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는 의무도 권리도 아닌 함께 공감하고 동행하는 것"
"배려는 의무도 권리도 아닌 함께 공감하고 동행하는 것"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존중, 배려, 소통 등의 기본가치가 바로선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런 가치들을 중시하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사회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통합가치포럼'을 운영해왔다.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엮어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일곱빛깔 무지개'를 펴냈고, 데일리안과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러한 가치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매주3회, 총 27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주 >
'배려'라는 의무가 주는 피로감…배려는 의무도 권리도 아니다
배려의 사전적 의미가 '돌봄, 보살핌'이니 배려의 반대는 '돌보지 않음, 수수방관'인 셈이다. 의미가 그렇다보니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책임지고,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배려가 부담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개인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쉽지 않음에도 가진 자 운운하며 배려를 의무처럼 강조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섣부른 배려는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배려를 했다가 오지랖 넓은 사람 취급받기도 하고, 심하면 범죄자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배려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더 가진 자와 성취한 자들을 편법과 부당 지원의 수혜자로 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배려를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약한 사람,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짐으로 여기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배려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 '권리와 의무', '차별과 동정'이 끼어드는 건 금물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은 불만을 갖고, 한쪽은 배려를 하고도 압박감과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배려는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한빛맹학교 수학교사 안승준 씨가 허핑턴포스트 블로그에 올린 '무서운 것은 배려를 권리로 느끼는 것이다'라는 칼럼은 제목부터 메시지를 던진다. "눈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정말 많은 종류의 배려를 경험하면서 산다. 지나친 친절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라고 토로한 안 교사는 "돈가스를 썰어주지 않는 동네 식당을 불친절하다고 말하고 요금을 할인해 주지 않는 버스를 복지의 사각 지대라고 말하는 제자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한 적이 있는데 이는 가정과 사회의 과도한 배려들이 만들어낸 권리 착각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피력했다.
'배려'는 함께 공감하고 동행하는 것…'진짜 배려'가 필요한 때
그래서 국가가 해야 할 배려와 개인이 해야 할 배려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국가는 공정하게 세무 행정을 펼치고 그 재원으로 약하고 힘들고 소외된 이들을 돌봐야 한다. 개인은 납세의 의무를 다해 소외된 자들을 돌볼 재원 마련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정부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여러 정책을 이미 펼치고 있다. 종교 단체와 기업에서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꼭 수치를 제시하지 않더라고 예전보다 복지 혜택도 많아졌고, 많은 제도가 시행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더 이상 개개인이 배려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지 않아도 될 만큼은 복지 정책이 제도적으로 잘 시행되고 있다.
안 교사의 제자들이 느끼는 불만 가운데 버스 요금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검토하여 해결할 사안이다. 65세 이상 노인들도 지하철 요금은 무료이나 버스는 요금을 내는 체제이니 장애인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동네 식당 주인이 바쁘면 옆 테이블 사람이 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 제자들에게 '권리 착각의 부작용'이라며 따끔하게 충고하는 안승준 교사처럼 배려가 권리와 혼동되지 않도록 가르치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아무 지적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들을 배려하지 않는 일이다. 배려는 어떤 경우에도 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배려가 필요한 이들이 불만을 품지 않도록 사려 깊은 관심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한다. 항암 치료로 머리가 빠진 아이를 위해 삭발을 한 친구들의 아름다운 동행도 있었다. 배려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과 외로운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미국 GE의 전 회장인 잭 웰치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강연장에서 패널로 참석한 교수가 "한국의 대기업에서 귀하를 최고 경영자로 모신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묻자 잭 웰치는 "제일 먼저 한국어를 배우고 종업원들에게 회사 발전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란 걸 말하겠다"라고 대답했다. 함께 사는 이들과 동화되는 것, 바로 내 이웃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배려다. 배려는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배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안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배려를 자꾸 해냅니다. 내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야 한다.
글/이근미 소설가
△주요 약력
·현직 : 작가
·데뷔 : '93년 문화일보 소설 '낯설게 하기'
·학력 :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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