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고준 "신부 꿈꿨던 나…선한 역할 하고파"
SBS '열혈사제' 종영 인터뷰
황철범 역 맡아 사랑받아
SBS '열혈사제' 종영 인터뷰
황철범 역 맡아 사랑받아
"어렸을 때 신부님이 되고 싶었어요. '장난'이 아니라 '정말'요."
그간 악역을 많이 해온 고준(40)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답이었다. 이제는 정말 선한 역을 하고 싶다며 배우는 호소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열혈사제'에서도 그는 악당이었다. 하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었다. 그가 맡은 대범무역의 대표 황철범은 냉혈한 악당의 모습부터 넉살이 넘치는 면모까지 두루 갖췄다.
고준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매력적인 악당의 탄생이다.
'열혈사제'는 사제 김해일(김남길)이 거대 악을 무찌르는 모습을 유쾌, 통쾌하게 그려 호평을 얻었다. 사회 풍자, 코미디, 액션, 메시지가 골고루 어우러졌다는 평가다.
마지막 회는 18.6%-22.0%(전국 기준)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순간 최고는 26.73%까지 치솟기도 했다.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난 고준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한 차례 고사했던 작품이라 더 그렇다"고 말했다.
고준은 원래 영화 스케줄이 잡혀 있던 터라 '열혈사제'를 한 차례 거절했다. 그간 해왔던 건달 역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 그는 제작진에게 "황철범을 끝까지 사랑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제작진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유 있고 다채로운 악역을 그리고 싶었다는 그는 "이유가 자세하게 나오지 않은 듯해서 아쉬웠다"고 전했다.
주로 영화에 출연했던 그에게 이번 드라마는 힘든 촬영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스케줄이 가장 힘들었단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만족한 점도 있다. 배우는 "김남길, 이하늬, 김성균과 호흡한 게 가장 큰 수확"이라며 "가장 긴 호흡의 작품이어서 힘들었는데 배우들끼리 서로 독려한 힘이 끝까지 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정말 고마웠다"고 미소 지었다. "정의롭고 착한 배우들이에요. 지금까지 작업한 배우 중 가장 친해졌습니다."
시청률에 대해선 "시청률 수치에 대해선 잘 모른다"면서 "촬영이 끝나고 바로 포상휴가를 갔기 때문에 인기를 체감하지 못했다. 자기 검열이 심한 편이라 긍정적인 평가는 잘 모르겠다"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악당 황철범은 마냥 미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는 김해일 신부(김남길)와 황철범의 대화 장면을 인용하며 캐릭터를 설명했다. 이 장면은 마지막 회에서 편집됐다. "나는 악해지려는 게 아니다. 살고 싶었다"라는 대사였다. "선과 악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다른 목표의 충돌인 거죠. 고아로 자란 황철범은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을 거라 예상했어요. 빈자리를 메우려 하는 욕망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내 식구를 챙기'고 싶다는 대사는 황철범의 마음을 잘 나타냅니다."
절대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동이 중요하다. 선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선이라고 받아들여야 선이란다. "황철범은 존댓말을 써요. 하하. 악당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던 것 같아요. 많이 혼나기도 했고요. 같은 장면이 반복되다 보니 못 달리고 묶여있는 느낌이라 답답했어요."
스스로에게 박한 평가를 내리는 그는 "잘 봤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힘을 얻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포상 휴가를 다녀온 그는 "드라마 촬영할 때 너무 힘들어서 포상휴가 때 푹 쉬면서 힐링했다"고 미소 지었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서울, 전라도 사람의 정서가 섞인 사투리를 구사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여심 저격'을 했다는 평가도 얻는다. 배우는 "'여심 저격'이라는 말을 듣지만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자친구도 없거든요. 하하. 왜 좋아해 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액션 연기도 소화한 그는 "체력적으로는 힘에 부치긴 하다"며 "'구해줘' 때 더한 액션을 해서 엄청 힘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룡 역의 음문석의 연기 선생님을 자처하기도 했다. 고준은 "음문석의 연기를 볼 때마다 조마조마했다"고 강조했다.
시즌 2에 대해선 "가능하면 시즌 2를 하는 게 좋지만 황철범이 시즌 2에서 어떻게 나올지 의문"이라며 "사실 내가 맡은 황철범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 황철범이 왜 이렇게 사랑받았는지 모르겠다. 의로운 역할을 맡고 싶다"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연극 무대와 독립영화 시절을 거쳐 2001년 영화 '와니와 준하'로 데뷔, 2014년 영화 '타짜-신의 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미스티'(2018), '변산'(2018) 등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고준은 "최근 작품에서 악역을 계속 연기하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며 "너무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기도 했다. 이제는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는데 답답해요. 선의를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도 할 수 있는데 못 된 역할만 들어오니까요. 서울 토박이인데도 서울말을 쓰며 연기한 적이 별로 없어요. 하하."
평가에 무덤덤한 그가 연기를 하면서 큰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궁금했다. "진짜로 했을 때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캐릭터와 극에 완벽하게 몰입했을 때죠. 진짜로 공감하고 통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죠."
예전에 잃을 게 없었다는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은 잃을 게 많아서 조금은 참는단다.
고준은 물욕이 없다고 했다. 별로 사고 싶은 게 없어서 쇼핑도 하지 않는다. '장유유서'는 꼭 지키려고 한다.
어렸을 적 그의 꿈은 '신부님'이었다. 폐쇄적이었던 고준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간 성당에서 본 신부를 보고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5~6년 정도 성당에 매일 출석 도장을 찍었고, 수도원에 들어갈 즈음에 그만뒀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이성에 눈을 뜬 거다. 배우는 '깔깔' 웃었다. 지금은 무교다. 신은 '마음'에 있단다.
연기를 통해 폐쇄적인 마음은 조금씩 열리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촬영하면서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어요. 육체적으로 피곤했지만 즐거움에 촉촉하게 젖어있는 느낌이랄까요?"
배우로서 목표는 무엇일까. "제가 배우가 된 이유도 어떤 배우의 연기를 보고 위안을 얻어서였어요. 연기로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 이게 안 된다면 연기를 포기하려고요. 제 목표의 10% 정도 이룬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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