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광장 선동, 헌재 결정 후폭풍은 어쩌려고
<칼럼>촛불만 민심이라는 아집이 나라를 두동강내
헌재 결정해도 광장은 더 시끄러워지고 분열 가속화
야당들(새로 야당에 편입된 바른정당은 제외하고)이 정월대보름날의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조기 탄핵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는 총력투쟁’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총동원령에 따라 11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은 50여명, 당원은 5,000여명이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거당적 호응’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대적 참여’라고는 할 만한 숫자였다. 대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지도부와 이른바 잠룡들은 총출동하다시피 했다. 다만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만은 참가하지 않았다. ‘광장은 시민의 것’이라는 모범답안을 불참의 변으로 내놨다. 온건하고 책임을 중히 여기는 정치 지도자로 각인되길 기대했을 법하다.
그런데 야당들이 헌재의 조속한 탄핵 결정을 압박하며 촛불집회를 충동질하듯 하는 게 과연 대의명분과 정치적 이익에 부합되는 행동인지는 의문이다. 야당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 사실이 확인되기도 전에 탄핵부터 서둘렀다. 국회 스스로 특검법과 국정조사 계획서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으면서, 그 결과를 기다리지도 않고 덜컥 단핵소추부터 한 것이다. 그래놓고 촛불집회를 배경으로 헌재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억지 아닌가. 탄핵이 인용될 경우 그 정당성 입증책임은 헌재의 몫이 될 것이므로 정당이나 대선 주자들로서는 부담이 없다는 심산인가.
임혁백 교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탄핵은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심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대통령이 공적 신뢰(public trust)를 배신한 것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게 곧 탄핵”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논리가 옳다고 해도 ‘공적 신뢰에 대한 배신’ 자체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최 씨의 범법 혐의는 상당부분 입증되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박 대통령과의 공모 여부까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최 씨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도 현재까지는 추측이거나 예단이다.
우리 헌법은 탄핵요건을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법적 심판이든 정치적 심판이든 이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헌법과 법률에 대한 구체적 위반 사실을, 사법적 심사 및 판단의 절차를 거쳐 적시할 수 있어야 탄핵이 가능한 게 아닐까?
정치적 심판은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 그러니까 야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촛불민심’으로 이미 내려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다중’에 의한 촛불집회이기 때문에 이는 ‘촛불혁명’이며,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으므로 ‘명예혁명’ ‘제3의 민주혁명’이라고 임 교수는 규정했다. 혁명에 의해 대통령으로부터 그 직을 박탈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의미일 터이다.
과거 왕조시대나 폭압통치 시대에는 저항권의 행사든, 혁명이든 나름의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노릇 제대로 못 하고, 대중들에게 밉보였다는 이유를 내세워 쫓아내기로 들면 어떤 대통령도 안전할 수가 없다. 더욱이 박 대통령의 경우 임기가 겨우 1년여 남았을 뿐이다. 그 기간을 못 기다릴 만큼 대통령에 의해 초래된 국가적 위기가 급박하고 심대하다는 것인가.
야권이 촛불집회는 ‘민심’이고 태극기집회는 ‘뻔뻔한 꼼수’ 혹은 ‘시대착오’라고 공격하는 것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촛불집회는 자연발생적인 국민의 분노표출, 응징요구인데 비해 태극기집회는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 놓기이며, 따라서 ‘진정한 민심이 아니라 동원된 무리일 뿐’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동원된 군중인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에 대한 책임추궁이 민주‧법치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행동으로 ‘광장의 정치’에 맞서려는 집회로 볼 수도 있다.
탄핵에 대한 여론의 절대적 지지를 들어 태극기집회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가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근거가 된다면 대의민주제도는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야말로 현대판 광장정치일 것이다. 자연 선거나 임기제 같은 것은 의미를 잃고 만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바로 광장정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치체제 하에서도 선거제 및 임기제는 존중됐다. 도편추방제라는 것이 시행되기도 했지만 현직 공직자를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가 될 위험성이 있는 정치인을 예방적으로 추방하는 제도였다.
11일의 태극기집회에선 촛불집회가 ‘민심’이 아닌 ‘당심’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 측이 총동원령을 내리고 야당들이 지도부를 필두로 대거 집회에 참여한 탓이다. 촛불집회가 순수한 민의의 표출이라고 하려면 정당들은 애초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촛불집회가 커지자 야당과 이른바 잠룡들은 이에 편승해서, ‘정권교체’를 기정사실화하려도 안달했다. 이는 현명한 계산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것은 대의민주정치의 원리에 반할 뿐만 아니라 이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방식이다. 설령 그렇게 해서 정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자. 그 이후에 올 저항은 어쩔 것인가.
