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이규형 "사연 많은 해롱이, 사랑받을 줄 몰랐죠"
'슬기로운 감빵생활'서 해롱이 역 맡아
"난 일중독…예상 밖 큰 인기 감사"
'슬기로운 감빵생활'서 해롱이 역 맡아
"난 일중독…예상 밖 큰 인기 감사"
최근 종영한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최대 수확은 단연 해롱이(유한양), 이규형(34)이다.
마약사범 해롱이는 드라마에서 가장 다채로운 캐릭터였다. 철없는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는데 서울대 약대 출신 엘리트였다. 극 말미엔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해롱이는 약에 해롱대느라 코를 훌쩍이고, 잠에 취한다. 항상 추워 이불을 갖고 다닌다. 2상6방 제소자들의 무릎은 해롱이의 베개다.
해롱이는 필터링 없이 말한다.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와 티격태격하며, 유 대위(정해인)와도 신경전을 벌인다. 마지막엔 무기수 민철(최무성)에게 '멧돼지'라며 '막말'을 가한다. 근데 이상하게 밉지가 않다. 그냥 품어주고 싶고, 귀엽기만 하다.
이규형은 이 어려운 캐릭터를 흠잡을 데 없이 소화했다. 시청자들은 마지막회까지 해롱이를 찾으며 그를 애타게 기다렸다.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이규형을 25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40여개 매체와 인터뷰를 소화한 그는 "이런 인터뷰가 처음인데 해롱이를 좋아해 준 덕이라고 생각한다"며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해롱이다!'하고 반겨주신다"고 웃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슈퍼스타 야구선수 김제혁(박해수)이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돼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다소 무거운 소재를, 제작진은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로 똑똑하게 버무렸다. 무엇보다 살아 숨 쉬는 캐릭터가 미덕이었다.
이규형이 맡은 해롱이는 소금처럼 반짝이며 극의 활력소가 됐다. 신원호 PD는 연극 '날 보러 와요'란 연극을 보고 이규형을 캐스팅했다.
이규형은 "'응답' 시리즈를 만든 신 감독님의 부름을 받아 기뻤다"며 "캐릭터가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초반에 조, 단역쯤으로 나오던 해롱이는 점점 비중이 늘어났다. 신 감독은 이규형에게 "해롱이는 주인공보다 전사가 많고, 복잡한 인물이야. 스토리가 풀릴 거야"라고 했다. 인기를 끌면서 비중이 늘어난 게 아닌, 기획 단계부터 계산된 일이었다.
전무후무한 캐릭터 해롱이의 탄생 과정이 궁금했다. "여러 연구를 하다가 해롱이의 말투와 목소리를 만들었어요. 포즈는 흐느적거리게 했는데 고양이를 보고 영감이 떠올랐어요. 하하. 눈을 깜빡이거나 코를 훌쩍이는 건 마약 중독자들이 틱장애가 있다고 해서 표현했어요. 너무 과하지 않게, 밉상 캐릭터가 되지 않게 표현하도록 노력했죠."
드라마의 인기 비결을 묻자 "처음 보는 감옥 이야기인 데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휴머니즘으로 풀어냈다"며 "김제혁이 역경을 딛고 성장한 과정도 인기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감기약도 먹지 않고, 약을 끊은 해롱이는 결국 출소하자마자 바로 약에 손을 댄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충격이었다. 해롱이는 마지막회에도 나오지 않아 아쉬움을 샀다. "꼭 필요한 결말입니다. 자칫하면 마약을 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택한 결말이라고 하더군요."
동성애자 콘셉트도 쉽지 않았다. 초반에 알았다는 그는 "다양한 모습을 지닌 캐릭터를 맡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2상6방 식구들과의 호흡은 최고였다. 문래동 카이스트 박호산과는 공연을 통해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마음 놓고 대들었는데 다들 잘 받아주셨어요. 해인이랑도 재밌었고요. 저는 인터뷰 때문에 못 갔지만 최근 드라마 식구들끼리 엠티도 갔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작품이 잘 돼서 분위기가 좋아요."
혹시 한양이 말고 욕심 나는 캐릭터가 있는지 물었다. "해롱이가 너무 어려워서 다른 캐릭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그래도 꼽자면 김제혁이요. 극을 뚝심 있게 이끌어 가잖아요. 공연은 똑같은 배역을 반복하는 거지만, 드라마는 5~6개월 동안 새로운 내용으로 끌고 가는 거니깐 새로울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답니다."
2001년 영화 '신라의 달밤' 단역으로 데뷔한 이규형은 중학교 때부터 연기에 관심을 가졌다. 교회에서 연기를 접한 그는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 들었고, 연기학원에도 다녔다. 이후 동국대학교 연극과에 진학하며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팠다. 군대 가기 전에도 공연을 했고, 쉴 틈 없이 연기를 해왔다. 대학로 데뷔작에서 만난 선배는 지금 스타가 된 김성균, 조우진이다.
뮤지컬 '빨래' 하기 전까지는 오디션을 50여차례 본 그는 배우가 길이 아니라며 좌절했다. 그러다 '빨래'에 캐스팅됐고, 매년 공연을 선보였다.
주로 연극과 뮤지컬에서 활약을 보인 이규형은 '김씨 표류기'(2009), '관상'(2013), '우는 남자'(2014),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2015), '봉이 김선달'(2016), 각종 영화에서 조·단역으로 활동하며 연기의 폭을 넓혔다. 드라마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2015)를 시작으로 '화랑'(2016), '도깨비'(2017), '비밀의 숲'(2017) 등에 나왔다. 쉬지 않고 일한 셈이다.
드라마의 입문이 된 작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나의 독재다'를 본 관계자의 눈에 띄어 나오게 됐다. 이후 '화랑'에 출연했는데 당시 8개 캐릭터 대본을 받았다. 모든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고, 감독은 '연기 좀 하는구나'라는 답을 들려줬다. 공연계에서 탄탄하게 다진 실력 덕이다. "무대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접한 게 장점입니다. 어떤 역할도 잘 소화할 자신이 있어요."
'하드캐리 볶과장'이라는 수식어를 남긴 '비밀의 숲' 얘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이 드라마는 구멍 없는 이야기 덕에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다. 이규형은 비밀을 지닌 윤세원 과장으로 분해 마지막에 큰 충격을 던졌다. '비밀의 숲' 팀워크가 워낙 좋았던 터라 동료들과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다음 주엔 괌 포상휴가를 떠난다. "생애 첫 포상휴가입니다. 갔다 와서 차기작을 빨리 정하려고요. 대학로에서도 일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쉬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빨리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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