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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사퇴 배경은?…'고건 데자뷔' 극복 못해


입력 2017.02.01 17:30 수정 2017.02.01 17:34        이충재 기자

지지율 하락 '결정적'…승부수 '개헌연대' 호응 없어

'정치체력' 한계도 지적돼 "인격 살해와 가까운 음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결국 '고건 데자뷔'를 극복하지 못했다. 1일 돌연 불출마를 선언한 반 전 총장은 "정치인들의 이기주의적 태도도 실망스럽고, 결국 이들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미 정치권에선 '제3지대론'으로 부상했다가 대선레이스 중도 사퇴한 고건 전 총리의 사례를 거론하며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무엇보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결정에는 귀국 후 지지도 하락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귀국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 후 지지율 상승 효과)는 반 전 총장 측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았다. '역컨벤션'이라는 평가까지 등장했다.

'문재인 대세론' 깨기엔 역부족…데일리안 조사서 '더블스코어'

실제 반 전 총장이 '문재인 대세론'을 깨기엔 지지율이 턱없이 부족했다. 데일리안이 의뢰해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실시한 2월 첫째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16.5%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35.2%)와 격차가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벌어졌다.

더욱이 두 후보 간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추세다. 문 전 대표의 선전(善戰)이 아닌 반 전 총장이 스스로 무너진 형세다. 모호한 '반반행보'나 귀국 후 '1일 1구설수'에 지지층의 실망감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향후 정치 일정표을 보면, 마땅한 반등의 기회도 마땅지 않았다. 반 전 총장 입장에선 '벚꽃대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초조함만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여권을 중심으로 "반 전 총장으론 안된다"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었다.

무소속의 '정치체력' 한계…진흙탕 싸움에 "인격살해" 토로

반 전 총장의 대선레이스 하차는 10년 전 고 전 총리의 중도 사퇴와 꼭 닮은 모습이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어느 정당에도 소속해 있지 않는 무소속 정치인으로서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

반 전 총장은 정치권의 비토에 '정치체력' 한계를 드러내며 쉽게 흔들렸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사퇴를 선언하며 "나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의 명분을 실종했다"고 말했다.

선거라는 '진흙탕 싸움'을 견디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행정가형 리더십 한계…'개헌연대' 등 정무적 판단 실책

권력의지가 부족한 행정가형 리더십의 한계라는 점도 비슷한 부분이다.

'기름장어'로 불릴 정도로 논란 한번 겪지 않은 외교력을 보였던 반 전 총장이었으나 '정치인 반기문'으로서는 이렇다할 정무적 판단을 보여주질 못했다.

'정치적 타이밍'이나 정체성, 메시지 등에서 여론을 흔들지 못하고, 결정적인 순간 마다 미지근한 행보를 보였다. 전날 마지막 승부수로 던진 '개헌연대'로 정치권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도 자충수로 꼽힌다. 여야 모두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빅텐트'를 펼 공간을 찾기 어려워졌다.

이와 관련 여권 한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이 소주한잔하며 '동생, 이번에 양보해줘. 한번 받아줘'라고 타협하는 스타일이 아니지 않나. 행정가 리더십으론 안된다"고 말했다.

결국 반 전 총장이나 고 전 총리 모두 '제3지대'에서 기존 정당과의 차별화로 기대를 모았지만, 오히려 정당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자금은 물론 조직, 메시지, 전략 등에서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고 전 총리의 "우리 선거에서 '제3후보'나 '선거용 정당'이 설립되는 전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은 10년 뒤 자신의 전철을 밟은 반 전 총장에 대한 '예언'이 됐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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