대보름날의 집회에서 탄기국 측은 태극기집회가 촛불집회를 압도했다면서, 이런데도 탄핵이 인용될 경우 헌법에 보장된 국민저항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탄핵을 촉구하는 측이 ‘촛불민심’을 내세우는 데 대해 탄핵 반대 측은 ‘우리가 국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헌재의 결정이 어느 쪽으로 나든 우리 사회는 극심한 대립과 대결, 심하게는 집단적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예감케 하는 장면이다.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야권이 정권 쟁취의 욕구에 휘둘리지 말고 좀 더 찬찬히 살피고 대응했더라면 박 대통령과 보수세력에 치명적 상처를 입히면서 정권을 무난히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태극기집회가 대규모화한 것은 야권이 너무 심하게 너무 모욕적으로 박 대통령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노 머시(no mercy)!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들은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몰아붙임으로써 박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사생결단식 저항을 초래했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감정에 북받쳐 소리 지르고 울부짖었다. 그 이전에 야권, 특히 문 전 대표 등 주자들은 고삐를 늦추었어야 했다. 이제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양대 진영의 전면 대결은 불가피해졌다. 새 집권자가 이를 무마하고 조정한다는 것도 무망한 일이다. 도대체 어쩌자고 사태를 이렇게 악화시켜 놓았다는 것인가?
한 때 새누리당 윤리위원장으로서 ‘박근혜 당원’을 징계하려 하지 않았느냐고 누군가 따질 수도 있겠다. 당시 상황에선 ‘박 대통령의 탈당’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게 박 대통령 스스로 정파의 굴레를 벗고, 새누리당의 족쇄도 벗겨주는 길이라고 판단했었다. 윤리위원 다수의 의견도 같았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은 그런 선택을 해 주지 않았고, 윤리위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그러다 당 최고위원회의 해괴한 대응으로 윤리위 전원이 사퇴하는 사태가 초래됐던 것이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극심한 공천갈등 끝에 지리멸렬했고 그나마의 기회였던 8‧9전당대회는 친박계의 잔치마당이 되고 말았다. 민심은 당을 떠났다. 와해 지경에 이른 유일 보수정당을 되살리자면 누군가는 당에 대해 책임을 지고, 당은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박 대통령에 이어 책임을 져야 할 당내 인사들 역시 순차적으로 징계대상이 될 것이었고, 당사자들은 이를 기꺼이 수용했어야 했다. 아울러 당 차원에서는 재창당을 통해 거듭나는 노력을 기울일 일이었다. 국민이 됐다고 할 수준까지 전면적이고 철저한 쇄신일 것이 요구됐다.
지금에 와서도 그때 박 대통령은 스스로 당적을 정리하는 게 옳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탄핵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대통령이 나라를 잘못 경영해서 현실적으로 국가 존립이 위태로울 지경에 처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국정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다만 박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진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 때문에 외부의 격한 공격에 버텨내지 못한 것 아니겠는가.
박 대통령에게도 과오가 있었을 수는 있다. 그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할 정도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기 1년을 남겨둔 현직 대통령을 당장 쫓아내야 할 만큼 엄청난 잘못이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국민의 직선에 의해 뽑힌 임기 5년의 내각수반, 국정 최고 책임자, 군 통수권자, 그리고 국가원수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당적(분당 후 친박 중심의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재고할 여지가 있겠지만)은 정리케 해야 했으나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는 보장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헌재 최종 결정 이후의 상황은 생각하기조차 두렵다. 우리 정치가 수십 년 전으로 퇴행할 수도 있다. ‘혁명’의 기치로 저항을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않는 게 좋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미 ‘시민혁명에 의한 지배세력의 교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게 혁명일 수 없었음은 신 집권세력 자신들에 의해 입증됐다.
헌재 결정 이후에 밀려닥칠 정치적 지진해일은 필연적으로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의 극심한 혼란으로 이어진다. 민생은 더 어려워질 게 뻔하고, 정치권은 책임공방에 영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 지경에 이르러 촛불집회, 태극기집회가 서로 몸통자랑을 한들, 그래서 어느 한쪽이 이긴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가 이 독배를 피할 길은 정말 없는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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