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누가 '촛불민심' 악용해 무덤 속에서 '회생' 노리나


입력 2016.12.19 15:01 수정 2016.12.19 15:06        이슬기 기자

"박근혜 퇴진"구호 끝자락마다 "이석기·한상균 석방" 외쳐

시민들 황당·눈살… "순수한 촛불 악용치 말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 후 첫 촛불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박근혜 즉각 퇴진 7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
회사원 현모 씨(30)는 지난 주말 광화문 촛불집회를 생각하면 아직도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다. 일부 단체들이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일반 시민들과 작은 충돌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현 씨는 "박근혜 퇴진과 이석기 구속은 다른 문제 아닌가"라며 "촛불집회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일행과 옛 통합진보당 측 인사들이 마치 한 무리인 것처럼 뒤섞이는 것을 우려한 다수 시민들이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에 힘을 보태기 위해 남자친구와 광화문을 찾은지 이번이 세 번째지만, 현 씨는 이날 사건을 계기로 다음 집회에 참석할지 여부조차 고민 중이다.


#2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김모 씨(31)가 플래카드를 발견한 건 지난 16일경이다. 퇴근길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던 그는 이석기 전 의원과 한상균 위원장의 사진 아래 '억울한 희생양'이라는 내용이 담긴 대형 플래카드를 목격했다. 이 현수막에는 '그들이 돌아와야 민주주의'라는 내용도 담겼다. 또 민중연합당을 비롯한 야3당의 공동주최로 역 주변 중심상가에서 촛불집회를 연다는 현수막도 내걸렸다. 이미 광화문 촛불집회에도 참석했던 김 씨는 "특정 정치 단체의 자유발언이 너무 많던데, 이러면 집회의 동력이 떨어진다"면서 "시민들이 시작한 촛불집회에 야당이 숟가락을 얹고서는 정치색까지 드러내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경기도 군포시 한 아파트 단지에 이석기 전 진보당 의원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박근혜 정부의 억울한 희생양'으로 규정하며 석방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데일리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 후 첫 촛불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박근혜 즉각 퇴진 7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간 한 목소리로 촛불을 들던 거리집회에 '다른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8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7일 광화문 광장에는 민주노총과 민중연합당, '이석기 구명위원회' 등에 소속된 인사들이 참석, 헌재 판결에 의해 해산된 옛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촛불 대열에 합류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2015년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9년·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며, 한 위원장은 같은 해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폭력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수감된 인물이다.

이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시민들의 구호 끝자락마다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연달아 외쳤다. 또 "한상균 위원장과 이석기 의원은 독재의 마녀사냥에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이라며 "이들이 돌아와야 참다운 인권과 정의, 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옆 사람을 쳐다보며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일부는 "그만하고 내려오라"며 제지하기도 했다.

특히 이날 한 남성이 '이석기 석방'이라는 내용이 적힌 대형풍선과 바람인형 등을 설치하려 하자, 집회에 참석한 또 다른 시민은 "여긴 박근혜 퇴진 집회이지 정치색 드러내는 곳이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양측 간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순수한 의도로 모인 자리인데 '이석기 석방하라'는 너무하지 않느냐. 집회를 자꾸 변질시키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표했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이 전 의원의 대형 사진과 ‘박근혜 최대 정치보복 희생양’이라는 피켓을 든 시위대는 광화문 광장 내 세월호 농성장 부근에서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의원은 민주 투사이자 억울한 희생양으로, 한 위원장은 영웅으로, 통합진보당에 위헌정당 판결을 내린 헌재는 불법 집단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이에 앞서 지난 7차 촛불집회 당시 ‘이석기 한상균 석방’이라는 구호들이 본격적으로 뒤섞이면서, 시위 이후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홈페이지에는 항의 글이 빗발치기도 했다. 실제 자유발언대와 한줄의견 게시판에는 “순수한 촛불을 이용하지 말라”, “촛불집회의 본질은 박근혜 퇴진”, “촛불민심으로 물타기 하지 말라”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또 주최 측이 집회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특정 정치 단체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충고도 여러 차례 나왔다.

다만 주최 측은 아직까지 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12일 서울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박근혜를 즉각 구속하라! 한상균을 즉시 석방하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주최하는 등 ‘대통령 퇴진’이라는 본질을 흐리지 말라는 다수 시민들의 요구와 다소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특정 정치색을 드러낼수록 순수했던 촛불집회의 동력도 흐려지고 특정 이데올로기 집단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면서 “탄핵 절차를 지켜보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이번 집회도 다수 시민들에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구호 아래 준법 집회가 이뤄졌기 때문에 힘을 얻은 것이지, 이게 이념적·폭력적으로 굴러가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이슬기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