ‘2016-17 UEFA 챔피언스리그’ E조 최종전에서 1-0으로 앞선 전반 37분 델레 알리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43경기 연속 실점을 기록했다. 또한 이날 실점으로 그는 자신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세운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했다.
아킨페프가 이날만 무려 3골을 허용하며 1-3으로 패한 모스크바는 최하위로 처지며 3위까지 주어지는 유로파리그 티켓마저 좌절됐다.
2003년부터 CSKA 1군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아킨페프는 2006-07시즌 포르투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총 11시즌에 걸쳐 챔피언스리그에서만 총 84골을 내줬다. 특히 그는 2006년 11월 아스날과의 조별리그 경기를 끝으로 한 번도 클린시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물론 무실점은 골키퍼만 혼자 잘한다고 이룰 수 있는 기록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킨페프가 실력이 없는 골키퍼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한때 세계 최고의 골키퍼 유망주로 손꼽히던 선수였다.
아킨페프가 처음 CSKA 모스크바 1군 팀으로 선발될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7세에 불과했다. 특히 그는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하면서 같은 해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비록 이후에는 기대만큼 빅클럽의 선수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CSKA의 간판스타이자 주장으로서 수차례의 자국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러시아 국가대표로 월드컵 무대까지 밟으며 명실상부한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킨페프의 이미지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판단착오로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실점을 허용하는 골키퍼의 이미지가 유독 강하다.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이근호의 약한 슈팅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공을 뒤로 빠뜨려서 실점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근호의 득점으로 인정되긴 했으나 사실상 아킨페프의 자책골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장면은 ESPN이 선정한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악의 실수 중 한 장면으로 꼽히기도 했다.
아킨페프와 한국 선수의 악연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 9월 28일 러시아 모스크바 힘키 아레나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손흥민의 슛을 막지 못하고 실점을 내줬다. 하필이면 이번에도 공이 아킨페프의 몸을 맞고 골문 안으로 데굴데굴 굴러 들어갔다.
지난 8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도 아킨페프의 수난은 계속됐다. 43경기 연속 실점 기록경신에 이어 본인의 자책골까지 추가하며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후반 33분 알리가 케인의 크로스를 헤딩슈팅으로 연결한 것을 처음에는 몸을 날려 막았으나 공이 자신의 발에 맞고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며 오히려 아킨페프의 자책골이 되고 말았다. 이는 아킨페프의 축구인생에 또 하나의 흑역사로 남을 만한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UCL에서 모스크바의 부진은 아킨페프보다는 전반적인 수비불안의 영향이 더 크다. 하지만 아킨페프 역시 중요한 경기마다 유독 아크로바틱한 실점을 허용하는 장면이 워낙 강해 두고두고 ‘기름손’이라는 놀림감이 되고 있다. 어쩌면 그는 재능에 비해 가장 불운한 골키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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