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상해' 방성윤, 씁쓸한 반면교사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입력 2016.12.10 08:32  수정 2016.12.10 08:38

선수 생활 내내 잔부상에 시달리며 돌연 은퇴

유니폼 벗은 뒤에는 각종 구설에 시달리며 실형

상해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방성윤. ⓒ 연합뉴스

농구 국가 대표 출신 방성윤(34)이 폭행 혐의로 결국 실형을 살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8부는 지난 8일 집단 흉기 상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방성윤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방성윤은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구선수 시절 방성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팬들에게는 씁쓸한 장면이다. 방성윤은 2000년대 중반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재능으로 주목받았다.

대학생 신분인 연세대 시절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고 병역혜택을 받았고, 2005년 프로농구에 진출해 서울 SK 나이츠의 간판스타로 수년간 활약했다. 방성윤은 한국 선수로는 드물게 NBA 진출을 목표로 미국 무대에 도전해 D-리그에서 두 번이나 활약하기도 했다.

방성윤은 SK에서 뛴 총 6시즌 동안 평균 17.5점 4.2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국내 선수 득점 1위와 전체 3점 슛 성공 1위에 오른 적도 여러 차례다. 통산 433개의 3점 슛을 성공하며 토종슈터 중에서는 당대 최고의 득점원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전성기가 오래가지 못했다. SK 유니폼을 입고 뛴 6시즌 방성윤이 출전한 경기수는 고작 165경기에 불과하다. 풀타임(정규리그 54경기)은 고사하고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한 시즌이 바로 프로 데뷔 첫해인 2007~2008시즌의 37경기에 불과하다.

SK도 방성윤이 팀의 주축이던 시절 화려한 선수구성에도 번번이 6강 플레이오프에서 낙마하며 방성윤은 진짜 영양가에 비하여 과대포장된 선수라는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방성윤은 이후 FA로 타 구단 이적을 시도했으나 거듭된 부상으로 주가가 급락하며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SK와 재계약을 맺었지만 결국 1년만인 2010-11시즌을 끝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반복되는 부상과 재활, 풀리지 않는 커리어에 대한 심적 부담으로 농구에 대한 열정과 목표의식을 상실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시 방성윤의 나이는 보통 선수들이라면 한창 전성기를 보내야 할 만 29세에 불과했다.

농구계에서는 아직 젊은 방성윤이 1~2년 이내에 마음을 돌려 복귀하지 않을까하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방성윤은 농구계와 인연을 거의 끊고 자취를 감췄다. 시간이 흘러 방성윤의 이름이 오랜만에 화제에 올랐던 것은 지난 2014년 벌어진 불미스러운 폭행 사태였다.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방성윤은 지난 2012년 2월부터 7월까지 서울 소재의 사무실에서 이씨와 함께 피해자 A씨를 골프채나 하키채 등으로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피해자가 약속한 사무실 이전비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추가로 또 다른 피해자로부터 사기와 금품갈취 혐의도 받고 있다.

방성윤은 재판이 진행 중이던 올해 4월 뜬금없는 프로농구계 복귀설이 거론되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진 팬들의 여론은 싸늘했다. 방성윤의 전 소속팀이었던 SK도 “그의 복귀는 제의받은 적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실형이 확정된 방성윤은 이제 한국농구에 언급하기 어려운 흑역사로 남게 됐다.

한때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유명인이,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범죄자로 전락해버린 씁쓸한 결말이다. 그 어떤 재능도 올바른 인성과 자기관리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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