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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통합위원회 일곱빛깔무지개-8] '배려'의 가치 아는 사회 만들어야


입력 2017.04.20 06:00 수정 2017.04.20 06:33        박진여 기자

'배려'와 '화합'보다 '투쟁'을 먼저 가르치는 교육의 폐해

배려사회, 교육과 제도·인센티브 지원 시스템으로 실현

'배려'와 '화합'보다 '투쟁'을 먼저 가르치는 교육의 폐해
배려사회, 교육과 제도·인센티브 지원 시스템으로 실현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존중, 배려, 소통 등의 기본가치가 바로선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런 가치들을 중시하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사회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통합가치포럼'을 운영해왔다.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엮어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일곱빛깔 무지개'를 펴냈고, 데일리안과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러한 가치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매주3회, 총 27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주 >

배진영 통합가치포럼위원
족구장에서 30대 초반 남성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가 웃으며 이렇게 얘기한다. "전철역에서 후보님 명함을 네 장 받았어요. 이게 다섯 장 째입니다". "아니 한 장 받았으면 받았다고 하고 그만 받지 네 장씩이나 받았어요" 라고 묻자 그의 대답이 내 마음을 찡하게 했다. "이른 아침에 누가 내미는 것을 거절하면 마음 상할 것 아닙니까?" 세상은 이런 배려로 촘촘히 엮어져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총선에 출마했던 어떤 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 분은 공천 단계에서 탈락하고 꿈을 일단 접었다. 하지만 그 분은 먼 훗날 이번 총선을 생각할 때면 자신의 명함을 다섯 장이나 받아 준 30대 남성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지도 모른다. 이런 배려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 분의 품성이 좋아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품성은 타고나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많은 부분 품성은 길러지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교육을 통해서 말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는 것은 모든 문명 사회의 기본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 라고 배운다고 한다. 이런 교육은 아마도 '화(和)'를 강조하는 일본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사방이 바다로 가로막혀 있고, 지진과 화산이 되풀이되는 땅에서 살아남자면 서로 화합하고 배려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의식이 일찍부터 일본인들에게 박힌 것이다. 5년 전 동일본 대지진이나 이번 구마모토 지진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준 감탄할 만한 시민 의식의 뿌리는 적어도 일천 수백 년 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전통과 관련된 모든 요소에 '화(和)'라는 글자가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은 '화(和)'라는 가치,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워나갈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는 것은 모든 문명 사회의 기본이었다. 중국 춘추시대를 살았던 공자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가르쳤다. 그로부터 500년 뒤에 중동 유대 땅에서는 예수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라고 제자들에게 일렀다. 비슷한 시기 유대교의 랍비 힐렐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그림책에도 그런 얘기가 많았던 것 같다. 남을 배려하고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남에게 교만하고 못 되게 구는 사람들은 벌을 받는 얘기 말이다.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공중 도덕'에 대해 배웠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교육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배울 만큼 배우고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는 멀쩡한 인간들이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담배 꽁초를 함부로 버릴 수 있을까?

'배려'와 '화합'보다 '투쟁'을 먼저 가르치는 교육의 폐해

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기본적인 공중 도덕도 지키지 않는 것일까? 그게 남보다 앞서갈 것만을 강요하는 시스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 질서, 도덕 같은 것을 기득권자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장치이며 그에 도전하는 것이 선(善)인 것처럼 가르치는 일부 교육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어린이용 동화책을 봐도 '투쟁'하는 삶을 살았던 이들을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소개하는 것이 많다. 불의에 항거한 분들은 당연히 따라 배워야겠지만, '배려'와 '화합'보다 '투쟁'을 먼저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에서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배려'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이야기들을 가르쳐야 한다.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는 물론이고, 국어나 영어에서도 배려의 가치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교과서에 담아야 한다. 사회 교육 차원에서도 배려에 대한 교육은 계속해야 한다. 지하철을 타 보면 지하철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일들에 대한 짧은 글을 붙여 놓은 걸 볼 수 있다. 갈아타야 할 지하철 노선을 묻는 할머니를 모셔다 드린 젊은 여성의 이야기, 갑자기 우는 아이를 스마트폰을 켜서 '뽀로로'를 보여주면서 달래준 젊은이의 이야기, 타인의 토사물을 닦아낸 아이들 이야기 등…. 인터넷을 봐도 타인을 따뜻하게 배려해 준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는 실화도 있고, 현대판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있다. 아무러면 어떤가? 이런 것들을 이메일, 짧은 만화, 공익 광고, 유투브 동영상, 카드 뉴스 등의 형태로 전파해야 한다.

배려사회, 교육 비롯한 제도·인센티브 지원 시스템으로 실현

남을 배려하는 덕성을 타고 났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집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가르치면 효과가 있다. 지하철을 타면, 아무리 붐벼도 객차 끝에 있는 3인용 노약자석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 앉을 생각을 안 한다. 지난 수십 년 간의 교육을 통해 노약자석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늘어나기 시작한 임산부·노약자용 7인석 좌석에는 표식과 색깔이 분명히 구분돼있음에도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앉는다. 아직은 교육과 홍보가 덜 된 이유가 클 것이다.

학교에서 배려를 가르치고, 공공기관에서 남을 배려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장치들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형 공사를 벌이기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한다. 건물을 짓기 전에는 교통영향평가를 한다. 정책을 펴기 전에 그게 남녀 평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평가하기도 한다. 각급 학교의 교육이나 정책에 '배려 지수'를 도입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해 본다. 각급 학교, 특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학년별로 교과서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나 들어 있는가? 공공 시설의 구조는 장애인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평가하고, 잘 된 경우에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다. '배려'는 통합의 기반이다. 배려가 없는 사회는 와해될 수밖에 없다. 서로 배려하고 '배려'의 가치를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효과가 더디게 나타난다고 해서 그걸 포기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더 척박해질 것이다. 필요하다면 '배려'를 유도하거나 강제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글/배진영 통합가치포럼위원

△주요 약력

·현직 : 월간조선(차장)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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