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펴는 '김종인표' 제3지대… 태풍 될까
탈당설 수면 위로...정당 없이 영향력 행사할지는 미지수
탄핵정국 속 대세론 구축 중인 민주당도 만만찮은 변수
2017년 대선 판의 '태풍'을 노리는 '정치 9단'의 노회한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바빠졌다. 설 연휴를 전후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등을 연달아 만나는가 하면, 같은 당 안희정 충남지사에겐 탈당까지 권유하며 '제3지대' 주도권을 잡기 위한 거침없는 행보가 한창이다.
하지만 본인의 탈당설에 대해선 좀처럼 속내를 보이지 않고 있다. 3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내 거취는) 내가 알아서 한다. 며칠 지나면 후보들의 속내가 드러낼 것이니 서두를 것 없다"며 거취에 대한 확답을 종용치 말라고만 했다.
또 박지원 대표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김 전 대표의 동의를 전제로 손학규 의장과 정운찬 전 총리, 김 전 대표 간 4자 연대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서도 "박 대표가 국민의당이 중심이 돼서 모든 걸 교통정리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겠느냐"며 미묘한 답변을 남겼다.
정가의 시선은 김 전 대표의 거취를 향해 있다. 비대위원회 대표 시절부터 때마다 ‘신의 한수’를 선보였던 전력을 고려할 때, 김 전 대표의 이러한 움직임은 선택 여부를 떠나 향후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민주당 탈당 가능성과 △실제 탈당할 경우 대선 판에 미칠 파괴력의 정도다.
물론 김 전 대표의 측근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대표가 이미 2주 전에 탈당계를 써서 가지고 있고, 마지막으로 탈당 시점과 명분을 고민 중”이라며 내달 첫째 주 탈당을 포함한 ‘중대 결심’을 할 것이라는 설에 한껏 무게를 더했다. 또한 김 전 대표가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뻔한’ 승리를 내다보고 있다는 점 역시 탈당에 힘이 실리는 지점이다.
다만 여의도에선 김 전 대표의 노회한 날개 짓이 결국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장 큰 이유로는 민주당의 대세론과 비문(비 문재인) 세력의 동상이몽이 꼽힌다.
“정치적 공간 없이는 ‘제3지대’도 가상에 불과”
문제는 민주당이 김 전 대표에게 ‘정치적 공간‘을 내어줄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지난해 민주당은 김 전 대표에게 제1야당의 경제민주화 얼굴로서의 역할을 부여, 문 전 대표와의 불화 속에서도 결국 당에 잔류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세론이 더욱 강력해진 시점에서 민주당은 더 이상 이러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즉, 민주당이 정치적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 한, 설사 김 전 대표가 탈당을 감행한다 해도 실제적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한계가 클 거라는 의미다. 비례대표 의원인 김 전 대표는 탈당과 동시에 의원직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현역 의원 배지라도 달고 있어야 그나마 움직일 공간이 생긴다”며 “배지 떼고 제3지대로 가서 갑자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탈당해서 어떤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또 파괴력에 대해선 “그야말로 ‘찻잔 속의 태풍’이라 본다. 제3지대라는 게 아직까지 상상이나 가상 속 무대일 뿐”이라며 “안철수는 완주 의지가 강하고, 손학규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박지원은 정권교체 속에서 본인의 지분을 지키는 게 최대 목표 아닌가. 결국 제3지대라는 가상의 공간을 놓고 민주당과 정치적 딜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전 대표의 탈당설은 ‘정치적 실리 추구’에 능한 김 전 대표의 ‘반(反)정당정치 스타일’이 발현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원장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관철시키는 데 아주 능한 인물이 바로 김종인”이라며 “민주당에서 정치적 명분을 주면 당에 남을 것이지만, 지금 민주당이 그렇게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기문·손학규·박지원에 손을 내밀고, 이재명·안희정까지 접촉하면서 그야말로 정치적 낚시질을 하고 있다”며 “이건 굉장히 실용적이지만 사실 정당정치 체계와 예의에 어긋난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정당정치 질서를 무시해왔던 모습의 연장이자, 그런 스타일이 표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쪼그라든 보수’ 안정감 갖춘 세력 찾을 수밖에
민주당의 대세론도 무시할 수 없다.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과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소폭' 우위를 점하는 일반적 환경에서라면, 김 전 대표의 행보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현 정권과 보수 진영의 화력이 절대적으로 미미한 현 시점에선 ‘김종인표 제3지대’가 무력해진다는 게 박 원장의 설명이다.
더 나아가 불안한 정국 상황 속에서 ‘안정감’을 갖춘 대안 세력을 찾는 표심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박 원장은 “탄핵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안정적인 정국 운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데, 민주당이 이미 안정감을 갖춰가고 있다”며 “‘대세론’이라는 게 안이한 생각으로 빠지면 부정적이지만, 다른 각도에선 안정적 기반을 갖췄다는 점도 있다. 박근혜도 새누리당보다는 ‘박근혜의 안정성’으로 당선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반면 ‘제3지대’ 또는 ‘빅 텐트’는 예측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게다가 최소한의 무게감을 부여하는 정당 간 결집이 아닌 인물 중심의 합종연횡으로, 안정감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박 원장은 “빅 텐트 또는 단일화는 어느 정도의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단일화를 하기도 전에 여론조사를 돌릴 만큼 구체적인 그림이 눈에 미리 보였지 않느냐”면서 “지금은 그런 걸 아예 무시해버리고 설만 난무하는 데다 여당의 존재도 파편적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빅 텐트라는 단어 자체가 ‘중도세력의 커다란 결집체’라는 안정감 대신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직언했다.
아울러 ‘머리’만 있고 ‘팔·다리’는 보이지 않는 빅 텐트의 현실 역시 ‘김종인표 제3지대’를 무력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황 평론가는 이에 대해 “서로 본인이 머리를 하려는 양반들만 있지, 누구 하나 팔다리 하겠다는 사람은 없는데 어떻게 정상적으로 굴러가겠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